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백령도 2019. 8. 18. ⓒ 이굴기
지방에 가면 빗소리가 더 잘 들린다
섬에 가면 빗방울도 더 굵어진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나 한라산 쪽을 보았다
산에 가려고 제주도를 왔는데
난감한 상황으로 머릿속이 아연 흥건해졌다
산에서 비를 맞이하는 것과
비를 맞으며 산에 가는 건
전혀 다르다
비는 하늘에서 오는 물질이다
문득 번개 같은 궁리 하나가 떠올랐다
누가 글 읽는 소리인가
떨어지는 저 빗줄기
논어의 한 문장으로 생각해야겠구나!
*補遺. 빗줄기를 논어의 한 문장으로 생각하기로 한 이후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졌다. 세상은 어쨌든 비가 오거나 비가 안 오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논어는 대략 500개에서 조금 모자라는 문장의 집합이다. 한 인간이 당면해야 하는 인생의 굽이굽이와 적확하게 궁합을 맞추는 경우가 많아서 나는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제주도의 어느 어둑한 여관방에서 일어나 한라산을 바라보며 저런 생각을 떠올린 이후 신통하게도 비가 올 때마다 논어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비가 안 온다 해서 논어 생각이 뚝 그치는 건 또한 아니었다. 나는 내 생각을 그렇게 호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위인이 되지 못한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논어 생각, 맑은 날은 비가 없어서 논어 생각. 그렇게 논어와 나는 비를 매개로 촉촉히 젖어들기 시작했다. 아니 매력적인 논어의 문장으로 내가 미끄러져 들어갔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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