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읽는 책 한 쪽┃사랑하면 보이는 나무 (가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쓰고 그린 52그루 나무 이야기 나무의 세계에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똑같이 보게 되다! “나무들은 제각각 다른 느낌을 준다. 분홍빛 무궁화를 보면 애국심이, 예쁜 꽃이 달린 아까시나무는 달콤함이, 잎이 푸른 가문비나무는 추위가 생각난다. 이 책에 쓴 52종류의 나무들은 평소에 내가 겉으로만 알고 마음으로 느끼지 못했던 것을 알게 해준다. 왜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었는지, 어째서 물푸레나무란 이름이 붙었는지, 언제부터 메타세콰이아가 살아왔는지 글을 쓰기 전엔 알지 못했다. 또 동백나무와 동박새는 무슨 관계인지, 왜 조상님들이 싸리나무 가지를 회초리로 사용했는지. 이제서야 다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 나무를 보고도 알지 못한 사실과 느끼지 못한 감정들을 난 이 책을 쓰면서 많이 느끼고 깨달았다.” -허예섭(아들) “아들과 함께 나무를 관찰하고 책을 집필하면서 서로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아들은 나무의 학명, 분류, 분포, 생태, 꽃말, 유래, 용도, 전설처럼 직접 관찰하고 조사해서 쓸 수 있는 영역에서, 아버지는 나무에 대한 인문학적인 영역에서 각각 접근하기로 했다. 나무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면 글을 쓰는 내용이 비슷해질 우려가 있어, 따로따로 작업하다 보니 내용에서 일부 중복되는 부분은 이 책의 어쩔 수 없는 장점(?)이다. 같은 나무에 대해 각자 자신의 글에서 최선을 다해 쓴 것이니…. 아들의 글에 대해서도 이래 써라 저래 써라 간섭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간섭하는 순간 아들의 글이 아니라 아버지의 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장을 짧게 써라”거나 “구체적으로 써라”는 식으로 방향만 제시할 뿐, 내용에서 가능한 한 아들의 창의성과 고집을 그대로 반영토록 했다. 이 책을 내는데 8년이나 걸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허두영(아버지)

* * * 예섭이의 동백나무 관찰일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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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예섭(아들)




* * * 아빠가 이어쓴 동백나무 이야기 * * *

붉은 순정을 터뜨리는 동백나무


프랑스의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춘희>(椿姬)의 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는 한 달 가운데 25일은 흰 동백꽃으로, 나머지 5일은 빨간 동백꽃으로 치장하고 사교 모임에 나타난다. 여성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일어나는 몸의 변화를 은유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베르디는 이를 토대로 오페라 <라트라비아타>(La Traviata)를 만들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선교사 게오르그 카멜(Georg Kamel)은 필리핀에서 차나무와 비슷한 나무를 발견하여 18세기 초에 유럽에 소개했다. 당시 포르투갈이 차(茶)를 독점하던 가운데, 같은 차나무과의 동백을 차나무로 잘못 알고 재배하는 바람에 유럽에 널리 퍼졌고, <춘희>의 성공에 힘입어 18세기 중반 유럽의 사교계에서 동백꽃 장식이 크게 유행했다.


동백은 매우 고집스런 꽃이다. 아직 찬바람이 남아서 가끔 철 늦은 눈을 흐트리는 때이른 봄에, 귀부인처럼 두텁고 짙푸른 잎을 두르고 정열적인 붉은 꽃을 피우는 모습이 옹골차게 고집스러워 보인다. 무슨 심보일까? 추운 날씨에 굳이 망울을 터뜨리더니 반쯤 피었다가 도로 닫아버린다.


누가 그 고집을 꺾으랴? 추한 모습은 절대 보이지 않는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초라하게 시들기는 싫다. 붉다 붉어 더 이상 붉을 수 없을 때 꽃을 아예 송이째로 떨궈버린다. 남자에게 농락당하고 버림받은 비련의 여인처럼 처연하다. <춘희>에서 버림받은 고티에는 결핵에 걸려 동백꽃처럼 붉은 피를 토하며 쓸쓸하게 죽었다. 누구던가? 동백꽃을 떨군 자가?


동백의 낙화(落花)는 극적이다. 조용한 동백나무 숲에서는 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송찬호 시인은 “바람이 저 동백꽃을 베어 물고/ 땅으로 뛰어 내”린다고 했고, 문정희 시인은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천길 절벽 위로 뛰어내”린다고 했다.


동백은 정열적인 여인의 꽃이다. 붉은 꽃잎 속에서 터져 나온 노란 꽃술은 다홍치마에 걸친 노랑저고리처럼 아름답다. <변강쇠전>에서 옹녀는 고향에서 쫓겨날 때 “파랑 봇짐 옆에 끼고 동백기름을 많이 발라 낭자를 곱게 하고 산호비녀를 찔렀”다. 동백골의 아낙네들은 동백기름을 발라 검은 머릿결에 촉촉한 윤을 내고, 동백나무 얼레빗으로 삼단 같은 머릿결을 단정하게 땋거나 쪽을 지었다. 또 동백기름으로 밝힌 호롱불 아래서 바느질을 하고, 손때 묻은 삼층장을 동백기름으로 반질반질하게 닦았다.


찬바람에 하얀 눈을 덮어쓰고 핀 동백은 붉다 못해 눈이 시리도록 뜨거워 보인다. 허청미 시인은 “언 산방에 지피는 동백꽃불”에 눈이 부셨고, 정훈 시인은 “차가울사록/ 사모치는 정화(情火)/ 그 뉘를 사모하기에/ 이 깊은 겨울에 애태워 피는가” 궁금하게 여겼다.


가슴 속에서 순정이 터질 것 같을 때 시인들은 어떻게 할까? 신석정 시인은 <오동도엘 가서> “동백꽃보다/ 진하게 피맺힌/ 가슴을 열어” 보려고 했고, 유치환 시인은 “그대 위하여선/ 다시도 다시도 아까울 리 없는/ 아아 나의 청춘의 이 피꽃”을 바치려 했다.


붉은 순정이 터져버린 서러운 그늘에 가면 붉게 “멍든 눈흘김”이 남아 있다. 김용택 시인은“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고, 가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다.


동백은 왜 해마다 그렇게 애틋한 순정을 담아 피었다가 또 다시 서러움에 멍들어 지는 걸까? 최영미 시인은 해마다 <선운사에서> 되뇌인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 (중략) … /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허두영(아버지)




* 아들과 아빠가 함께 쓰고 그린 52그루 나무 이야기,

   <사랑하면 보이는 나무>(가제)는 내년 1월 중에 독자들을 찾아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