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마트에 가면 사시사철 빠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과일과 채소를 볼 수 있습니다. 11월 말부터 출하되기 시작하여 한겨울에 가장 많이 생산되는 딸기는 이제 제철인 5~6월보다 1~2월에 더 많은 판매율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재배기술의 발달과 겨울철에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 때문이겠지요. 딸기는 자연재배로 키운 오뉴월 딸기가 제철일까? 아니면 겨울철 하우스 딸기가 제철일까? 이런 의문은 아마 제가 텃밭을 다니지 않았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몇 해 전 자가면역질환으로 몸이 안 좋아져 이사를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공기 좋은 시골로 가고 싶었지만 아이 아빠의 출퇴근 문제도 있고 해서 서울 내에서 그나마 공기가 좋다는 북한산 근처로 터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하고 난 그 해 가을, 우리가 사는 동네를 조금 벗어나니 여기저기 텃밭을 가꾸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텃밭을 눈여겨본 적은 처음이라 밭에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무, 배추가 어찌나 건강해 보이던지요. 그 다음해부터는 바로 주말농장을 분양받아 텃밭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농사를 짓는 법은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어서 만만히 생각했던 텃밭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흙은 어떻게 일궈야 하는지, 씨앗은 언제 뿌려야 하는지…… 막막한 것 투성이였지요. 일만 벌여놓고 감당이 안 되어, 그냥 포기하고 사서 먹을까 싶었던 즈음에 다행히도 은평구에 있는 ‘도시농부학교’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농사의 방법뿐만 아니라 자연의 시간인 ‘24절기’에 대해서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여름은 무던히도 더웠습니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을 보내던 중 열 살 딸아이가 텃밭에 따라 나선 적이 있었습니다. 방학이라 늦잠을 자고 나온 아이는 자기가 직접 물을 준다며 물뿌리개를 들고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금세 얼굴이 벌겋게 익으며 숨을 헐떡이더군요.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해서 텃밭에서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하나 따다 씻어주었습니다. 딸아이는 토마토를 한 입 베어 물고는 “엄마가 이 맛에 텃밭에 오는구나”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군요. 텃밭에서 자란 토마토는 마트에서 파는 토마토와는 맛이 다르다며 이렇게 맛있는 토마토, 오이, 당근을 친구들은 왜 안 먹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자연이 주는 채소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처럼 먹거리가 풍요로워지고 그에 대한 정보도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잘 먹는다는 것에 대해 오히려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먹는다는 것은 다른 이의 생명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이지요. 그럼 잘 먹는다는 것은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생명의 성질을 먼저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식재료가 가진 생명의 성질을 알아보기 위해 저는 텃밭을 시작하게 되었고, 좀 더 건강하게 먹는 방법을 찾기 위해 ‘식생활교육 지도사’ 과정과 ‘마크로비오틱 지도자’ 과정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느낀 점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입니다. 우리 몸에서 자연스럽게 소화과정을 거치며 편하게 흡수되는 음식은 가능한 한 인공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자연에서 온 음식이라는 것입니다. 지극히 당연하지만 쉽게 잊게 되는 이 사실을 저는 텃밭을 통해 몸으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식문화에는 4계절을 24절기로 세분화한 중요한 틀이 있습니다. 절기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일조량, 강수량, 기온 등을 가늠할 수 있기에 농경사회뿐 아니라 현대에서도 계절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이 책에서는 각 절기의 특성과 제철 식재료 그리고 제철 요리법을 담았습니다.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려 성장하는 과정과 이를 수확하여 요리를 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하였습니다. 바쁜 현대인들에겐 이런 과정이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책을 통해 ‘제철’의 의미를 알고 식재료를 구입할 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요리는 쉽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가능한 한 우리 땅에서 재배되고 가공하지 않은 농산물을 이용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책에 나오는 텃밭과 요리사진은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 제가 텃밭을 다니며 그때그때 촬영한 것들입니다.
제가 경험한 자연의 시간과 제철의 기분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평화로운 일상이 여러분 일상에도 찾아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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