top of page

미리 읽는 책 한쪽┃인디고 서원에서 정의로운 책읽기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로 혁명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다. - 프리드리히 니체 언제부터인가 서점에 자주 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를 반기는 수많은 책장들과 그 속에 담긴 책들, 종이 향기. 서점에서 느낄 수 있는 평화롭고 따사로운 특유의 분위기가 저희를 사로잡았습니다. 꼭 살 책이 없더라도 무슨 책이 나왔는지 둘러보는 그 짧은 시간은 세계를 여행하는 것같이 깊고 넓은 순간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점과 책을 접하는 시간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특히 저희와 같은 고등학생은 그럴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수능을 앞두고 하루 종일 공부만 해야 하는 저희에게 책읽기는 사치일 뿐입니다. 수능이 점점 다가온다는 그 긴장감과 압박감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학교의 시험 기간이 끝나면 친구들 대부분이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성적표를 기다리는 이 답답한 마음, 시험 전후 한 달간은 친구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경쟁의 시선들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그런 지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고자 하루 정도 자신에게 쉬는 시간을 주기로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책 읽는 시간은 그 하루가 전부입니다. 인문학 책을 읽고 있으면 선생님과 친구들, 부모님은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그럴 여유가 있냐?”, “그런 책 왜 읽는 거냐?”, “머리 아픈 책을 왜 읽어?” 그럴 때마다 저희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요? 왠지 모르게 눈치를 보게 됩니다. “나 자신을 성장시키려고. 그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이니까.” 조금 낯간지럽기는 하지만 솔직한 이 답을 결국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나름 재밌어.”, “소설만 너무 읽으니깐 지루하잖아.” 같은 대답들만 할 뿐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 공부와 관련 없는 책을 읽는다는 것, 흥미 위주가 아닌 책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학교에서도 독서교육지원시스템 같은 게 있어 책읽기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책은 단순히 정보만을 얻기 위한 미디어의 한 종류로 취급되고 있고, 독서는 억지로 해야 하는 힘들고 지겨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책을 읽은 여부만 확인하기 위한 건성으로 책읽기를 하게 되었고, 정해진 답에 맞추려는 책읽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의 가장 큰 의미는 그 책을 읽고 우리 스스로를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저마다의 꿈과 삶의 가치를 가진 인간으로 변화해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각을 남과 똑같이 하는 복사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책이 감동과 배움을 주었던 날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란 책을 읽고 주인공이 전쟁터에 버려진 동물들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삶에서 말할 수 없는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공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또한 지독한 가난으로 배가 고프지만 시를 읽으며 영혼의 채워짐으로 생명의 존귀함을 느끼는 ‘노엘’의 이야기가 담긴 『물에 쓴 글씨』를 읽으면서 물질적 빈곤보다도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정신적 가치의 빈곤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만주의 아이들』을 읽고 기존 세대가 만든 정의롭지 않은 현실로부터 고통 받는 우리 세대를 바라보며, 다시 새로운 세대를 이어갈 우리들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까 함께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이후 『방관자』라는 책을 읽으며 다수의 방관자들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99%의 방관자들이 도덕적으로 변한다면 세상은 분명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발견하는 순간이었죠. 하지만 이 과정이 늘 즐거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항상 책에서 배운 내용과 현실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우리 주변만 보아도 폭염을 견디지 못하고 좁은 방에서 외롭게 세상을 떠난 분들,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마실 물이 없어 농약이 섞인 물을 마시고, 먹을 것이 없어 쓰레기를 주워 먹는 아이들, 그들뿐만 아니라 관심을 받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이들. 그리고 그들의 눈물을 외면하는 우리들까지, 이 세상은 아직 정의롭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성적을 더 잘 받아야 하고, 더 좋은 학교에 가야만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학생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사회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괴리감과 절망감이 온몸을 사로잡았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뜻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 다산 정약용

책은 저희에게 변화를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정의를 향한 일렁거림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그 일렁임을 묵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그 괴리감을 해결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 줄의 문장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깊은 사유의 힘은, 무엇이 더 진실이고 정의로운 것인지 찾아 나서는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글 읽기가 우리 모두를 조금씩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세대가 함께 책을 읽어나가고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들을 생각하고 공유할 수 있다면, 조금 더 분노해야 하는 것에 분노하고 환호해야 하는 순간 환호한다면, 분명 이 세계는 정의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누구나 다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누구나 상처받고 소외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세상을 믿습니다. 그 힘은 세상을 읽어내는 힘, 이를 다시 써내는 용기로부터 비롯될 것입니다.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분명히 도래해야 할 세상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눈물 흘리지 않는, 그 누군가의 꿈도 포기하지 않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더 많은 청소년들이 꿈의 근원을 공유하길 바랍니다. 희망은 살아 있는 자의 특권이고 의무이기에, 함께 이 길을 걸어가길 제안합니다. 이 책은 인디고 아이들이 함께 기획하여 스스로의 인생에 한 줄을 남긴 책들을 소개하고 기록한 것입니다. 저희의 한 문장이 그 누군가의 용기와 희망의 씨앗이 되길, 그리고 이 짧은 글들이 작지만 든든한 동반자이길 꿈꿉니다. 세상의 변화는 항상 한 걸음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인디고 아이들과 함께 열아홉 살 김유진, 서대범, 정성엽 * <인디고 서원에서 정의로운 책 읽기>는 9월 10일 출간 예정입니다.


コメント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