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읽는 책 한쪽 | 컵라면이 익을 동안 읽는 과학



<과학과 친구가 되는

별거 아닌 계기에 대하여>

“결국 과학이란 논리라기보다 경험이며, 이론이라기보다 실험이며, 확신하기보다 의심하는 것이며, 권위적이기보다 민주적인 것이다. 과학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회를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만드는 기초가 되길 기원한다.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니까.”

김상욱 교수의 저서 『떨림과 울림』의 한 부분입니다. 과학이란 무엇일까요? 과학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과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과학이 무엇인지 ‘느낌’은 알지만 말로 정의하려고 하면 말문이 막히게 되죠. 이는 과학이 지식이 아니라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고, 아는 것은 증거를 들어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는 것을 과학적 태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태도는 과학이라는 학문 전체를 이루고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요소이죠.

오늘날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80년 전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단백질이 우리 몸의 설계도라고 믿었습니다. 과학자들은 단 4종류의 뉴클레오타이드를 가진 DNA로는 크고 복잡한 생명체의 정보를 저장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그 대신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은 20종류가 넘었기에 DNA보다 단백질이 유전물질로서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1944년 캐나다의 의사였던 오즈월드 에이버리가 실험을 통해 DNA가 유전물질임을 확실히 밝혀냈어요.

에이버리는 폐렴균을 이용해 실험했는데, 폐렴균은 특이하게도 탄수화물 껍데기가 있는 균과 없는 균이 있습니다. 편의상 껍데기가 있는 균은 껍균이라고 하고 껍데기가 없는 균은 없균이라고 부를게요. 없균 사이에 껍균을 넣어주면 없균의 일부도 껍데기를 가지게 되었죠. 에이버리는 이때 껍균이 없균에게 전달해주는 물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에이버리는 껍균에서 추출한 단백질, 탄수화물, DNA에 각각 없균을 넣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껍균의 DNA에 넣은 없균만이 껍균이 된 것을 확인했죠. 에이버리는 이 실험을 통해 없균을 껍균으로 만드는 유전물질의 정체가 단백질이 아닌 DNA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 아직도 단백질이 유전물질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자를 본다면 즉시 자리를 피하세요. 1940년대에서 시간여행을 해온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처럼 과학은 태생적으로 지조가 없는 학문입니다. 무조건 옳거나 완벽해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아니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고, 알아낸 것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않는 불완전한 학문입니다. 과학은 하나의 관측 결과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결과가 나타나면 그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관측 결과에 따라 유전물질의 정의가 바뀐 것처럼 말이에요. 이렇게 수시로 옮겨 다니는 과학적 사실 앞에서는 누구도 과학을 잘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있는 거예요. 연구자들이 따지는 것은 경력이 아닌 과학적 타당성입니다. 경험이 많으면 더 좋은 의견을 낼 수 있겠지만, 경험이 적어도 좋은 발견을 할 수 있어요. 때문에 학문 안에서는 30년차 연구자든, 갓 졸업한 대학원생이든, 모두가 동등합니다. 그리고 변화하지 않는 과학자는 뒤떨어지죠. 이처럼 과학은 완벽하지 않기에 재미있습니다. 과학은 조심스럽고 어색하게 다가가는 친구가 아니에요. 틀린 말을 하면 비판할 수도 있고, 농담을 할 수도 있는 친구입니다.

우리는 과학을 태도가 아닌 지식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어려워하곤 합니다. 수업시간에 과학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과학이 단순히 사실들의 나열이라고 느껴져 싫어지기도 해요.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학을 좋아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는 한국과 중국에서만 흥행에 성공했어요. 다른 나라에서 흥행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영화의 내용이 어려워서’였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암기에 지쳤을 뿐, 사실 과학자의 기질을 이미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과학이 암기과목이라는 편견에 가려져 있을 뿐이죠.

꿈꾸는 과학 필진들에게도 과학과 친구가 된 순간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실험이 흥미로웠고, 누군가는 별을 보며 우주의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또 누군가는 텃밭을 가꾸며 어디든 실험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죠. 이처럼 과학을 좋아하게 되는 계기는 의외로 작은 것이 되기도 합니다. 과학은 정말 별게 아니거든요. 이 책은 인생이 염기성인 이유, 뇌에 우동사리가 차 있다는 말이 욕이 아닌 이유 등 궁금하지 않았지만 듣고 보니 궁금해지는 이야기들을 가득 담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책이 과학을 좋아하게 되는 별거 아닌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