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곱셈과 나눗셈을 먼저 해야 하지?
니체 | 안녕하십니까! 니체입니다. 철학자죠. 아마도 니체라는 이름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제가 바로 그 니체입니다. 저의 문제는 수학의 기호나 계산 순서와 관련된 것입니다.
우선 저는 왜 곱셈과 나눗셈을 먼저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8+12÷6-11을 보세요. 그냥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럼 헷갈릴 일도 없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답이 틀렸다고 합니다. 아니, 저렇게 써줬으면서 왜 중간 것부터 하라는 것인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다 같은 기호인데 그 안에서도 무슨 서열 같은 게 있습니까? 서열이 있다면 무슨 기준과 근거로 서열을 정하는 것입니까?
질문은 또 있습니다. 제가 나눗셈을 배울 때 나눗셈이 갑자기 곱셈으로 바뀌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5÷45=5×1/45
아니! 나누는 것과 곱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잖아요. 문자가 다르고, 뜻이 다른데 어떻게 두 개가 등호로 연결될 수 있습니까? 저렇게 하나로 연결될 거 같으면 아예 하나를 쓰던지, 아니면 각기 다른 규칙과 방법을 사용하던지 해야지. 안 그렇습니까?
무슨 사정이나 사연이 있다고요? 사정은 무슨 사정 말입니까? 게다가 더 화가 나는 것은 어디에서나 저렇게 하라고 명령하기만 할 뿐, 왜 그런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다는 겁니다. 좋게 봐줘서 저렇게 약속되었다고 칩시다. 모든 약속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그런 약속이 어디 있습니까?
어떤 절대적인 관념이나 가치도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 배경을 알면 약속도 잘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현재에 맞게 얼마든지 약속을 적절하게 고쳐서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계산에서는 그런 게 전혀 없었습니다. 어떤 책에서도 계산의 규칙을 그저 제시하기만 했습니다. 수학이 신으로부터 받은 무슨 계시입니까? 따지고 보면 계시란 것도 사람마다 다르게 찾아오는 법입니다.
전 도저히 이런 상황을 수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수학깨나 한다는 사람한테 가서 물어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걸 묻냐며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알고나 무시하는지 원! 그러다 맘대로 질문하고, 맘대로 답해볼 수 있는 수학카페를 알게 돼 이렇게 찾아오게 됐습니다. (중략)
곱셈은 특별한 덧셈, 나눗셈은 곱셈의 역!
갈릴레이 |어디 보자. 덧셈은 합하는 것이고, 뺄셈은 빼는 것이야. 고로 덧셈에서 양은 늘어나게 되고, 뺄셈에서 양은 줄어들게 되지. 뭐 이렇다 할 만한 게 없군. 곱셈과 나눗셈은 어떻게 정의되어 있지?
니체 | 내가 한번 읽어볼게. 곱셈…… ‘몇 개의 수나 식 따위를 곱하여 계산함’, 나눗셈은 ‘몇 개의 수나 식 따위를 나누어 계산함’(국립국어원). 그 말이 그 말이군.
유클리드 | 사전적 정의보다는 수학적인 정의를 보는 게 좋겠어.
니체 | ‘사과가 5개씩 묶여 있는 봉지가 4개 있다. 사과의 총 개수는 5+5+5+5개인데 이것을 간단히 줄여서 5×4라고 한다. 즉, 5×4는 5를 4번 더하는 것과 같다.’
유클리드 | ‘×’는 앞에 있는 수를 뒤에 있는 수만큼 더하라는 뜻이군. 7×5=7+7+7+7+7!
니체 | 그래? 그렇다면 곱셈은 덧셈과 별로 다를 게 없네. 아니, 다른 게 없다기보다는 특별한 덧셈이라고 할 수 있겠군. 특정한 수를 반복해서 더하는 것이니까. 덧셈의 부분집합이야.
곱셈이란 건 덧셈을 전제로 한 계산이야. 그 말은 덧셈이 먼저 시작되었고, 곱셈은 그런 덧셈의 과정에서 파생된 것임을 뜻해. 난 사칙연산을 각기 다른 걸로 알고 있었는데…….
유클리드 | 그런 사정은 나눗셈도 마찬가지야.
니체 | 나눗셈도? 어디 한번 확인해볼게. ‘10개의 사과를 2개씩 나눠주면 다섯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다. 이것을 간단히 10÷2=5라고 한다.’ 나눗셈은 나눠주는 것이잖아. 이건 덧셈이나 뺄셈과는 전혀 다른 계산이야.
유클리드 | 과연 그럴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 하나 물어볼게. 나눠주는 것의 반대는 뭐지?
니체 | 나눠주는 것의 반대? 그거야 거둬들이는 거겠지.
유클리드 | 맞아. 좀더 구체적으로 한다면, 똑같이 나눠주는 것의 반대는 똑같이 거둬들이는 게 돼. 그런데 똑같이 나눠주는 게 나눗셈이야. 그렇다면 똑같이 거둬들이는 건 뭘까?
니체 | 똑같이 거둬들인다……. 어? 그건 곱셈이잖아. 똑같은 양을 여러 번 더하는 셈이니까. 그럼 나눗셈이 곱셈의 반대인 거야?
유클리드 | 그렇지. 그러니까 나눗셈은 곱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거야. 곱셈이 양의 수집과 관계된다면 나눗셈은 양의 분배와 관련이 있는 셈이지.
니체 | 곱셈과 나눗셈을 정보의 수집과 분배로 해석한다면 곱셈과 나눗셈은 꼭 필요할 수밖에 없었겠군. 그런데 분배는 다른 방식으로도 가능할 것 같은데. 몇 개씩 나눠줄 것인가가 아니라 몇 사람에게 나눠줄 것인가를 따져볼 수도 있지 않나?
갈릴레이 | 잘 짚어내는데. 그렇다면 나눗셈에는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겠네.
10÷2=5 → ‘10개를 2개씩 나눠주면 다섯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다.’ ‘10개를 두 사람에게 나눠준다면 5개씩 나눠줄 수 있다.’
유클리드 | 나눗셈을 뺄셈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 10÷2를 10에서 2씩 빼갈 때 몇 번이나 뺄 수 있을까를 보는 거지. 10에서 2씩 뺄 경우 5번이면 완전히 없어져.
니체 | 그렇다면 나눗셈은 곱셈이야, 뺄셈이야? 헷갈리는데. 어쨌든 나눗셈을 그렇게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할게.
갈릴레이 | 중요한 건 각각의 계산이 독립적이지 않다는 거야. 서로 관련이 됐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
곱셈과 나눗셈을 먼저 할 수밖에 없다
유클리드 | 내가 뭐 하나 발견한 게 있는데 들어볼래? 나눗셈을 곱셈의 역으로 보고, 다시 곱셈을 특별한 덧셈으로 본다면 사칙연산은 결국 두 개밖에 남지 않아. 덧셈과 뺄셈만 남잖아.
계산이란 결국 덧셈과 뺄셈만으로 구성되는 거야. 그 말은 계산식이란 수들의 합과 차로 이뤄진 식이고, 계산이란 그 식의 결과를 알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
니체 | 그럼 이칙연산인가? 같은 수준의, 다른 계산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
덧셈과 뺄셈이 원초적인 1차 계산이라면, 곱셈은 1차로부터 파생된 2차 계산, 나눗셈은 2차로부터 파생된 3차 계산이라고 할 수 있겠네. 모두 같은 수준의 계산이 아니었던 셈이야. 가만, 이 사실이 내가 고민했던 계산의 순서 문제와 관련 있는 게 아닐까?
갈릴레이 | 정말! 곱셈과 나눗셈을 덧셈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라고 한다면 덧셈이나 뺄셈이 더 중요한 거잖아. 그렇다면 덧셈과 뺄셈을 먼저 해야지!
니체 | 그런데 배우기로는 곱셈과 나눗셈을 먼저 해.
유클리드 | 아~~ 알겠다. 니체, 네가 못 풀었다는 계산 문제가 뭐였지?
니체 | 말 똑바로 해. 못 푼 게 아니고, 이해를 못 한 거지.
8+12÷4×6-11
유클리드 | 조금 전 계산식이란 합과 차로만 구성된 거라고 했잖아. 이 식에는 ×, ÷도 섞여 있어. 하지만 ×, ÷는 진정한 계산이라고 할 수 없어. 특별한 덧셈을 달리 표현한 기호에 불과해. 따라서 계산을 하려면 ×, ÷를 원래의 식으로 되돌려줘야만 해. 그리고 나서야 진정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지.
갈릴레이 | ×, ÷를 원래의 식으로 되돌려준다는 것은 결국 ×, ÷를 먼저 해준다는 것과 같은 말이네.
유클리드 | 그렇지 않을까?
니체 | 그런 것 같은데. ×, ÷를 먼저 한다는 건 보다 중요해서가 아니라 ×, ÷가 +, -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원 상태로 되돌려준다는 의미였어. 기호의 의미를 알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군. 뭐든지 알고 나면 쉬운데 알기 전에는 어렵게만 느껴진다니까. 초반부터 성과가 좋은데.
★ 니체, 유클리드, 갈릴레이와 함께하는 『수냐의 수학카페 2』 계산 편은 2월에 독자 여러분을 찾아뵐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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