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설 읽는 즐거움

세상에는 소설을 읽는 사람과 소설은 안 읽는 사람이 있다. 주변에 독서취향을 물었을 때 곧잘 이런 답변을 하는 사람과 마주한다. 소설 안 읽은 지 몇십 년 됐어. 나 또한 세상의 법칙과 답을 빨리 알고 싶었던 대학초년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픽션이 아닌 '팩트'를 담은, 우회로가 아닌 '직선로'라 믿은 사회과학 책을 편식해왔다. 이번에 펴낸 <잭 런던 걸작선>은 애초에 청소년, 대학초년생들을 대상으로 기획되었다. 『비포 아담』은 소설 진화론, 『강철군화』는 소설 자본론으로 불리듯, 잭 런던에게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마르크스 경제학, 사회진화론, 테러리즘, 파시즘 등 사회과학 학문사상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스토리텔링하는 힘이 있었다. 이야기꾼, 런던이 전해주는 세계정치경제학 수업은 지루하거나 졸리지 않았고, 한편의 영화를 보듯 흥미로웠다. 그야말로 런던의 작품은 청소년들에게 좋은 토론 교과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런던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편집하고, <잭 런던 걸작선> 기획의 변에 옷을 입혀가면서, 한국사회에는 100년 전 잭 런던이 『강철군화』에서 경고한 자본주의의 모순과, 과두제 사회의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강부자 정권, 촛불집회, 세계금융위기, 용산참사, MB악법 등 일련의 시국상황은 소설 『강철군화』와 판박이였다. 역사는 거꾸로 돌아가기도 한다. 작년 봄, 막 『강철군화』 번역을 마친 곽영미 씨는 초고를 전달하며 이렇게 말했다. “재밌게 읽히긴 하는데, 이걸 왜 번역했는가 싶어요. 너무 옛날 옛적 이야기라…….” 그도 그럴 것이 87년 항쟁 이후, 1989년 한울에서 펴낸 『강철군화』는 군부독재에 대항한 민주화 운동과 엮어져, 제목 또한 ‘강철 뒷굽(The Iron Heel)’이 아닌 ‘강철군화’라 번역했다. 참 쓰디쓴 사실은 100년 전 미국에서 출간된, 그리고 20년 전 한국에서 초역된 이 책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다. 사회의 부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과두제 사회는 지금 우리의 우울한 초상이다. <잭 런던 걸작선> 1차본에는 국내 처음 소개되는 두 권도 포함한다. 아담 이전의 인류가 그려낸 유쾌하고도 잔인한 풍자극인 『비포 아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한 개인의 성공과 몰락, 그리고 자연으로의 귀환을 담은 『버닝 데이라이트』. 마찬가지로 이들 작품도 소설로서의 재미와 함께, 이 시대에 유효한 논쟁거리를 건넨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소설을 읽지 않은 당신에게 나는 감히 잭 런던의 ‘사회’소설을 추천한다. 자기욕망에 충실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보다 더 현실적이다. 때로는 우리 앞에는 소설이라 믿고 싶은 현실이 있다. 그리고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소설도 있다. ⓒ 김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