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읽는 책 한 쪽┃<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한 젊은 의학자가 써내려간 인생의 의미>


토끼 동맥혈압 실습



“조용, 조용히 하세요.”


학생들은 부산하다. 첫 생리학 실습으로 토끼의 혈압을 측정하게 된 학생들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웅성웅성 거린다. 걱정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발된 여러 실습 중에서 이 실습만큼 난이도가 높은 실습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과 장비가 없다는 핑계로 몇 년째 미뤄왔던 실습이라 실습 중 어디에서 암초를 만날지 알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자, 우선 수술 도구부터 챙겨봅시다.” 학생들에게 지급할 수술 도구를 하나하나 꺼내서 이름과 쓰임을 말해 주는 순간에도 학생들의 웅성거림은 멎지 않는다. 더 이상 설명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학생들에게 오늘 실험에 쓸 토끼를 보여준다.


“어머, 예쁘다.” 어느 여학생이 말한다. 토끼는 1.5kg 정도로 작다. 애완용보다는 크지만 다 자란 놈은 아니어서 학생들의 동정을 유발하기에 딱 알맞은 크기다. 학생들은 서로 네가 가져와라 네가 가져와라 실랑이를 벌이다 마지못해 몇 명 나선다. 대개는 남학생들이다. 다행히 토끼 귀를 잡고 나르지 않는다. 토끼 귀는 으레 손잡이로 여겨지곤 하는데 말이다. 애완용이란 생각이 들어서일까 아무도 토끼를 거칠게 다루지 않는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다. 토끼를 품에 안고 있는 학생도 보인다. 마치 목을 가누지 못하는 갓난아기를 안은 듯하다.


“자, 이제 귀 정맥을 이용해서 마취하세요. 한 사람이 잡고 나머지 한 사람이 나비침을 이용해서 마취제를 투여하면 됩니다. kg당 1g 들어가야 합니다. 마취제는 2.4g이 8ml에 녹아 있어요. 얼마 투여하면 되는지 계산할 수 있겠죠?” 이렇게 말은 하지만 나는 이 학생들이 제대로 계산하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의과대학을 들어오기 위해 미분적분을 배운 학생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학생들은 단순한 비례식을 계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토끼 눈을 가리고 움직이지 못하게 잘 잡고 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말을 잘 듣는다. 그 말만 잘 듣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마취를 제대로 하려면 토끼를 내려놓고 시작을 해야 하는데 학생들은 여전히 토끼를 안고 있다. 내려놓긴 했는데 겅중거리는 토끼를 어찌해야 할 지 모르고 허둥대는 학생도 여럿이다.


(……)


마취가 된 토끼는 배를 위로 향하게 한 후 수술용 틀에 묶는다. 이제는 기도를 열고 삽관을 하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첫 경험을 앞두고 학생들은 미적댄다. 미용사라도 된 것처럼 애꿎은 털만 자꾸 깎고 있다. 옛날에는 의사와 이발사가 같은 일을 했다는 얘기가 언뜻 떠오른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이것은 처음 경험하는 수술이다. 언제 자신의 손에 가위를 들고 생살을 잘라보기나 했겠냐 말이다. 이해할 수는 있지만 토끼가 죽어서는 실습을 할 수 없으니 채근할 수밖에 없다. “뭐 하냐? 끝이 뾰족한 가위는 쓰지 말랬지! 자르지 말고 찢으라니까! 설명을 못 들었냐?” 어느새 반말이 나온다. 난처한 얼굴로 가위를 잡고 있는 학생의 얼굴 위로 땀이 흐른다. 실습복 안에는 땀이 흥건히 배어 있을 것이다. 정중앙을 벗어난 가위가 지나간 자리로 피가 고인다. 정맥을 자른 모양이다. 마침내 기관지가 보이자 기관지를 둘러싼 고리형태의 연골 사이를 자르고 구멍이 뚫린 관을 천천히 밀어 넣는다. 관으로 김이 나온다. 마침내 성공이다. 온통 피로 물든 근육들 사이로 플라스틱 튜브가 삐죽 솟았다.


(……)


“그러니까 역치란 건 말이죠..” 어느 새 내 말투도 다시 존대로 바뀌었다. 이제 심장이 멈출 때까지 토끼는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고 토끼는 그때까지 살아 있을 것이다. “만약, 이렇게 자극 조건을 정한다음 자극을 가해도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자극을 더 강하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스위치를 눌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최대 자극을 가하도록 자극기는 맞춰져 있다. ‘따다다다다’ 전기 자극이 가해지는 소리가 나고 토끼는 일순 몸이 굳는다. 심장은 멎고 혈압은 순식간에 뚝 떨어진다. 스위치를 내렸다.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한다. 천천히. 그리고 혈압은 아주 느리게 원래대로 돌아간다. 정말 느리게. 심장이 멎을 정도의 자극, 나는 그 자극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실험을 하다 누전된 전류에 감전된 적은 있어도 심장이 멎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작은 토끼는, 흉곽을 다 드러낸 채로 심장을 세우는 자극을 온 몸으로 버티고 있다.


한 시간 쯤 지났을까? 학생 하나가 다급하게 외친다. “교수님, 상태가 이상한데요?” 심장 박동이 줄면서 혈압이 떨어지다가 펜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영화 속 심전도의 곡선이 사라지듯이 레코더는 토끼의 심장이 죽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아앙, 불쌍해!’ 한 여학생이 읊조렸지만 표정에는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실험을 하다 죽는 일은 흔하지만 심장이 죽는 임종의 순간을 생리기록계로 지켜보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레코더는 처절한 기록을 아무 감정 없이 전달하고 있다. 그 기록을 지켜보자니 묘하다. 토끼는 옆에 죽어 있는데 우리가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기록뿐이다. 죽은 건 토끼가 아니라 기록이다.


실험에 쓰인 네 마리의 토끼 중 수술에 성공한 토끼는 두 마리다. 두 마리는 수술 중에 죽었다. 살아남은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오후 실험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고 나머지 한 마리도 혈압을 기록하다 늦게 죽었다. 두 번째 토끼의 심장은 죽기 전에 부정맥이 나타났다. 규칙적으로 뛰던 심장이 전기 자극을 몇 번 받은 후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부정맥은 죽을 수 없다는 토끼의 마지막 의지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의지는 예측 가능한 박동으로 다시 심장을 이끌었다. 무한대의 주기를 가진 박동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 의지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토끼 동맥혈압 실습에서 실습 도중의 죽음은 낯설지 않다. 오히려 실험이 끝날 때까지 살아있는 토끼를 보는 게 더 어렵다. 실험을 끝낸 뒤에도 살아있는 토끼는 죽여야 한다. 난 이 과정을 제일 혐오한다. 오늘처럼 실험 중에 죽어준다면 그보다 더 고마운 일은 없다. 살아있는 토끼를 죽일 땐 고농도의 염화칼륨 용액을 사용한다. 남은 마취제를 모두 투여하고 고농도의 염화칼륨을 주입하면 토끼는 전신의 근육을 수축하며 사망한다. 토끼가 죽고 나면 결박하고 있던 끈을 풀고 토끼를 수습해야 한다. 흔하지는 않지만 그럴 때 가끔 토끼 눈에 고인 눈물을 볼 때가 있다. 시신을 들어 비닐 백에 옮기다보면 눈물이 뚝 떨어져 비닐 백을 적시곤 했다.


실습은 끝났다. 학생들에게 소감을 물어보니 “재미있었다”는 반응이 많다. “재미있었다”는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해도 똑같은 반응이 나올까? 의대에 오는 학생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부류인가? 나도 그들 중의 하나이니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실제로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 ‘재미’가 행위의 근거가 되는 경우는 쉽게 찾을 수 없다. 만약 있다면 만인의 지탄을 받는 사회적 범죄행위를 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반응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 토끼를 미워하거나 싫어한 것도 아니다. 토끼도 이 학생들과 다른 곳에서 만났더라면 사랑을 듬뿍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작 이 실습실에서 학생들은 토끼를 만나 아무 감정 없이 살을 자르고 동맥에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재미있었다고 얘기했다. 그 얘기를 하는 동안 조교는 토끼를 비닐 백에 넣고 있었다.


(……)


그 토끼들을 누가 어떻게 골랐는지 나는 모른다. 토끼들도 자신들을 미워하지 않는 인간들이 자신들을 그렇게 대할 것이라고는 차마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험이란 특별한 조건이 있었으니 그랬을 뿐이라고 애써 위안해본다. 하지만 현실에도 ‘실험’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런 현실들과 심심치 않게 조우하는 게 또한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그런 현실에 망가지지 않았다는 것만을 위안으로 삼고 지나가기에 우리의 삶은 너무 소중해 보인다.


이 책은 8월 중에 독자 여러분께 선보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