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속의 우리말



장난감의 특징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거다. 내 하자는 대로 한다. 그런데도 잔소리가 없다. 통찰력 있는 아이들은 그걸 잘 알기에 저렇듯 공룡, 자동차, 레고, 인형을 좋아하는 것이다. 어른들에게도 장난감이 필요하다. 휘발유 넣고 실제로 달리는 자동차는 어른들의 최후의 장난감이라고들 한다. 이 또한 내 마음대로 해도 아무런 말이 없는 상대다. 최근 나에게도 장난감이 하나 생겼다. 그건 옥편과 국어사전이다. 옥편은 멀리 돌아다닐 때 주로 휴대하고, 집이나 사무실에서는 국어사전을 본다.


어느 날의 주말. 영덕으로 꽃산행을 가기로 했었다. 하지만 태풍이 온다고 해서 일정을 갑자기 취소하고 집에서 뒹굴게 되었다. 소파, 텔레비전, 식탁 등 딱딱한 명사들의 세계에 머무는 동안 나의 몸도 소품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별달리 몸을 쓰는 않는 상태에 머문 것이다. 둘러보니 죄 고여있는 명사들뿐이었다.


내가 태풍을 무시하고 영덕으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그건 내가 동사의 세계로 들어가는 상태이기도 하다. 네모난 유리창, 네모난 방, 네모의 건물 안에서 두부처럼 식어가는 생활이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나뭇잎처럼 바람에 따라 능청능청 휘날리는 마음이었다.


국립국어원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어 어휘는 대략 사십여 만 개라고 한다. 이중 명사는 15만 개, 동사는 4만 개이다. 명사가 약 4배가 많다. 명사가 많은 사회는 딱딱하게 굳은 사회다. 명사가 소유를 대변한다면 동사는 존재를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다. 명사보다는 동사가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다. 움직일수록 몸에 좋은 것과 같은 이치라 할 것이다.


중국보다 좁긴 해도 우리나라도 넓다면 넓다. 내가 온 날을 다 산다고 해도 내 나라의 산을 다 가보지 못하고, 내 나라의 음식을 다 먹어보지 못하고, 내 나라의 말을 다 배우지 못한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에 짓눌려 살 때. 내 익숙한 고장인 부산을 떠나는 시외버스를 보면 무조건 집어타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북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향인 거창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보면서 나중 어른이 되면, 우리나라의 모든 읍에서 일박을 해야겠다는 원대한(?) 결심을 하기도 했었다.


그 이후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나는 이제 어른을 지나 노인이 되어 간다. 점점 동사의 세계에서 명사의 시간으로 옮긴다. 푸릇한 시절의 소박한 꿈일지라도 애석하지만 이제 그 약속을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헤아려 보니 우리나라의 읍은 무려 300개나 넘는다. 고작 삼백이라 할 수 있겠지만 여러 약속과 억압에 끄달리는 몸이라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제자리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꿈을 가지게 되었으니,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모든 우리나라 단어를 다 한 번씩 부려보는 것이다. 내 나라의 말들을 모조리 한번씩이라도 문장에 넣어보고, 그게 안 된다면 한 번씩 입술에 올려놓아 중얼거리기도 해 보는 것!


(202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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