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읽는 책 한 쪽┃공동선 총서 3 가라타니 고진 인터뷰 <가능성의 중심>


"이 인터뷰집이 나오기까지 가라타니 고진 선생님과는 두 번을 만났다. 첫 번째는 2012년 1월 일본에서였고, 그 다음은 2014년 5월 한국에서였다. 선생님을 직접 뵙기 몇 년 전부터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준비해왔고, 인터뷰 후에도 수차례 메일을 주고받으며 내용을 보충하는 과정을 거쳤다. 일본에서의 인터뷰는 가라타니 선생님 자택에서 진행되었다. 먼 길을 처음 찾아오는 우리를 위해서 직접 지하철역까지 차를 타고 나와 환대해주셨다.


자택에 도착하여 카메라를 설치하고, 질문 순서를 체크하며 인터뷰를 준비하는 동안 선생님은 열 장이 넘는 질문지를 들여다보며 인터뷰 시작 직전까지 펜으로 무언가를 쓰고 계셨다. 거기엔 질문만이 아니라 선생님이 이미 손수 빽빽이 적어둔 답변과 보충 설명을 위한 메모가 함께 있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도 전에 선생님이 보여주신 배려와 겸손 그리고 질문자를 대하는 성실한 모습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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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책임과 윤리로서의 자유>에서


인디고 : 의무를 다하는 일이 곧 자유이며, 주체를 정립할 수 있는 길이라는 칸트에 대한 해석은 참 독특하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사실 근대 이후에 자유와 의무, 혹은 윤리는 상반된 가치로 이해되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자유를 개인적인 가치이자 자신이 사회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일종의 권리라고 여기는 반면, 의무나 윤리는 자신이 사회 속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도덕 혹은 법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논의에서는 자유와 의무, 주체와 윤리가 만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보다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가라타니 : 칸트에 있어서 도덕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자유는 일반적인 의미의 자유와는 다릅니다. 칸트에게 자유는 순수하게 자기 원인적인 것, 자발적인 것, 주체적인 것과 같은 말입니다. 편의상 도덕과 윤리를 구별해서 설명해보죠. 도덕은 공동체의 규범이고, 윤리는 자유와 관련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가 구분한 것이지, 엄밀한 정의는 아닙니다. 칸트는 외부의 원인에 의해 규정되는 것을 타율이라고 생각했으며, 반대로 자기 원인을 자율 혹은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칸트 이전에 우리가 알고 있는 두 가지 도덕이 있습니다. 하나는 도덕이란 공동체를 유지·존속시키기 위한 규율이라는 관점입니다. 여기서 도덕은 공동체의 규범입니다. 칸트는 이처럼 공동체의 규범을 따르는 것은 타율적인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도덕을 개인의 행복이나 이익의 문제로 여기는 공리주의입니다. 이조차도 칸트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연적 본능’에 지배당하는 타율적인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윤리는 이와는 다른 자유에 의한 것입니다.


칸트는 도덕과 윤리를 똑같이 모럴리티morality라고 표현했지만 그 둘은 차이가 있습니다. 도덕이 공동체 규범이라면, 윤리는 자유로워지려는 의무(명령)이지요. 자유는 어떤 것에 속박되지 않는 것인데, 행복하고자 애쓰는 인간의 본능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겁니다. 행복이 목적이 되면 우리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유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방금 말했듯이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에 따르는 것, 그리고 타인 역시 자유로운 존재로 대하는 것, 즉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는 명령에 따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당위에 의해서만 자유는 존재합니다. 먼저 자유로워지라는 것은 실제로는 우리가 자유롭지 않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 범죄자를 생각해보죠.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할 때, 그것은 자신의 의도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자기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하죠. 그렇다고 할지라도 칸트식으로 생각한다면 이 사람에게 자유는 있었습니다. 그것은 행동할 당시에 이 사람이 자유롭게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떤 원인들에 의해서 선택했든 간에 그는 범죄를 저질렀고, 거기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그가 자유에 의해서 이 행동을 했다고 여긴다는 것이죠. 이렇듯 자유는 책임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에 따른다는 것은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나버린 일이 자신의 자유에 의한 것이었다고 받아들이는 것, 즉 책임을 지는 일입니다.


다음으로 자유란 칸트의 도덕법칙인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는 명령에 따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이후에 다시 상세히 설명하게 될테니 지금은 한두 가지만 짚고 넘어가면 좋겠네요. 타자를 목적으로 대하라는 말은 곧 타자를 타율적인 존재가 아니라, 타자도 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존재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타자에는 단지 동시대의 타자뿐만 아니라 이미 죽은 과거의 타자와, 아직 태어나지 않는 미래의 타자도 포함합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제 경제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명령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