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에 대하여-제2회 정세청세 ②


두 번째 영상 <불편한 소문> 을 보고


일반적으로 우리는 최첨단 전자제품을 사용하는 곳은 선진국이고 그것의 부정적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되는 곳은 개발도상국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우리 모두가 그 영향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불편한 진실을 깨닫는 데서 시작되기에, 우리는 설사 그 진실이 불편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알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은, 의심 없이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진실을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순된 경제구조나 거짓된 것들이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의심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 정의롭지 못하고 모순된 것은 없는지를 찾아보는 것에서 머물면 안 됩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진실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서도 의심해봐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번째 영상이 우리에게 묻는 바를 알 수 있습니다. “불편한 진실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은 적이 있는가? 의구심이 들면서도 의심하지 않았던 적은 없는가?


자주 사용하던 학교 정수기의 필터가 더럽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찝찝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오히려 몰랐을 때는 물을 더 시원하고 맛있게 마실 수 있었는데 말이죠. 앞서 봤던 <2704>나 <불편한 소문>에 나온 불편한 진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이러한 사실을 모를 때 마음이 더 편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계속 방관한다면 더 나쁜 결과를 몰고 올 수 있을뿐더러, 그 자체로 옳지 못한 것이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들은 마음 편한 선택을 원하고, 그렇기 때문에 불편한 진실을 알기 위한 '의심하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의심을 하고 불편한 진실에 마주하기 위해선, 마음 편한 것을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전 세계의 전자쓰레기가 모이는 중국의 한 마을에 대해 보도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왜 아직까지 변화가 없는 것일까요. 아마 나도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 중 하나이고 누군가가 쓰레기를 담당해야 하고, 무엇보다 내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진실을 알면서도 방관하는 무책임한 자세부터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영상 <미국의 우상>을 보고


“헬렌 켈러가 장애를 극복한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는 사람?"이라는 질문에 우리 중 몇이나 대답할 수 있었을까요? 이 영상은 국가와 같은 거대 세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감춰진 진실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에게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은 헬렌 켈러가 미국의 사회에 대해 비판하고 의심하며 자본주의에 대해 의심의 목소리를 높인 태도입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모습의 헬렌 켈러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묻게 합니다. "우리는 눈이 멀지도 않았고 귀를 먹지도 않았으며 말을 못하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 주변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거짓된 것들에 대한 의심조차 하지 못하는가? 의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 이유는 'Fear Factor두려움'의 문제예요. 지극히 이기적이긴 하지만 모든 사람의 의심을 막는 건 언제나 두려움이더라고요. 우리가 이렇게 저항하면 "나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는 않을까?"하는 마음에 의심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게 되는 거죠. 두 번째는 "Lack of Desire갈망하지 않음"이라는 이유가 있었어요. 아무도 헬렌 켈러의 20세 이후를 알려고 갈망하지 않았고 왜 그녀의 20세 이후가 알려지지 않았는지를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 헬렌 켈러의 모습을 잘 모르는 것처럼, 우리는 갈망하려고 하지 않기에 의심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게 되요.


“보이는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 하나의 프레임에 갇혀버려 나오지 못하는 문제의 원인이 우리의 삶의 모습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주입식교육, 억압되어있는 삶, 획일화되어 가고 있는 삶, 잘못된 가치관을 옳게 받아들이는 분위기. 이러한 것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의문을 제기하는 것조차 힘들게 만드는 이유들 중 몇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네 번째 영상 <한 장의 지도>를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도의 정확성을 의심해보지 않습니다. 이는 지도를 그린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맹신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지도를 그리는 것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도를 제작하는 사람에 대한 맹신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논리학에서는 권위에 대한 오류라고 설명을 합니다. 권위에 대한 오류는 우리가 살면서 상당히 많이 부딪힐 수 있는 오류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2회 정세청세에서 말하는 ‘의심'은 비판과 분열을 낳고 서로에 대한 불신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르노 페터스가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 낸 이유가 인종에 따라, 빈부에 따라 나뉘고 벌어진 깊은 격차를 좁히기 위한 것이었던 것처럼, 우리가 거짓된 것을 의심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권위에 대한 오류도 이러한 맥락에서 접근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이 영상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게 합니다. "단순한 의심과 비판에서 나아가 우리가 보기를 원하는 진실은 어떤 형태인가? 또한 의심하는 이 태도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오래 전부터 사용했고,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아 당연히 옳다고 생각했던 지도가 사실은 승자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사실이 그저 충격적이었어요. 우리 삶에서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의심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왜냐하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진실이란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아 더 어려운 것이라고도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진실을 향한 의심의 기준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학교, 학원, 만나는 친구들, 선생님, 부모님 등 많은 부분에서의 고정관념이나 시선 때문에 불평하기도 하지만 먼저 내가 바뀌어보아야 다른 사람도 바뀌어 나가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바뀐다는 것은 결국 나부터가 의심해보는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