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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프랜시스 크릭의 <놀라운 가설>


1 서문

문 : 영혼이란 무엇입니까?

답 : 영혼이란 육신 없이 살아 있는 것living being1

이성과 자유의지를 가지는 것입니다.

- 로마 가톨릭 교리문답집



놀라운 가설이란 바로 ‘여러분’, 당신의 즐거움, 슬픔, 소중한 기억, 야망, 자존감, 자유의지 이 모든 것들이 실제로는 신경세포의 거대한 집합 또는 그 신경세포들과 연관된 분자들의 작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앨리스라면 이렇게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당신들은 뉴런(신경세포를 지칭하는 과학 용어) 덩어리에 불과해요.” 이 가설은 오늘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생소한 것이어서 ‘놀라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하다.


자연의 본질, 특히 자기 자신의 본질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모든 사람, 모든 종족 속에서 심지어는 원시시대에도 발견된다. 매장 의식이 광범위한 지역에서 나타났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러한 관심은 기록의 역사가 시작한 그때, 아니 그 이전까지 거슬러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육신과 분리된 정신이 존재하며 그것은 육체가 죽은 후까지도 지속되고, 어떤 점에서는 그것이 인간의 본질을 구현한다고 믿었다.


정신이 없다면 육체는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다.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은 육체를 떠난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는—그 영혼이 하늘나라로 올라가든, 지옥이나 연옥으로 떨어지든, 아니면 윤회를 거쳐 당나귀나 모기의 몸으로 다시 환생을 하든 간에—특정 종교에 따라 달라진다. 세부적인 사실에까지 모든 종교가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여러 종교들이 각기 다른 계시(성서)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기독교의 성경과 이슬람교의 코란을 비교해 보라. 이처럼 종교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최소한 폭넓은 공통점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다.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영혼을 가진다는 뜻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의 경우 강력하고 적극적인 신념으로 그 믿음을 받아들인다.


물론 몇 가지 예외는 있다. 그중 한 가지 예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따르는 보다 극단적인 일부 기독교 교파의 소수 신도들은 여성들이 영혼을 가지는지, 그리고 설령 영혼이 있다 하더라도 남성과 같은 질의 영혼인지 의문을 품었다. 또한 유대교 같은 일부 종교는 사후의 삶에 큰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각각의 종교들은 동물들이 영혼을 가지는지의 여부에 대해 큰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오래된 농담으로, 철학자들은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개를 기르는 부류는 개가 영혼을 가진다고 믿고, 개를 기르지 않는 부류는 개에게 영혼이 없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소수의 사람들—얼마 전까지 공산주의 체제였던 상당수의 국가를 포함해서—은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 사람들은 육체와 영혼을 서로 분리해서 생각하는데, 이미 알려져 있는 과학 법칙을 따르지 않는 영혼이 존재한다는 개념을 신화로 치부한다. 이러한 신화들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살펴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실제로 물질과 복사輻射,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상세한 지식 없이도 이러한 신화들은 너무도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영혼의 기본적인 개념들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야 할까? 만약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개념을 믿는다면, 영혼에 대한 믿음은 그 자체로 확실하게 검증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약 4천 년 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하루아침에 산산조각 나버린 주된 이유는 현대과학의 경이로운 발전이다. 오늘날 우리가 품은 대부분의 종교적 믿음은, 현재 우리의 기준으로 볼 때에는 좁은 크기에 불과한, 지구가 무척 광활하고 심지어는 그 정확한 경계가 어딘지조차 알지 못했던 시기에 형성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지구에 대해 알고 있던 지식은 극히 미미하고 단편적인 것에 불과했다. 따라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인간은 우주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졌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구의 기원은 시간이라는 흐릿한 안개, 그리고 고려해야 할 시간의 크기 속에서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 시간은 인간의 경험이라는 잣대로는 무척이나 긴 것이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것이 우스꽝스러울 만큼 짧은 시간임을 안다. 지구의 나이가 1만 년 이하라는 믿음은 당시로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지구의 실제 나이가 약 46억 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당시에는 밤하늘의 별들도 멀리 떨어진 천구天球 상에 붙박혀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우주가 무려 10조 광년이라는 엄청난 거리에 뻗어 있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힌두교와 같은 동양의 특정 종교는 예외이다. 힌두교는 시간과 거리를 엄청난 척도로 팽창시키는 유희를 벌였다.)


갈릴레오와 뉴턴 이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물리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극히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태양과 행성의 운동은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규칙성을 띠는 것처럼 보였다. 행성과 항성이 그들을 인도하는 천사를 필요로 했던 것 역시 비이성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행성과 태양의 운행이 그토록 규칙적일 수 있단 말인가? 16세기와 17세기에도 화학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는 대체적으로 부정확했다. 실제로 20세기 초에 와서야 일부 물리학자들이 원자의 존재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여러 원자들의 성질에 대해 무척 많은 사실들을 알고 있다. 우리는 원자의 모든 화학적 종류에 대해 각기 다른 고유번호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그 원자들의 구조를 상세하게 알게 되었고, 나아가 원자의 행동을 제어하는 대부분의 법칙을 알아냈다. 물리학은 화학에 대한 설명들을 제공해 주었다. 유기화학 분자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상세하고 방대하며 매일같이 그 폭을 넓혀가고 있다.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여전히 극미極微 길이의(한 원자의 원자핵 내부에서) 세계에서, 극도의 고에너지 상태에서, 그리고 그 세기가 매우 큰 중력장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구상에서 일상적으로 다루고 있는 조건(특수한 환경 하에서만 하나의 원자가 다른 원자로 바뀌는)하에서,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우리 지식의 불완전성이 마음과 뇌에 대해 이해하려는 시도를 벌이기에 그다지 또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기초화학과 물리학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덧붙여서, 지구과학(지질학과 같은)과 우주과학(천문학과 우주론)은 전통적인 종교가 생겨나게 된 상식적인 지식과는 전혀 다른 세계와 우주의 상像을 발전시켜 왔다. 현대적인 우주의 상, 그리고 그 우주가 시간적으로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물학 지식의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 그 지식은 지난 150년 동안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했다. 찰스 다윈과 앨프리드 월리스가 각기 독자적으로 생물학적 진화로―자연선택의 과정―이어지는 기본적인 메커니즘을 발견하기 전까지 ‘설계논증Argument from Design’에 대한 해답은 얻을 수 없는 듯 보였다. 인간과 같이 완벽하게 설계된 복잡한 유기체가 전지전능한 설계자의 도움 없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 주장은 완전히 허물어지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는 박테리아에서 우리 자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이 생화학적 수준에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수십억 년 동안 생물이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무수한 식물과 동물 종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때로는 급격하게 변화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공룡이 사라지자 수많은 포유류의 종들이 태어나 그 자리를 메웠다. 오늘날 우리는 시험 재배지와 시험관 속에서 진화의 기본적인 과정을 직접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금세기 들어 생물학 연구에 극적인 진전이 이루어졌다. 그것은 유전자의 분자적 성격과 정확한 복제와 연관된 과정에 대한 이해, 그리고 단백질과 그 합성 메커니즘에 대한 상세한 지식으로 가능해졌다. 이제 우리는 단백질이 집합으로서 매우 강력하고 다재다능하며 정교한 생화학 장치의 기초를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돌파는 발생학(오늘날 흔히 ‘발생생물학developmental biology’이라 불리곤 한다.)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섬게의 수정란은 보통 여러 차례 분열을 거친 다음 다 자란 섬게가 된다. 첫 번째 분열 이후 수정란이 두 개의 딸세포로 분리되는 경우에는 각각의 딸세포가 분열을 거듭해 조금 작은 두 마리의 섬게로 태어난다. 개구리 알도 이와 비슷한 실험을 할 수 있다. 분자들은 원래 하나의 개체를 만들었을 재료로 스스로를 재조직해 두 개의 개체를 만들어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에 이 사실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그 과정에는 분명 일종의 정신적인 생명력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생물체의 극적인 배증倍增이 생화학적 기초로―즉 기관이나 다른 것들을 구성하는 분자의 상호작용을 통해―설명될 수 있다는 사실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론적으로 그런 일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물론 그 설명이 복잡한 것은 분명하다. 과학의 역사는 어떤 현상이 애초부터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들로 점철되어 있다.(‘항성들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결코 알 수없을 것이다’ 등등.)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시간이 흐르면서 그러한 예측이 잘못이었음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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