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선(仙) 수행 중인 제자와 스승 사이에 오고간 유명한 대화가 있다.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어떻게 하면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까?” 그러자 스승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잘 사는 법을 배우면 된다.” 스승의 대답에 얼떨떨해진 제자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스승님, 그렇다면 잘 사는 법은 어떻게 배울 수 있습니까?” 스승이 다시 알쏭달쏭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야 간단하지, 죽음을 이기면 되지.”
이 재미난 대화는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 줄곧 시달려왔던 가장 근본적인 딜레마를 단 몇 줄로 요약하여 보여준다. 언젠가는 반드시 죽음으로 끝날 것이 확실한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인가? (중략) 지상에 잠깐 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치는 존재가 지니는 타당성 혹은 부당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인간처럼 이성적인 동물은 늘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의 의미를 찾고자 애쓰기 때문이다. 죽기 위해서 태어난다는 건 사실 납득하기 어려운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닌가? 설혹 그것이 전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지라도, 부질없고 비논리적인 이 과정은 아무래도 당혹스럽고, 그렇기 때문에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이 사실이다.
흔히들 죽음은 모든 인간의 실존에 유일한 공통분모라고 말한다. ‘위대한 죽음의 여신’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 천재나 바보, 국제적 스타나 가장 평범한 인물을 가릴 것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이렇듯 죽음 앞에서의 평등이 아무리 만고불멸의 진리라고 해도, 솔직히 그것만으로는 우리 자신 혹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원히 이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에 위로가 되지 못한다. 인류 전체를 놓고 볼 때, 지금으로부터 2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 1천억 명이 죽었음을 고려한다면, 죽음이 평범한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개별적인 죽음은 하나하나가 비극적인 사건이다. 실제로 죽음에 이르는 자나 그들과 가깝게 지내던 친지들 입장에서 보자면, 유일무이한 삶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겪는 ‘사물의 이치’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 각자가 개별적으로 맞이해야 하는 가장 큰 시련임에는 변함이 없다. 죽음은 무대에서 연극이 시작되기도 전에 미리 정해져 있는 결말이다. 매일 조금씩 써나가는 이 연극 극본의 소재가 되는 하루하루의 사건들을 조금이라도 일관성 있게 엮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한다. 마지막 막이 끝나고 커튼이 완전히 내려지기 전에 우리는 그 같은 결말이 내려져야만 하는 까닭을 이해하려 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의 갑작스러운 종말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 삶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죽음이 지닌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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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들과의 추억을 그리는 것이 인류의 고귀한 습성이라지만, 남의 죽음이 아닌 우리 자신의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불안감으로 말하자면 그건 정말이지 우리의 실존을 망쳐놓을 수 있는 독버섯과 같은 특성이라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상당 부분은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사후 세계의 존재를 믿건 믿지 않건, 죽음은 어쨌거나 입에 올리지 않는 편이 낫거나, 꼭 입에 올려야 한다면 마지못해 주저하며 언급하는 금기이다.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우리 자신의 죽음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러한 거북함의 상당 부분은 죽음에 대한 몰이해에서 온다.
우리는 왜 죽는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역설적이게도 모든 종교와 철학 사조들이 죽음의 심리적・사회적・형이상학적 측면에 대해서 깊이 있는 성찰을 계속하고 있음에도 우리들 대다수는 삶의 과정이나 죽음을 몰아오는 사건들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가 없다. 우리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믿기 어렵고 있음직하지 않은 경험인지, 지금으로부터 30억 년 전에 출현한 하나의 원시세포에서 시작된 경이롭기 그지없는 모험인지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다. 더구나 우리는 죽음이 실존을 마감하는 부정적이거나 부당한 종말이라기보다,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상에 출현하기까지의 과정에 필연적이고 본질적인 역할을 해온 긍정적인 현상임을 자주 잊어버린다. 이 같은 상황은 사실 매우 유감스럽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죽음을 이해하게 되면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따라서 영생 중의 한순간을 사는 특권을 한층 더 충실하게 맛볼 수 있다. 그 한순간이 아무리 덧없고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이런 관점에서 우리 두 공저자는 삶을 구성하는 굵직한 윤곽선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죽음의 여러 방식을 예시해보자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암은 어째서 불치의 병일까? 어떻게 해서 무게가 10억 분의 1밀리그램도 안 되는 일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단 며칠, 아니 몇 시간 만에 인간을 죽일 수 있을까? 왜 어떤 상처는 죽음에 이르게 하고, 다른 상처는 겉보기엔 위중해 보여도 표피적인 손상만 입힐 뿐일까? 인간은 어떻게 독살에 이르는가? 또 용케 이러한 시련을 모두 피했더라도, 왜 결국 늙어서 죽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죽음에 이르는 이러한 과정에 대한 이해가 삶이라는 현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납득하고, 죽음이야말로 실존의 논리적이며 유일한 귀결이라고 믿는 우리의 확신을 독자들에게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죽음을 길들이는 것이야말로 삶을 최대한 향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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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에 관한 모든 것>은 12월 말에 독자들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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