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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름의 힘


사진. 북한산 의상능선. 2020. 7. 5. ⓒ 이굴기




 ******반지름




죽음까지의 저 거리

절대 다를 리가 없다


머리, 가슴, 손, 다리, 발에서

모두 같은 길이


여기서 늙은 나

어디서 나처럼 늙어가는 너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모두 죽음으로부터 같은 간격으로

우두커니 서 있다, 둥글게


죽음에 순서가 없다는 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눈초리가 사방으로

매우 매서운 죽음이

그렇게 어리숙하게 관리할 리가 없는 것


하지만 등 뒤

납작한 그림자는

또한 이렇게 말해준다


안심하셔요,

죽음까지의 저 길이가

절대 지름일 리가 없잖아요





- 보유 


태양에서 나온 빛이 무량한 허공을 헤엄쳐 와서 물질에 부딪혀서야 제 존재를 드러내듯 나의 생각도 그 어떤 대상을 만나고서야 그 뜻을 드러낸다. 내 눈앞에 제 존재를 드러내는 저 산, 바위, 나무, 달, 태양까지의 거리는 모두 반지름이다.


열매는 여지없이 모두 둥글고, 잎은 둥그렇게 변해간다. 나무의 줄기는 각진 것이 없다. 세상의 모든 모난 돌들도 결국은 닳아지면 구형(球形)을 닮아가는 것. 세상의 구조는 둥글고 세계의 운동은 원운동!


눈앞에 보이는 것까지의 길이는 모두 반지름이다. 그 너머 또 그만큼의 반지름이 있어 우리 사는 세상이 완성되지 않을까, 라는 궁리를 해본다. 중학교 수학시간에 배우고 집어던진 반지름이라는 말, 참 오묘하다. 바퀴 속의 빈 허공이 없다면 바퀴는 제 소용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노자는 말한다. 나는 감히 바퀴속에 반지름만 있다면 바퀴가 바퀴로 완성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게 바퀴가 둥글기에 자동차는 지구와 맞물려 오늘도 잘 굴러갈 수 있는 것! 반지름의 효과, 반지름의 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의 너머에 또 그만큼의 반지름이 최소한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나의 눈앞에 겨우 존재하는 모든 것까지의 거리가 반지름이기에 그 너머 최소한 반지름 만큼의 길이가 또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 세계는 둥긂으로 존재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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