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과학사에서 지동설 혁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학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사실상 현대적 의미의 과학이 탄생한 사건이기도 하다. 거기에 이 과정을 탐구하며 얻는 장점들을 덧붙인다면, 과학의 시작점이기에 과학의 가공되지 않은 ‘원형’을 볼 수 있으며, 특히 아직 고도의 수학이 개입하지 않아서 그 내부를 비교적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다. - 현대과학의 경우는 극단적 단순화 없이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난해해져 버렸다. 그리고 이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과학의 특성과 과학적 사고법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결국 내가 오늘날 어떤 식으로 ‘과학’할 것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 지동설 혁명이다.
이 책은 ‘붓 가는 대로’ 쓴 지동설 혁명에 관한 글이다. 교과서로 기획되지도 않았고, 새로운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자 쓴 책도 아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사실들은 당연히 다른 책들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만의 의미가 제시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08년 나는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과학사 전공자로서는 과학사의 성지에 온 셈이었다. 뉴턴의 연구실 앞에서 섰을 때,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마음 한 구석에 뉴턴이 들어왔다. 그리고 한 가지 결심을 굳혔다. 꼭 뉴턴을 주인공으로 하는 학부강의를 만들어 보리라.
다행히 빨리 기회가 와서 2010년에 나는 한양대학교에서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라는 이름의 과목을 개설하는 데 성공했다. 광범위한 과학사를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16-17세기의 한 사건에 집중한 강의가 만들어졌다. 지동설 혁명에 대해서만 수업시간의 80%를 할애한 수업이었다. 몇 년 동안 강의가 진행되고 내 강의안은 약간씩의 교정이 가해졌다. 그러면서 학생들의 반응이 스스로 흡족할 정도는 되었다. 무엇보다 오늘의 대학생들이 - 특히 이공계열 대학생들이 - 얼마나 과학사적 지식을 원하고 있는지, 또한 얼마나 접할 수 없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막연히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수강하다가 역사가, 더구나 과학의 역사가 재미있을 수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접하는 것을 볼 때마다 흐뭇한 기분이 되곤 했다. 그리고 몇 년의 수업경험이 축척되면서 내 수업의 흐름을 확장해서 한 권의 책을 써보자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하지만 오랜 강의를 거쳤음에도 강의를 책으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말하기와 글쓰기의 차이로 인해 전체적인 설계부터 다시 바꿔야 했다. 그래서 본래의 수업에 비해 많은 내용이 추가되었다.
어느 학생에게 받은 강의평가 중 ‘달의 뒷면을 보는 수업’이라는 말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말이 꽤 멋있게 느껴져 어느새 그 슬로건이 내 수업들의 일반적 목표가 되었다. 그래서 쉬운 흐름 속에 과학의 ‘뒷면’을 넣는 것을 기본 목표로 했다. 즉, 이 책은 대중서로 기획되었지만 정확히는 과학을 ‘되돌아보려는’ 사람들을 예상독자로 하고 있다.
역사만큼, 특히 과학의 역사만큼 재미있을 수도 지루할 수도 있고,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과목도 별로 없을 것이다. 역사를 재미있게 배워보는 방법은 고금으로부터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인물들의 이야기로 그들을 느끼며 알아가는 방법이다. 사건 연도나 외우는 것은 전문 역사가들이나 할 일이다. 내 생과 전혀 상관없게 느껴지는 과학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인간을 먼저 알아야 그 과학자를 이해할 수 있고 특별한 재능과 업적도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달걀을 품는 아이 이야기나, 목욕탕을 벌거벗고 뛰쳐나가는 노학자의 이미지 정도여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이상화되고 단순화되어 동화가 되어 버린 왜곡된 과학자상은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조금 더 깊게, 그러나 질리지는 않게, 거기까지가 이 책의 목표였다.
이 책에는 다른 책들과 다른 시각과 평가들이 들어있을지 모른다. 이상한 잣대라고 폄하하지 말고, 과도하게 표준적 척도로 바라보지도 말며, 독자들이 하나의 평으로서 이해해주기 바란다. 사실과 사실 사이의 모호함에는 나의 추리들이 포함되었다. 어쨌든 최소한 내가 느꼈던 진실과 나름의 감동을 넣어보고자 한 노력의 과정에서 나온 것은 분명하다.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게 변명해 둔다.
역시 역량의 한계이겠지만, 가장 맑은 정신 상태일 때, 일관적인 가치관을 유지하며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직 쓸 수 있을 때 써 두자는 생각으로 띄엄띄엄 원고를 진행했다. 수업하고, 논문에 쫓기고, 기말 채점을 하고, 앓고, 집안 대소사를 처리할 때면 어쩔 수 없이 쉬어 가면서 간헐적으로 원고는 진행되었다. 그래서 때로는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해 제 딴에 멋스런 문장을 써보고자 한 흔적과, 감기에 훌쩍 거리며 일단 써두고 나중에 고치자고 한 시간과, 엽기적인 사건소식에 시대유감을 표하며 연구실로 도피하며 쓴 글들이 뒤섞였고, 춘하추동의 시간들 속 내 감정의 기복들이 모두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2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런 시간들을 차별 없이 오롯이 녹여 넣었다. 물론 그 시간 안에는 내 게으름의 흔적도 있다. 그 또한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문체가 간간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전체적으로 통일성 있게 문장을 다시 손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만 뒀다. 모자이크 같은 모양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새롭게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아찔해 보였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 다양한 순간들 속, 다양한 상태의 나 또한 나의 모습들이고, 이 글은 나의 글이니 그대로 두는 것이 더 의미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미덕 아닌 미덕이 있다면, 이 책은 절마다, 장마다 맛이 다를 수 있다고 자위해 본다.
많은 위대한 과학자들의 인생 또한 그렇지 않았던가.
* 이 책은 8월 초에 독자 여러분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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