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량식을 하다 - 건축 일기 30


많은 이들과 많은 사실들의 도움에 힘입어 무사히 골조공사가 끝났다. 황량했던 벌판에 인간의 의지와 계산이 반영된 구조물이 들어선 것이다. 견강부회하듯 그간 벌어진 사건을 끌어들이면 할 말이 많다. 무엇보다도 하늘의 도움이 컸다. 늘 그저 온화하게 뒤를 받쳐주는 것 같지만 실은 여러 면모를 감추고 있는 게 하늘이다. 아침마다 배달되는 하늘의 얼굴이 곧 날씨일 것이다.


궁리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참 날씨가 좋았다. 비의 방해를 받지도 않았다. 그러니 참 순조로운 공사라 할 만했다. 물론 시공사의 탁월한 기술과 작업하시는 분들의 노련함에 따른 덕분을 빼놓을 수 없다. 참으로 다행한 건 단 한건의 안전사고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우뚝 선 건물!


아주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면 아주 드물게 시골에서 집을 짓는 경우가 있었다. 마당에서 목수들이 대패, 끌, 망치, 톱 들을 늘어놓고 분주히 돌아다녔다. 집짓기의 어려움이야 하나도 눈치챌 줄 모르는 꼬맹이에게 공사판은 잔치판과 다름이 없었다. 그저 사람들로 북적이고, 망치소리 드높고, 나무결의 부드러움을 아는 대패는 끊임없이 토해내고 그리고 한켠에서 피어오르는 국수 삶는 연기.


그러다가 어느어느날, 잘 다음은 나무 하나가 마당에 길게 가로누웠다. 깔끔하게 대패질해서 맨들맨들한 대들보에 먹을 갈아 붓으로 큼지막하게 글씨를 썼다. 그땐 그게 무언 줄 몰랐지만 이제사 희미한 기억을 떠올려보면 나의 선친이 상량판을 쓰고 계시는 것이었다.


현장소장이 전해준 두 개의 상량판을 들고 사무실로 오는데 희미한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솔직히 말해서 기분이 묘하기도 했고 좋기도 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니 상량판 문구가 다종다양했다. 시골에 있는 형님께 전화도 걸어 그곳의 상량문도 참고를 했다. 그러다가 남대문의 상량식을 중계하는 뉴스에서 화면을 잠깐 흐르는 상량문을 캡쳐했다.


간단하고 간단하게 상량식을 치루었다. 준비과정과 구입한 물목, 오신 손님과 그날의 진행사항과 상량식 풍경에 대해 마음먹고 쓰고자 한다면 궁리 건물보다 더 높은 원고지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은 이제 작은 매듭에 불과하다. 지금은 단 몇 줄의 문장으로도 족할 뿐이다.


서로 다른 여러 물자들이 집합해서 건물을 지탱한다. 그 과정의 한 단계로 상량식을 거행하고 이를 기념했다. 그날 모인 분들과 그리고 몇몇 물건들은 이제 모두 흩어졌다. 일산시장에서 특별히 구입했던 웃는 돼지머리도 누군가의 몸으로 산산이 분해되어 들어갔다. 새로 도착한 그곳도 그저 잠시 머물고 말겠지만 어쨌든 모두들 제자리를 또 잡은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제 기억만으로 남은 상량식.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기록해 두어야겠다. 이날을 위해 궁리에서 준비한 것은 시루떡, 돼지머리, 막걸리, 과일 등등이었다. 이들과는 별도로 기념식 수건을 만들어 흑임자떡과 함께 오신 분들께 나누어 드렸다.


아마도 현재까지 남은 건 상량판을 떠받치며 굳건히 서 있는 건물과 수건뿐일 것이다. 이제 방수, 창호, 전기수도 배관, 냉난방, 벽돌치장 등의 공사가 남았다. 오늘도 그 공사현장으로 또 떠나면서 ‘궁리출판 파죽사옥 상량식 기념’이 찍힌 수건으로 세수를 했다. 나 말고도 궁리 수건으로 하루를 연 분이 어디에 계시겠지. 소멸에 관한 시 한 편을 떠올리면서 자동차의 시동을 힘차게 걸었다.


거실 화장실 수건은 늘 아내가 갈아두는데

그중에는 근래 직장에서 받은 입셍로랑이나

란세티 같은 외국물 먹은 것들도 있지만,

1983년 상주구계서원 중수 기념수건이나

(그때 아버지는 도포에 유건 쓰고 가셨을 거다)

1987년 강서구 청소년위원회 기념수건도 있다

(당시 장인어른은 강서구청 총무국장이었다)

근래 받은 수건들이야 올이 도톰하고 기품 있는

태깔도 여전하지만, 씨실과 날실만 남은 예전

수건들은 오래 빨아 입은 내의처럼 속이 비친다

하지만 수건! 그거 정말 무시 못할 것이더라

1999년, 당뇨에 고혈압으로 장인어른 일년을

못 끌다 돌아가시고, 2005년 우리 아버지도

골절상으로 삭아 가시다가 입안이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가셨어도, 그분들이 받아온 낡은

수건들은 앞으로도 몇 년이나 세면대 거울 옆에

내걸릴 것이고, 언젠가 우리 세상 떠난 다음날

냄새나는 이부자리와 속옷가지랑 둘둘

말아 쓰레기장 헌옷함에 뭉쳐 넣을 것이니,

수건! 그거 맨 정신으로는 무시 못할 것이더라

어느 날 아침 변기에 앉아 바라보면, 억지로

찢어발기거나 불태우지 않으면 사라지지도 않을

옛날 수건 하나가 이제나 저제나 우리 숨 끊어질

날을 지켜보기 위해 저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소멸에 관하여/이성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