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미리 읽는 책 한 쪽┃<처음 하는 평화 공부> 모가미 도시키 지음, 김소라 옮김


‘지키기’ 위한 ‘대비’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누가 처음 한 말인지는 여러 설이 있어 확실하지 않지만,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쓰인 말입니다. 이른바 자위(自衛)의 개념입니다만, 나라와 시대를 불문하고 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생각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이는 평화관이기도 하며, 안보관이기도 합니다. ‘평화 안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평화 군사적 안보’라고 보는 관점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살펴보듯이 평화란 꼭 안보와 같은 의미는 아니며 더욱이 군사적 안보(군사력으로 나라를 지키는 것) 그 자체도 아니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지만, 이 ‘전쟁에 대비하는’ 평화관은 오랫동안 이어져왔습니다.


자위가 중요하다는 점에는 반대하는 의견도 그리 많지 않겠지요. 타국의 공격을 받기 쉬워지거나 타국의 공격을 받아도 자신의 몸을 지킬 방법이 없다는 것 자체는 딱히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격언이 비교적 최근까지 널리 받아들여진 기본적인 이유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다만 자위가 중요하다는 점과 이 격언으로 평화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 격언이 위태로운 균형을 기반으로 성립되어, 자칫 잘못하면 평화를 확보하기보다는 전쟁을 추진하는 원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럴까요? 크게 두 가지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정말 ‘억지력’이 있는가


첫 번째, 철저히 평화를 위한 원리라면 어디까지나 전쟁에 ‘대비하는’ 선에서 그치고 전쟁 일보 직전에 멈춰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점입니다. ‘대비’만 하고 ‘전쟁’ 일보 직전에 멈춘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대비’가 상대방의 공격을 단념하게 하는 억지력으로 작용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끝나면 다행이지만, 아무리 ‘대비’를 단단히 해도 억지 효과가 전혀 작용하지 않는 상대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합리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 없는 상대와의 사이에서 평화는 군사적 대비와는 다른 방법으로 구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필적하는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충분한 ‘대비’가 자신을 억지할 수 있다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만큼 타국에 정당화할 수 없는 공격을 가하지는 않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만한 경험이 우리 인류에게는 없습니다. 예를 들면, 세계대전 당시와 종전후를 통틀어 일본의 팽창주의를 경고하고 종전 후 한때는 총리를 역임하기도 했던 이시바시 단잔은 이 문제를 정확히 지적합니다.


“예로부터 어떤 나라든 자국이 침략적 군비를 보유하고 있다고 표명한 나라는 없습니다. 모든 나라가 자국의 군비는 그저 자위 목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마 그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자위와 침략은 전술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명확히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자위를 위한 군비만을 보유하고 있었을 나라들 사이에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이 모두 일어났습니다.” (마쓰오 다카요시 엮음, 『이시바시 단잔 평론집石橋湛山評論集』)


물론 ‘대비’를 한 나라가 모두 침략을 저지른다는 말은 아닙니다. 적어도 현대 세계를 보는 한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역사적으로는 그런 예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므로, 이시바시 단잔의 경구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중략) 



비참함은 마찬가지


2004년 8월, 독일 드레스덴의 성모교회라는 아름다운 교회가 종전 후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마침내 복원이 추진된 사실을 전하는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었습니다(NHK 위성방송). 1945년 2월 연합군의 거센 공격에 폐허로 변한 도시입니다. 그날 독일군 포로로 드레스덴에 수용되어 있던 미국 작가 커트 보니것 주니어는 『제5도살장Slaughterhouse-Five』이라는 작품에서 “드레스덴은 하나의 거대한 화염으로 변했다. 살아 있는 것,불타오르는 것 모두를 집어삼키는 화염이었다”라고 회상합니다. 그리고 폭격이 끝난 다음 날의 모습을 “드레스덴은 광물 외의 아무것도 아닌 달 같았다. 돌은 그저 뜨거울 뿐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모두 죽었다”라고 묘사합니다.


이렇게 되기 전, 세계대전 이전의 독일도 세계 유수의 ‘대비’를 하던 나라였습니다. 그것이 언제부터인가 ‘대비’가 아닌 타국을 위법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변하여 결국은 지켜야 할 자국을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대비가 더는 대비가 아니게 되고, 평화가 아닌 폐허를 가져온 예로서 달 표면처럼 보이는 드레스덴의 옛 영상은 지금도 강렬한 울림을 줍니다. 마찬가지로 군사 대국이었던 일본도 같은 운명을 걷게 됩니다. 드레스덴이 폐허로 변한 지 한 달 뒤에 도쿄가 대공습으로 비슷한 피해를 입고 반 년 뒤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핵무기로 폐허가 되었습니다. 국가 정책과 야망을 추구한 끝에 남겨진 폐허입니다.


이런 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너무나 명백하지 않습니까. 다만 이들 도시에 가해진 폭격의 경우 침략국이라 어쩔 수 없었다며 넘어가기는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국제인도법으로 보호받아야 할 무고한 일반 시민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었기 때문입니다. 상대국 국민의 전의를 꺾고자 군사적 목표가 아닌 도시나 사람들을 공격하는 폭격이라는 의미에서 ‘전략 폭격’이라고도 합니다. 일본도 중국의 충칭 등지에, 독일도 런던 등지에 전략 폭격을 했으니 서로 같은 일을 주고받은 셈이기는 하지만, 모두 국제법으로 정당화할 수 없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경우는 핵무기까지 사용하여 더욱 정당화할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인류 사회에 여전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이 중대한 문제는 일곱 번째 이야기에서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 <처음 하는 평화 공부>는 2019년 1월에 독자 여러분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