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과 '외면'에서 벗어나
4년 전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이 땅의 정치현실은 참으로 난감했다. 정치철학을 공부한 나는 거리에서 사람들과 시대를 고민하고 싶었다. 그래서 '길거리'로 나왔다. 내가 아는 한, 정치철학은 이 세계에 필요한 수많은 질문을 다루고 있고, 수많은 사상가들이 던진 질문들은 시대적 고민의 산물이었다. 나도 그들처럼 이 시대를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 이 책은 그렇게 길 위에서 열었던 정치학 강의실을 옮겨놓은 것이다. (...)
강의에 오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느낀 게 하나 있다. 이들의 정치에 대한 반응이 ‘열광’과 ‘외면’이란 극단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집착이 아닐까 싶을 만큼 정치에 대해 반응했고, 어떤 이들은 이래도 될까 싶은 만큼 무관심했다. 물론 많은 이들이 드러냈던 열광과 외면은 정치에 대한 것이 아니라 대개 정치인들/정치꾼들에 대한 것이었다. 이들이 좋아 정치에 몰두하고, 이들을 혐오해 정치에서 멀어진 경우가 많았다. 적어도 내겐 두 가지 모두 반反정치적으로 다가왔다. 정치가 행위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돌보고 보살피는 공유의 영역임을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이 영역을 아끼고 싶은 맘이 들게, 그 영역에 매혹되게, 반하게 만들고 싶었다.
정치에 반反하던 사람들이 반해서 다가설 만한 정치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방법이 정치가 다루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을 다시 사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의 근본적인 질문을 사유할 기회가 있다면 정치인들을 향한 지나친 열광, 정치꾼들에 대한 냉담한 혐오에서 벗어나 정치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 거리 위의 강의실에서 내가 던진 질문은 대개 다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국가는 어떤 일을 해야 하나요?” “자유란 무엇일까요?” “왜 평등을 말해야 하나요?” “정의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이 네 개의 기본적인 질문과 함께, 이 질문과 연계된 조금은 현실적인 네 개의 질문을 더 던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는가?” “정치는 엘리트의 것인가, 평범한 사람들의 것인가?” “누가 우리를 어떻게 대표하는가?” “무엇이 정치의 신뢰를 만드는가?”
우리가 무엇인가에 지나치게 열광하고 있을 때, 가장 먼저 멈추는 것이 사유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지나치게 냉담할 때, 가장 먼저 작동시켜야 할 것 역시 사유다. 행동하는 자에게 사유는 ‘멈춤의 순간’을 만들고, 오랫동안 멈추어 있는 자에겐 ‘시작의 계기’가 된다. 그래서 이 강의실을 찾는 이들과 공유하고픈 자세는 이리 말할 수 있다.
‘나는 사유한다, 고로 나는 정치적으로 존재한다.’
이 시끄러운 길거리 교실을 찾아든 모든 분들을 환영한다. 이 소음이 우리의 사유를 한층 더 가치 있게 해주리라 기대한다.
정치철학자, 김만권의 길 위에서 여는 정치학 교실!
"국가는 왜 존재하나요?"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나요?"
정치에 反하던 사람들도 반하게 만드는 정치를 위하여
우리가 던져야 할 여덟 가지 질문!
1강.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는 좋은 국가 시스템이 있을 때 사회의 중요한 내용이 달라진다고 믿습니다. 그중 하나가 교육의 내용이 되겠죠. 대한민국 학교에서 가르치는 건 '해야 하는 것들' 위주입니다. (...) 덴마크에서는 대부분 고등학교 때까지 등수가 나오지 않는답니다. 고등학교 내내 가르치는 게 옆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2강. 왜 (불)평등을 말해야 하는가?
"공화주의자였던 루소는 인간의 경제적 독립이 정치적 자율성을 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극단적 불평등을 제한해야 한다는 루소의 주장은 사유재산을 없애야 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독립할 수 있을 정도의 사유재산을 가지되 그것이 사람들의 분열을 만들어낼 만큼 너무 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던 겁니다."
3강. 정치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사람들에게 '자유란 무엇인가요?' 이렇게 물어보면 더러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자유예요!?", 이런 답변이 돌아옵니다. (...)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유란 대개 개인의 영역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 아렌트에 따르면 자유는 홀로 있음이 아니라 늘 타자와 공적 영역을 필요로 합니다. 자유를 정치와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아렌트의 자유 개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4강. 정의를 세우는 기준은 무엇인가?
"요즘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어떤 근거로 사람들이 이런 기본소득을 지급받는 일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왜 지금의 복지를 버리고 현금을 주는 제도로 전환해야 하는 것일까? (...) 이 모든 질문이 민감한 이유는, 바로 이 질문이 정의로운 분배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5강.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는가?
"대의민주주의에서 엘리트들이 정치를 독점하는 현상을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여전히 시민들은 정치에서 소외되어 있었습니다. 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주인. 생각해보셨나요? 그럼에도 왜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외치는 걸까요?"
6강. 정치는 엘리트의 것인가? 평범한 사람들의 것인가?
"존 듀이는 민주주의가 습관에서 나온다고 봤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밖에서 데려올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적 생활양식이다. 민주주의는 일상의 토론 습관에서 나온다.' 민주주의는 삶의 방식, 그 자체라는 것이 듀이의 생각이었습니다."
7강. 누가 우리를 어떻게 대표하는가?
"2015년 영국 노동당이 당수를 뽑는 선거에서 새로운 시도를 벌입니다. 3파운드를 내면 비당원에게도 투표할 수 있게 권리를 준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선출된 대표 당내 비주류 인사이자 당내 소수 강경 좌파였던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입니다. 비당원에게도 투표권을 열어둔 결과 짧은 시간에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투표 등록을 했고, 새로 유입된 청년층이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인물로 그를 선택한 것입니다."
8강. 무엇이 정치를 신뢰를 만드는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흔히 상대방이 믿을 만하다는 평판은 반복게임 속에서 형성됩니다. 이 사람이 한 번 믿을 만한 행위를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즉시 신뢰하지는 않는 법이죠. 상대가 두 번, 세 번, 네 번 지속적인 신뢰를 보여줬을 때, 진정한 신뢰가 만들어지는 법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 불신이 쌓이면 설령 상대방이 진실을 말하더라도 믿지 않게 됩니다. (...) 반복게임을 통해 이루어진 신뢰의 약화는 민주주의 자체에 큰 위기를 낳습니다. 민주주의가 결국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계약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 <김만권의 정치에 반하다>(2017, 궁리) 중에서
이 책은 2017년 5월 18일 독자들에게 찾아갑니다!
* <김만권의 정치에 반하다> 북토크 - 2017년 5월 18일 저녁 7시, 참여연대 * 2017년 5월 18일 저녁 7시, 참여연대 1층 카페통인(경복궁 근처)에서 열립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