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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읽는 책 한쪽 | 정원의 기억


시간을 뛰어넘은 두 예술가의 만남, 마조렐과 이브 생 로랑의 기억

―마라케시, 마조렐 정원・

화가 자크 마조렐과 패션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정원

“이곳은 가장 아름다운 나의 작품이다.”

프랑스 국적의 화가이지만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마라케시를 누구보다 사랑했고, 그래서 그곳에서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자크 마조렐(Jacque Majorelle, 1886~1962)이 자신이 직접 만든 정원을 두고 한 말입니다. 정원 자체를 자신의 가장 자랑할 만한 작품으로 본 셈이죠.

마조렐은 미술계에서는 흔히 ‘모더니스트’, ‘오리엔탈 페인팅 작가’로 불리기도 하죠. 모더니즘의 경향을 띠고 있고, 이슬람 혹은 북아프리카 민족의 토속성을 그린 서양화가 그룹에 속해 있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촉망받는 화가였던 마조렐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온 프랑스를 떠나, 아프리카의 모로코 마라케시에 정착을 하고, 여기에 이토록 아름다운 정원을 만든 이유는 뭘까요?

마조렐 정원의 이야기는 이 정원을 만든 마조렐의 안타까운 생애 마지막 순간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1947년, 마조렐은 40여 년 동안, 자신의 전 재산과 시간을 투자해 만든 이 정원의 개방을 결심하죠. 그 이유는 재정적으로 힘들어진 정원의 관리비를 충당하기 위해서였는데요. ‘경제적 어려움 해소’라는 그의 실질적인 이유와는 상관없이 대중들의 관심은 뜨거웠고,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화가가 만든 정원은 찬란한 색과 마라케시 자생식물들이 어우러진, 말 그대로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창성이 가득했고, 무엇보다 그가 말했듯이 너무나 아름다운 작품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1956년 마조렐은 이 아름다운 정원과 집을 팔고 치료를 위해 파리로 떠납니다. 지병으로 앓고 있던 심장병이 도지면서,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죠. 게다가 그는 이즈음 이 정원을 함께 일군 동지인 아내와도 이혼을 하면서 정신적 충격도 극심했습니다. 지인들이 기억하는 그는 파리에 도착한 후, 늘 마라케시와 그곳의 정원을 그리워했다고 해요. 그러던 중, 그는 1962년 파리에서 도로를 건너다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한 뒤, 결국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이 쓸쓸한 죽음과 함께 찬란했던 마라케시의 마조렐 정원도 점점 빛을 잃어가는 듯했죠. 하지만 생전 너무나 사랑했고, 죽는 날까지 그리워했던 그의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이 정원은 1980년 뜻밖의 전환을 맞습니다. 당시 세계 패션디자인계를 움직이는 거물 중 한 명이었던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ant, 1936~2008)이 이곳의 건물과 정원을 구입하면서 복원을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원래 이 정원은 화가 마조렐의 정원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이브 생 로랑의 정원’으로도 불리는, 시대를 건너뛴 두 예술가의 정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라케시의 토속성을 해석하다

자, 그럼 두 예술가의 정원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볼게요.

마조렐 정원은 입구부터 인상적입니다. 마라케시는 흙 자체가 붉은색을 띠고 있어서, 이 흙으로 만든 벽돌 또한 붉은색이죠. 그래서 이 11세기에 형성된 중세도시, 마라케시 자체를 ‘레드 시티’, ‘붉은 도시’라고도 부릅니다. 마조렐 정원의 입구는 사방이 바로 이 붉은 벽돌로 둘러처져 있고 바닥 자체도 붉은 색으로 가득하죠. 그리고 그 중앙에 놓인 반듯한 사각형 분수에는 얕은 물이 담겨져 있는데, 그 재료가 파란색 타일입니다. 그 주변으로는 코발트블루, 민트, 오렌지 컬러 화분이 놓여 있고요.

어떠신가요? 듣기만 해도 그 색이 충분히 상상이 되지 않나요? 정말 ‘이보다 색감이 강렬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색 자체가 지닌 감도와 대비가 정말 명확한데요. 이런 색의 조합은 입구로부터 정원 전체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 정원의 가장 선명한 디자인의 축은 바로 정원 전체를 좁고 길게 관통하는 수로인데요. 이 수로 역시도 코발트블루 색으로 강렬하게 페인팅되어 있고, 여기에 매우 밝은 노란색, 민트, 오렌지색이 혼합돼 있습니다.

한마디로 마조렐 정원은 건물, 바닥, 화분, 전체 부지가 뚜렷한 색의 조합으로 마치 고갱이나 고흐의 강렬한 화폭을 연상시킬 정도입니다. 이 색의 조합은 화가인 마조렐이 직접 정해 페인팅을 했는데요. 강렬한 코발트블루의 색상은 마라케시의 전통 타일의 블루에서 선택하고, 그와 대비되는 빨간색은 마라케시의 도시 색상인 붉은 흙색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마라케시의 토속성이 마조렐에 의해 새롭게 해석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크 마조렐의 이 독창적인 정원 예술은 어떻게 탄생한 걸까요? 그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특별한 가족과 유년시절을 이해하면 좋을 것 같아요.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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