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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읽는 책 한쪽┃<젊은 과학도를 위한 한 줄 질문> 남 영 지음


한줄 질문을 제출했던 모든 학생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과 청년기의 방황이 배어나는 질문을 읽으며 그 시절 그 때의 나를 떠올렸습니다. 학문에 대한 갈급함이 묻어나는 질문에서는 내가 자꾸만 잊어가고 있는 것을 되새겨 주었습니다. 사회적 책임에 관한 너무나 진지한 질문들과 마주치면서 속 깊은 젊음을 만났습니다. 물론 버뮤다 삼각지대, 우주의 끝, 외계인의 존재 여부부터 명작영화와 책 추천, 좋아하는 음료수를 묻는 귀여운 질문들도 모두 재미있었습니다. 덕택에 또 한 권의 책이 나왔습니다. 고맙습니다.

머리말 이 책은 ‘강의 중 받은 대학생들의 질문에 대한 필자의 답변들 중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눌만한 내용들을 모아 글로 정리한 것’이라고 짧게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특성에 대해서는 조금은 더 긴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필자가 과학사를 전공하고 대학에서 강의한 지 어느덧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 시간강사로 시작한 대학 첫 수업부터 한양대학교의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교과목을 맡았었고, 시간이 지나 자리를 잡으면서 직접 개발한 과목들인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 <과학자의 리더십>, <과학클래식: 과학과 종교> 등 주로 과학사나 과학에 대한 성찰적 이해를 목표로 하는 교과목들을 개발하고 강의하며 학생들과 호흡하고 있다. 어느 날 대충 계산해보니 그간 6000-7000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학점을 주었고, 교양과목을 많이 맡게 되는 전공 특성상 거의 대부분 학과 학생들을 가르쳐 본 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정도면 남들과 나눠볼 수 있는 개인적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그렇게 용기를 낸 결과들 중 하나다. 이 책의 제목인 ‘한줄 질문’은 필자가 모든 수업에서 행하고 있는 필자 고유의 행사명이다. 이 행사의 연원은 필자가 강의하는 대표 교과목인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로부터 비롯되었다. 과학혁명을 중심으로 과학사를 강의하는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는 2010년 개설된 이래 지금까지 꽤 인기를 얻었고, 수업의 내용을 정리한 『태양을 멈춘 사람들』이라는 책도 얼마 전 출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수업만의 독특한 행사가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한줄 질문’이다. 처음 강의를 개설했을 때 아마 학교의 과학사 마니아들은 다 몰려온 모양이었다. 거의 매주, 메일로 상당한 수준의 어려운 질문들이 학생들로부터 내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용들은 다른 동료 연구자 분들께 물어가며 내 나름대로 성심껏 답신했다. 그리고 아주 훌륭한 질문에 대해서는 수업시간에 언급하며 더욱 많은 학생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끔 했다. 내 노력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에 많은 보람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모든 학생들에게 질문을 받아보면 어떨까? 한 두 명의 학생들이 이토록 멋진 질문들을 연속해서 던진다면 전체 학생들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 수업이 훨씬 풍요로워질 것 같았다. 하지만 억지로 질문을 하게 한다면 또한 학생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질문할 것이 있느냐?’고 한국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손을 들고 질문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모든 학생에게 중간시험과 기말시험 전전주에 서면으로 질문을 받고 시험 전주에 답변을 해주는 방법이었다. 적절한 시점에 수업의 전체적 복습도 할 수 있고 학생들의 수업이해도도 어느 정도 체크해 볼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질문에 부담가지지 않도록 ‘한줄’ 정도로만 무엇이건 물어보라고 ‘한줄 질문’이라는 행사명을 작명했다. 물론 질문이 길어져도 상관없고, 질문의 내용도 꼭 수업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어도 좋으니 ‘무엇이건’ 물어보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한줄 질문’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 행사는 전체적인 수업의 정리도 될뿐더러 다른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학생 상호간의 이해도 증진되는 효과를 함께 기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생이 실제 궁금해 했던 것에 대한 답인만큼 학생개인에게 상당한 교육적 효과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대하지 못했던 효과는 오히려 필자가 크게 성장하는 것을 느꼈다는 점이다. 예상한 질문도 있었지만, 전혀 생각도 못한 의외의 질문들도 있었다. 집단지성의 위력을 실감했다. 특히 직업상 언제나 젊은 학생들과 상호작용한다는 믿음 하에 생각만큼은 또래보다 젊게 살고 있다고 자부해왔다. 그러나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상호작용이라는 것이 강의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 막상 학생들의 실제 생각을 들어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 반성이 함께 일었다. 참 많은 것을 얻었다. 그런 반성 속에 처음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에서만 시도하던 한줄 질문을 이제는 모든 수업에서 받아보고 있다. 매학기 약 400개, 일 년간 800개가 넘는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다 보면 학생들의 생각과 트렌드를 읽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지금도 매 번 시간을 할애해서 ‘한줄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상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답변시간이 되면 가벼운 질문에는 가벼운 유머로, 진지한 질문에는 진지하고 길게, 사실관계를 명확히 해 주어야 할 것은 내용을 명확히 확인하고 대답해 준다. 그렇게 몇 년을 계속한 결과 학생들과 주고받은 한줄 질문 수천 건이 축적되었다. ‘한줄 질문’에는 필자가 강의하는 과목들의 특성상 과학기술에 관련된 내용이 많다. 그러나 과학에 대한 이야기는 학문에 어떻게 접근해가야 하는지에 대한 맥락으로 연결되고, 결국은 우리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통하게 된다. 그래서 젊은 학생들의 생각이 궁금한 교육자, 자신의 고민에 대한 답을 발견할 수 있을까 싶은 학생, 과학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정리하고 싶은 과학도와 공학도들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감히 기대해 본다. 그리고 책으로 편집되는 과정에서 당연히 내용의 잡다한 첨삭이 있었다는 점을 밝혀둔다. 한줄 질문에 답하는 시간 속의 현장감을 살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에는 수업에서 답한 내용 그대로 전달을 생각했었지만, 글은 말과 다르다는 점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중복되는 질문도 많았기 때문에 유사한 질문들은 대표질문으로 통합하고 내 답변들을 정리한 뒤 말미에 추가적인 내용을 덧붙이는 형태로 기획했다. 또 시간의 부족으로 제대로 대답해 주지 못한 설명들도 추가되었다. 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강한 표현들은 온건하게(?) 가다듬었다. 비록 약간의 변형을 가했지만, 한줄 질문 본연의 생생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수업시간의 분위기를 최대한 그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농담조의 어투들도 거의 그대로 옮겼고,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대화체 형식의 본래 리듬도 살려 두었다. 그래서 큰 흐름은 모두 필자가 학생들에게 대답해준 실제 수업의 맥락을 따르고 있다. 아무쪼록 수업의 분위기가 잘 전달된 책이 되었기 바란다.  -------------  한 줄 질문 예시 Q.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만유인력 법칙이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을 설명한다고 배웠는데, 그러면 만유인력은 왜 법칙이고, 상대성이론은 왜 이론인가요? A. 대부분 중등교육과정에서 엄밀히 검증된 것이 법칙, 아직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을 이론이라고 부른다고 배우기 때문에 나오는 질문으로 보입니다. 이 질문도 많이 나오는데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사실 관행일 뿐입니다. 만유인력이 더 옳은 것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보통 이론은 말 그대로 그 이론을 가르치는 데 사용되지만 법칙이라는 표현은 ‘적용’할 때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만유인력 법칙을 사용해서 계산하시오.” 같은 표현처럼 말이죠. 현실적으로 우주 개발에 사용되는 방정식이 만유인력 방정식이니 만유인력 법칙이라는 관용적 표현이 익숙해진 것 아닐까요. ‘만유인력 이론에 의하면’이라는 표현은 뉘앙스가 다르지요. 이론 전체를 의미하는 느낌이 바로 들 겁니다. Q.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이 궁금합니다. A. 이미 여러 번 나온 질문이었죠? 아주 인기 있는 질문입니다. (웃음) 이번엔 작정하고 여러 형태로 대답해 보겠습니다. 먼저 ‘나오지 않는’ 원인을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나오는 원인을 먼저 물어야 합니다. 그 역이 나오지 않는 원인이니까요. (1) 당연한 측면. 과학의 역사가 짧고, 경제와 관련된 응용기술 위주의 인적, 물적 투자가 강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난 수십년간 대한민국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 비하적 시각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2) 하지만 지난 10-20년을 놓고 생각해 보면 이제는 무언가 전략적 대응도 필요할 겁니다. 한국의 전반적 과학기술 수준에 비해 저평가된 부분들이 분명히 있어 보이니까요. 못 받는 이유에는 분명히 네트워크의 문제가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이 노벨상을 거의 독식하고 있고, 그 중 40%는 유태계 학자들입니다. 미국에서 유태인 비율이 1.5% 미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쏠림현상이 큽니다. 이건 유태인들이 실제 뛰어난 역량을 가진 측면도 있지만 기존의 학계 네트워크에서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노벨상 추천 위원들이 잘 알고 있는 학자들이 결국 추천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니까요. 결국 알려야 합니다. 이제는 그래도 10여년 전에 비해 한국의 위상이 많이 올라가 가능성은 많이 높아졌다고 봅니다. (10년 전 만해도 스웨덴 사람들에게 한국은 입양아 양산국 정도였지만, 이제는 삼성이나 LG, 현대자동차 등을 이름은 들어본 정도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한류도 어느 정도 알려졌으니 한국이 과학도 좀 하나보다 하는 분위기가 나오기 쉬워졌을 것입니다. ) (3) 우리가 강한 분야 자체가 노벨상에 없는 것도 이유입니다. 만약 정보통신상이 노벨상 분야 중에 있었다면 분명히 몇 개는 받았을 겁니다. 이런 연구가 기업적 연구라 노벨상을 못 받았다는 식의 해석은 필요 없습니다. 쇼클리나 바딘이 반도체로 노벨상을 받은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기본적으로 노벨상이 19세기말의 과학 분류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한 이유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수한 전자통신 인력들을 물리화학 분야로 억지로 몰아넣을 이유도 물론 없는 것이구요. (4) 그런 전제하에 굳이 문제점을 생각해 본다면, 전공 간 장벽 문제가 큽니다. 우리는 학과 간 장벽, 학교 간 장벽이 자연스러운 학문간 교류와 다양한 경험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특히 한국 대학이 크게 혁신해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5) 단기간 결과를 얻기 바라는 조급증 역시 큰 문제입니다. 기술을 도입하거나 추격하는 것은 짧은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창출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문화적 인프라의 구축까지 생각하면 수십 년의 장기적 시각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10년 내로 새로운 반도체를 개발하자는 것은 멋진 목표지만 10년 내로 노벨상을 받도록 하자는 것은 이상한 슬로건입니다. 일본의 경우처럼 니시나가 코펜하겐 네트워크에 연결된 결과 유가와 히데키의 노벨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인과관계도 애매하고 긴 시간 동안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굳이 노벨상을 목표로 하지 않고 국가 내의 유무형의 과학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구축하는데 신경을 써야 합니다. 올림픽 금메달 숫자가 우리의 스포츠 수준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듯 자연스럽게 결과로 노벨상이 나오면 박수쳐 줄 일이지, 억지로 노벨상을 목표로 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과학의 발전을 남에 대한 과시적 용도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번 노벨상이 나오면 힘을 얻고 꿈을 얻은 후학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노벨상이 지속적으로 배출되게 될 겁니다. 언제나 첫 단추가 어려운 것이지요. *<젊은 과학도를 위한 한 줄 질문>은 12월 말에 독자 여러분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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