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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읽는 책 한쪽│휘어진 시대



『휘어진 시대』(전3권)


1권 원자시대의 시작과 상대성이론의 탄생

2권 양자역학의 성립과 과학낙원의 해체

3권 원자폭탄의 출현과 거대과학의 시대


대학에서 과학의 역사와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가르친 지도 어느덧 20년의 시간을 바라본다. 그간 맹렬한 열정과 사명감으로 과학도의 꿈을 꾸거나, 탐스러우나 너무 신 과일처럼 과학을 바라보는 학생들 수천 명을 가르쳤다. 그 과정 속에서 과학에 대한 호불호와 상관없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과학 자체를 오해하고 있는지 절실히 느껴왔다. 특히 아동용 위인전 속 박제되어 단순화된 과학자들의 이미지가 주는 해악은 상당하다. 그것은 아동용 위인전 탓이 아니다. 일정한 시점이 되어 어른을 위한 과학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마땅할 터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등교육과정과 이후의 사회생활에서 그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소한 학생들에게 그들이 존경하는 과학자에게 진정 본받고 흉내 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만큼은 제대로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입버릇처럼 충격요법으로 여러 오만한 말을 던졌다. “여러분은 자신이 과학자들을 잘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다. 전혀 모른다.” 아리송한 말들도 일부러 던져보았다. “과학은 선하거나 악하지 않고 과학자가 선하거나 악할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과학자는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과학이 선하거나 악하다.”


전혀 다르게 생각해보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말한 이유들이 이 책을 읽으며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조금 더 깊게. 그러나 질리지는 않게.”라는 전작의 슬로건을 지키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현대과학 자체의 난이도로 인해 이번 책에서는 훨씬 어려운 목표였다. 그러면서도 이 책이 감히 마중물이자 디딤돌이 되기 바란다. 컵에 물을 담아주기 위한 생각으로 쓴 책이 아니요, 독자를 업고 과학의 산으로 올라갈 자신도 없지만, 단지 스스로 물을 얻고자 하는 이에게 좀 더 명확한 길을 알려주며, 긴 산행을 시작하려는 이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


1권에서는 고전역학의 시대가 끝나고 양자(Quantum)와 방사능(Radioactivity)과 원자(Atom)와 상대성(Relativity)이 전면에 부상한 1896년에서 1919년까지의 시대를 다룬다. 이 시기는 독일의 역사에서 비스마르크 실각 후 호전적인 빌헬름 2세가 통치하던 독일제국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과학혁명의 시대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인류적 재난 속에 빛이 바랬다. 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 20여 년 가량의 기간 퀴리 부부, 톰슨과 러더퍼드, 플랑크와 아인슈타인 등은 엄청난 약진을 이뤄냈다. 또한 이 시기는 프랑스에서 퀴리 부부의 방사능 연구, 영국에서 톰슨과 러더퍼드의 원자 연구, 독일에서 괴팅겐과 카이저빌헬름 연구소의 결과물 등 국가적 과학 스타일의 토대가 분명히 자리 잡는 시기다. 더욱이 플랑크가 아인슈타인을 발굴하고, 피에르 퀴리가 랑주뱅을 찾아내고, 마리 퀴리는 이렌 퀴리를 양육했고, 톰슨은 러더퍼드를 키우고, 러더퍼드가 보어를 성장시키는 등 과학세대 간의 성공적 순환들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이 시기 플랑크, 퀴리 부부, 러더퍼드, 아인슈타인 등의 업적은 개별 발견으로도 뛰어났지만 뒤를 이은 거대한 흐름의 방아쇠이기도 했다. 그 결과로 1920년대에는 전혀 새로운 과학이 등장할 수 있었다.


2권에서는 새로운 세대에 의해 새로운 과학이 만개한 1920년대와 그 과학낙원이 붕괴하는 1930년대를 다룬다. 1권에서 다룬 엄청난 업적들은 또 한편 1920년대 양자역학의 대두라는 더 거대한 충격의 전주곡이기도 했다. 그리고 1900~1930년의 단 한 세대의 기간을 지나면서 과학은 더 이상 일반인이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형이상학적인 개념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2권의 주인공은 사실상 양자역학이다. 불확정성, 상보성, 핵분열 등의 새로운 용어들이 과학에 나타났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설명되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양자역학의 시대는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와 겹쳐진다. 그리고 뒤이은 히틀러의 집권은 이 아름다운 과학의 국제네트워크를 붕괴시킨다. 유럽과학의 몰락이 가속화되고 세계과학이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던 1930년대를 지나는 암울한 과정과 그로 인해 잉태된 새로운 정치적 위기까지의 이야기로 2권은 마무리된다.


3권은 1권과 2권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시간들의 짧은 정리로 긴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이 시기 가장 순수한 과학자들의 열정적 연구가 가장 끔찍한 결과물로 종합되며 대전쟁이 종결되었다. 이 야합과 몰락의 시기는 독일 제3제국 시절과 겹친다. 그리고 대재앙 이후의 세상은 더 이상 전과 같지 않았고 그렇게 바뀐 세계는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 특히 3권의 구성은 과학 외적인 이야기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 『태양을 멈춘 사람들』의 경우까지는 아직 과학사가 사상사와 연계되는 시절이었고, 과학은 정치경제의 영역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리고 『휘어진 시대』 1권과 2권에서도 아직까지 정치나 전쟁의 영역은 과학과 느슨하게 상호작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시기 과학과 정치의 영역은 완전히 혼재되어 야누스의 모습을 띤다. 전쟁이 과학을 삼키더니, 결국은 과학이 전쟁을 삼켜버렸다. 그래서 나타난 거대과학! 그 또한 과학의 모습이다. 이 시기의 뒤섞여 모호해진 과학을 확인하는 과정이야말로 과학의 본질을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이라 필자는 확신한다. 그렇게 어제까지의 과학을 확인하고 나면, 우리는 이 시대를 반추할 힘을 얻고, 오늘 이후 과학의 얼개를 조심스럽게 설계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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