僞學之要 莫先於窮理 窮理之要 必在於讀書
"배우고 익히는 데 궁리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궁리의 요체는 모름지기 독서에 있다."
주자로 불리는 주희의 말이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송나라의 거유 정이가 제창했던 궁리학窮理學에서 출발한 학문의 방법론이다. 사물 하나하나의 도리를 밝히고 여기에 일관하는 천리天理를 구명하고자 한다. 일본의 경우 에도시대부터 메이지시대에 걸쳐 많은 학자들이 이에 관심을 가졌었다. 오늘날로 치자면 물리학과 그 방법론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싶다.
이는 또한 궁리출판의 이름이 탄생한 배경이자 그 지향이기도 하다. 출판이 과학이라는 분야를 관심은커녕 생소하게 여기던 시절, 과학 전문 출판을 표방하며 나선 것이 궁리출판사이다.
“궁리는 다의적인 말입니다. 물론 주자의 궁리에서 따온 말이기는 하지만, 무궁무진하다거나 빈궁하다거나 하는 경우처럼 쓰이는 단어에 따라 천차만별의 내용이 실리는 것이 궁리입니다. 궁리를 과학의 옛날 버전쯤으로 해석한다면, 바깥의 사물을 쪼개서 보고 그로써 내부로는 자신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 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보편적인 차원에서 바라보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눈과 사회적인 눈을 일치하게 해주는 것이 궁리출판사의 역할일 것입니다.”
식물학을 전공한 궁리출판의 이갑수 대표는 대학시절에는 오히려 과학과 불화했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자연과학도 출신으로서의 예상된 미래를 벗어나 출판을 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과학은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며, 일반인과 모두를 위한 동네임을 보여주기 위한 책들을 펴낸다. 과학은 교양과 지식, 상상력의 원천임을 재차 강조한다.

이 대표는 자신이 만든 책 가운데 기억나는 책으로 『수학자들의 비밀집단 부르바키』(모리스 마샬/ 황용섭)와 『그래도 내 마음은 티베트에 사네』(아마 아데/ 김조년 외)를 꼽는다. 『수학자…』는 피타고라스학파와 대별되는 부르바키학파의 형성과 업적을 다루고 있다. 『그래도…』는 티베트의 유관순이라 할 수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 아마 아데의 삶을 통해 티베트 고난의 역사를 전하는 책이다. 하나는 현대수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하였으나 주목받지 못한 집단의 이야기이며, 또 다른 하나는 풍광의 아름다움만을 보여주는 여행기에서 벗어나 티베트의 처절함을 보여준다. 노력과 기대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의 호응은 그에 미치지 못해 기억나고 또한 아쉬움이 남는 책들이라 했다.
궁리출판사는 물론 과학 관련 책들이 중요 축이다. 그러나 그것이 대부분은 아니다. “삶의 이치와 자연의 이치”를 살피고자 하는 궁리출판은 죽음과 장애, 소외 등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책들을 선보이고 있다. 출판계에서 아직 사회적 아젠다로 이슈화되지 않은 분야들을 책을 통해 소개하고 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불러 모으기 위해서이다.
소위 죽음시리즈는 2001년 10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김열규)에서부터 출발해 『만남, 죽음과의 만남』(정진홍),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알폰스 데켄/ 오진탁), 『죽음을 어떻게 살 것인가』(히노하라 시게아키/ 김옥라)에 이르기까지 차츰 종을 늘려가고 있다. 잘 죽는다는 것은 녹록치 않다. 누구나 한번은 피할 수 없이 맞게 되는 순간을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죽음교육이야말로 살아가는 데 가장 절실한 교육이라는 것을 궁리의 책들을 통해 깨닫는다.
온통 풀들이다. 궁리출판의 사무실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풀로 일컬을 수 있는 식물들 천지다. 각각의 이름을 제대로 꿰지 못해 그저 풀이라 한들, 과학 전문 출판사 궁리에서는 오히려 비난받지 않을 것 같다. 푸릇한 잎사귀 외에도 말라버린 누런 이파리를 솎아내지 않는다. 그것 역시 나름의 생명을 다하도록 두는 것, 그래서 꽃과 모종이 곁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보이지 않는 자연의 이치로 연결되어 있음을 새삼 느낀다.
궁리출판은 우리가 과학의 낯설음을 극복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간행물윤리위원회는 이 대표의 말처럼 가능한 한 빨리 ‘윤리’자를 떼어내야, 과거 궁리출판이 그랬던 것만큼 지금 현재의 출판계에서 성공적인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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