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읽는 책 한 쪽┃<너무 이른 작별: 자살 유가족, 그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은 시신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그 현장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전화를 받기 ‘이전’과 ‘이후’로 완벽하게 구분해버리는 한 통의 전화가 전하는 소식에 심각한 충격을 받기도 한다. 수많은 자살 유가족들에게는, 그들 바로 눈앞에서 자살 사건이 발생한다. 마치 슬로 모션에서처럼, 그들은 날것 그대로의 행동과 뒤에 남겨진 파괴적인 흔적, 그리고 죽음을 다른 것으로 뒤바꿀 수 없는 무능력을 본다.


“제 남편은 저와 사랑을 나눈 후, 사랑을 나눈 바로 그 침대에서 총으로 자살했어요.” 애틀랜타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스물아홉 살의 지나는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그렇게 회상했다. 그 장면은 10년이 지난 후에도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압도적인 것이었다. “남편 스코티는 경찰이었어요. 그날,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 후의 일이었지요. 경찰복을 침대 곁에 있는 의자에 걸쳐놓아서 그는 일어나지 않고도 리볼버 권총에 손을 뻗칠 수 있었죠. 그것은 정말 꿈의 한 장면 같았어요. 그는 제 앞에서 권총을 집어 들어 머리에 겨누었어요. 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한 후에 방아쇠를 당겨버렸지요. 폭발음이 들린 후 제 온몸은 그의 피와 뇌조각으로 뒤범벅되었어요. 따뜻한 무엇이 몸 전체를 덮었지요. 피는 새로 발행된 동전처럼 구리 냄새가 났고 권총의 유황 냄새와 섞였지요. 지금도 그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저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습니다. 벌거벗은 그대로 집 밖으로 달려 나갔지요. 이웃 중 누군가가 911에 전화를 했고 경찰이 바로 도착했어요. 그들은 제게 매우 친절했습니다. 한 명은 제가 샤워실로 갈 수 있도록 도왔고, 남편의 흔적은 물에 씻겨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고는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저를 도왔지요. 그들은 경찰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경찰은 근처에 사는 그의 부모에게 전화를 했어요. 그의 부모는 집에 도착하자 저를 보고 소리치기 시작했어요. ‘왜 스코티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니? 왜 우리에게 전화하지 않았니?’ 스코티와 저는 결혼한 지 1년도 채 안 되었지요. 저는 열아홉 살이었고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었어요. 저는 매우 행복했고 그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어요.


우리는 샌안토니오에 살았고, 스코티의 자살은 모든 신문에 실렸어요. 한 리포터가 제가 최근 유산했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서 알아냈어요. 그녀는 스코티가 그것 때문에 우울했을지도 모른다고 기사에 썼지요. 그 기사는 제겐 그의 죽음만큼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임신이 어려웠고 의사는 임신이 제 건강에 위험할 것이라 했어요. 스코티와 저는 임신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어요. 임신을 시도해보자고 말한 사람은 그였고, 그는 우리가 곧 다시 임신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요. 갑자기 모든 사람이 그의 죽음에 대해 저를 비난하는 것 같았고 저는 완전히 까발려진 느낌이 들었어요.


장례식은 무척 억제된 분위기였어요. 그 누구도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지금까지도 그의 어머니는 그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요. 총알이 발사된 것은 실수였다고 믿어요. 비록 동료 경찰들이 스코티의 초상을 치를 때와 장례식 둘 다에 참석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자살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려 하지 않았지요. 저는 제가 돌았다고 생각했어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하는 건 오직 저 한 사람 같았어요. 그 후 저는 생각하곤 했어요. 제정신이 아닌 건 바로 내가 아닐까. 스코티는 정말 자살하려고 했던 걸까. 어찌되었건 그는 그렇게 했지요.


반년 후 저는 애틀랜타로 이사했고 간호사학교에 다녔어요. 5년 전에는 의료기술자와 결혼했어요. 일하던 병원에서 만났지요. 지금 우리에겐 세 살 된 딸이 있고, 아들은 8개월이 되었어요. 저는 어느 누구에게도 스코티의 자살에 관해 말한 적이 없어요. 남편한테도요. 행여나 이야기하면 그의 죽음이 내 앞으로 되돌아올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죠. 마치 그것이 제 잘못인 것처럼요. 어느 날 밤 남편과 저는 어떤 문제로 싸웠어요. 남편은 미친 듯이 화가 나 있었는데도 저는 매우 조용히 침묵하면서 거리를 두었지요. 남편이 소리쳤어요. ‘당신의 문제는 자기의 고통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거야.’ 저는 생각했지요. 만약 당신이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러나 저는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어요.


저는 계속 스코티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요. 전 제 자신이 마치 바니 비디오(Barney video: 199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어린이 프로그램 바니와 그의 친구들을 말함. 바니는 주인공인 보라색 공룡의 이름)를 반복해서 계속 돌려보면서 꼼짝 않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와 함께 있는 건, 우리 침대 안에서 자기 머리에다 총을 쏘는 스코티, 바로 그것이에요. 충치를 떼운 재료가 떨어져나간 경험이 있나요? 당신은 자꾸만 혀를 그 빈 구멍으로 밀어넣게 되죠. 그런 게 바로 제가 느끼는 거랍니다. 저는 만약 이러저러 했으면 어땠을까를 강박적으로 생각했어요. 만약 그가 총을 집어 들기 전에 말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를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어땠을까, 만약 내가 임신을 위해 노력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어땠을까, 그를 더욱더 사랑했다면 어땠을까.


저는 그날, 스코티가 왜 그랬는지는 전혀 몰라요. 우리는 그날 밤 다투지도 않았어요. 그럼에도 그는 어떤 일 때문에 화가 나 있었고, 저는 그의 분노에 타격을 입은 한 사람이 되었지요. 스코티는 저에게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훔쳐가버렸어요. 보통 사람처럼 단란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기회를요. 제 삶이 표면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삶과 별 차이가 없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그건 정말로 완전한 거짓말에 불과하지요.

애틀랜타로 이사한 직후 심한 공황발작을 겪었어요. 2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았지만 스코티의 자살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꺼낸 적이 없어요. 이 일을 이야기한 건 당신이 처음이에요. 당신은 오빠가 자살한 제 친구를 인터뷰했지요. 그녀는 오빠의 자살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었지요. 저는 스코티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었어요. 친구가 당신의 이름을 언급했고, 저는 당신에게 연락했지요. 가능하다면 제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이 비록 완전할 수 없더라도, 계속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했습니다.”


-<너무 이른 작별>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