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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읽는 책 한 쪽┃<해부학 교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요로 다케시 지음, 박성민 옮김등


첫 해부의

경험



“왜 해부 같은 걸 시작했어요?”


내게 이렇게 묻는 사람이 많다. 대답하기에 가장 곤란한 질문이기도 하다.


“재미있으니까요.”


이렇게 답하면 이어지는 질문은 뻔하다.


“뭐가 재미있다는 거예요?”


사람 몸을 해부하는 일은 보통은 의사가 되려는 사람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왜 평범한 의사가 되지 않았나 하는 질문으로 들리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힘들게 의과대학을 졸업했는데, 내과나 외과 같은 데를 선택하지 않고 어째서 해부학 같은 이상한 분야를 전공했는가, 그런 질문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의사면허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사용한 적은 거의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대단한 낭비이다. 환자나 그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의사만큼 고마운 존재가 없다. 자신이 병에 걸렸거나 가족이 갑자기 아파서 의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면 그 고마움이 얼마나 큰지 잘 알 것이다.


그런 의사에 비하면 해부학자 같은 사람에게 특별히 고마운 감정이 들 일은 없을 것이다.


“혹시 아드님이 죽으면 해부하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병으로 죽어가는 아이 곁에 있는 부모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내가 죽을 수도 있다.


“제가 댁의 아버님을 해부한 사람입니다.”


이런 말을 한다고 감사를 표하는 사람도 없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난처해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왜 해부 같은 걸 시작했어요?”라는 질문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왜 굳이 해부 같은 잔인한 일을 하려고 하셨어요?”


“살아 있는 환자를 진료하는 일이 세상을 위해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해부라는 것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 전 세계 어디에서나 했던 질문들이다. 그렇다면 왜 해부라는 행위를 할까? 인간 사회에서 해부가 시작된 계기는 무엇일까?


모든 것이 그렇지만 ‘시작’에 대해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한참 길어지게 마련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그런 예가 많다. 성경은 ‘태초에 이 세상의 시작은……’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그렇다고 해부의 시작이 세상의 시작이라고 말할 만큼 거창하지는 않다. ‘그래서 이 세계는 하느님이 만드셨다’고 성경이 딱 잘라 말하듯 간단히 정리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해부든 다른 무엇이든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야 쉽겠지만, 그것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 본문 중에서





옮긴이 박성민의 책소개



입문서와 전문서의 차이에 대해 우치다 다쓰루는 이런 말을 했다. 입문서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전제로 출발하는 반면, 전문서는 우리가 아는 것을 전제로 출발한다는 것이다. 또 좋은 입문서는 답을 알 수 없는 물음에 독자들이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생각하게 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변변찮은 입문서란 초보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에서 시작해 전문가라면 누구나 말하는 내용을 다시 쓰기만 한 글일 뿐이다.


요즘은 생소하고 잘 모르는 분야나 학문이라 하더라도 조금만 검색하고 관련 서적을 읽으면 어느 정도의 지식이나 정보는 누구나 얻을 수 있다. 변변찮은 입문서라는 건 그런 지식과 정보를 그저 보기 좋게 나열한 정도의 글이란 말일 테다.


『해부학 교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는 일반 독자들에게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해부학을 소개하는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인 요로 다케시는 해부학자이자 뇌과학자로, 미나미 지키사이가 해설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은 많은 일본인들에게 선생으로 불리며 존경받는 학자다. 학문 연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베스트셀러 저작을 낸 인기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여러 책들이 독자들이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쓰여 있다고는 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은 저자의 다른 저작들보다는 꽤 쉽고 재미있게 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청소년에게 해부학을 알기 쉽게 소개할 목적으로 쓰였지만, 성인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그 이유는 처음에 말한 좋은 입문서의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어서가 아닐까 한다. 해부학이란 것에 대해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전문가가 말하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하며, 설령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라 하더라도 근본적인 물음에 끊임없이 독자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일깨운다.


첫 장에서 저자가 사람들이 자기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라며 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왜 굳이 해부 같은 잔인한 일을 하려고 하셨어요?”

“살아 있는 환자를 진료하는 일이 세상을 위해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해부학이나 해부학자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란 이런 건가 보다.


나 역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해부학은 물론 사람의 몸이나 해부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젊을 때는 대체로 자신의 몸에 대해 관심이 없다.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움직이고 따라준다. 관심이 생긴다면 그저 남의 눈에 비친 자신의 겉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 신경 쓰일 때 정도일 뿐, 남의 눈에도 내 눈에도 안 보이는 곳에 딱히 관심도 없을뿐더러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몸보다는 마음, 그러니까 정신이나 감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곤 했다.


뭔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알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알고 싶지 않아서, 거기서 눈을 돌리고 싶어서가 아닐까. 몸이 내 말을 듣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감정이란 것이 애초에 몸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꽤 늦은 감은 있지만 조금씩 몸에 관해 관심이 생겨난 것 같다.


이 책은 우리 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저 일반적인 의학 지식만을 나열한 책은 아니다. 인간의 몸을 비롯하여 자연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주며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왜 오랫동안 금기되어온 인체 해부를 하려고 했을까, 해부의 목적은 무엇일까, 왜 인간은 인체를 해부하는 것을 꺼림칙하다고 여겼을까. 이런 근본적인 물음에서 시작해 해부의 역사와 인체의 구조를 설명한다. 설명할 때는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저자의 독특한 관점과 사고방식이 잘 드러난다. 한자와 알파벳에서 드러나는 동서양의 차이, 거기서 비롯되는 말과 해부의 관계, 사물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과 경계를 짓는다는 것,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서 말한다. 거기서 나아가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삶과 죽음,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가 같은 철학적인 물음에까지 이어진다. 특히 알파벳을 쓰는 인간과 한자를 쓰는 인간, 이런 글자에 따라서 인간은 자연과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달라진다는 말은 언어를 공부한 내게는 무척 신선하고도 흥미로운 지적이다. 인간의 몸을 바라보는 관점도 그에 따라 꽤 다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 밖에 인간의 몸이나 해부와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많이 등장한다. 의대생들이 실제로 해부하는 과정, 해부용 사체에 관한 역사, 중국의 오장육부에는 없는 췌장이란 장기를 처음 발견한 이야기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잡학 상식도 들려준다.


세상에는 이치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소우주로 표현될 만큼 신비로운 인간의 몸 역시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알려고 하고 알고 싶어 한다. 알려고 하는 목적이 뭔가에 구체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저자의 말대로 모든 것을 ‘무엇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설명만으로는 인간은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학문은 이렇게 우리가 순수하게 ‘알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좋은 입문서의 조건은 우리가 모르는 것을 말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물음을 던져주는 것이라 했다. 거기에 덧붙여 더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지금까지 모르고 관심이 없던 것에 눈을 뜨고 흥미를 가지고, 나아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기쁘겠다.



2018년 가을,

박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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