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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사회사>를 쓴 과학기술사회학자 김동광 교수 인터뷰


Q∥ 그동안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의 주요 작품 등 다양한과학책들을 번역해왔으며, 여러 과학기술학 동료들과 함께 책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펴낸 <생명의 사회사>는 그동안의 연구가 집적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데, 어떤 내용들을 담고 있는지요?

A∥  그동안 번역서나 공저는 많았지만 이번이 실질적으로 제 첫 번째 저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과학기술사회학자로 게놈프로젝트가 출범한 90년대 말엽부터 생명공학과 사회의 관계라는 주제를 계속 붙들고 있었던 셈이지요. 박사논문도 ‘생명공학과 시민참여’라는 주제로 1970년대의 재조합 DNA 논쟁을 다루었고요. 또한 2005년 무렵 황우석 사태로 줄기세포나 생명윤리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뜨겁게 제기되었고, 당시 시민단체인 시민과학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던 터라 자연히 인간배아 복제, 줄기세포 등에 대한 논쟁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낸 책에서 다루어진 주제들은 이처럼 그동안 제가 학문적, 실천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던 내용들이라 할 수 있지요. <생명의 사회사>에 담긴 내용은 ‘분자적 생명관의 수립에서 생명의 정치경제학까지’라는 부제가 잘 요약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 4부로 구성했는데, 2부까지는 분자적 생명관이 형성된 배경으로 일종의 전사(前史)의 성격을 띠고 있고, 3부에서 분자적 관점이 수립된 역사적 맥락과 그 함의를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밝히려고 시도했던 것은 오늘날 너무도 큰 위세를 떨치고 있는 분자적 생명관이 우리가 생명을 DNA나 유전자의 관점으로 보는 하나의 경향성, 즉 토마스 쿤의 용어로 하나의 패러다임일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그런 관점을 가지게 된 것이 필연적인 무엇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렇게 되기까지는 숱한 역사적 및 사회적 맥락이 있었고, 그 맥락들을 살피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4부에서 그러한 생명관이 우리가 생명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생명을 다루는 데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생명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맥락에서 다루었습니다.



Q∥ 이 책을 좀더 깊이 있게 읽기 위해서는 ‘과학기술학’, ‘과학기술사회학’ 등의 학문 분야를 이해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이 분야는 주로 어떤 주제를 연구하는지요?

A∥  제가 서문에서 간략히 밝혔듯이 이 책은 과학기술학, 특히 과학기술사회학의 관점들을 분석틀로 채택했습니다. 과학기술학(science & technology studies, STS)은 간(間)학문적 접근방식입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 사회과학 등 여러 학문분야들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 방식이지요. 1970년대 이후 과학과 사회의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과학과 사회, 과학과 문화 등 어느 한 분야에서만으로는 접근하기 힘든 많은 쟁점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이렇듯 복잡다단한 주제들을 연구하기 위해 탄생한 신생 학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나라에는 80년대 후반부터 서울대, 고려대, 전북대, KAIST 등에 관련 학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과학기술학회는 2000년에 탄생한 이래 젊은 학자들이 많이 늘어나서 학회가 열리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이지요.


과학기술학은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과학 커뮤니케이션, 과학정책 등 여러 분야가 있으며, 제가 공부하는 과학사회학은 주로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룹니다. 이 책에서 다루어진 생명공학과 사회라는 큰 주제부터, 최근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 살충제 오염 계란이나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기술 위험, 신고리 5, 6호기 건설 계속을 둘러싼 공론조사와 같은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참여 등이 모두 연구 주제들이지요. 최근에는 과학기술학과 관련된 국내 연구자들의 저서와 번역서들이 많이 출간되어서 일반 독자들도 쉽게 입문서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과학기술학이 관련 학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알아야 할 새로운 교양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봅니다. ㅎㅎ



Q∥ 생명을 보는 관점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분자적 관점은 우리 시대에 형성된 독특한 생명관이라고 했습니다. 생명을 분자적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시기는 구체적으로 언제부터인지요?

A∥  제가 이 책을 쓰면서 크게 빚진 학자 중 한명이 릴리 E. 케이입니다. 그녀는 1953년 DNA 이중나선구조가 발견되기까지의 과정을 분자적 관점이 형성된 시기로 봅니다. 그러니까 분자생물학이 수립되기 시작한 1930년대부터 여러 가지 유비를 통해서 DNA가 발견되는 과정을 예비한 셈이지요. 왓슨과 크릭의 이중나선 구조 발견은 DNA를 실체로 확인했고, 복제의 메커니즘을 밝혔다는 점에서 생명에 대한 분자적 패러다임을 공고히 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던 셈입니다.


제가 이 과정을 상세히 다룬 것은 이러한 분자적 관점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많은 연구자들과 집단, 세력, 이해관계와 갈망 등이 복잡하게 뒤얽혀서 이러한 생명관이 빚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였습니다. 다시 말해, 그 역사성과 사회성을 들추어내서 이런 생명관이 생명을 보는 유일한 관점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려 한 것이지요.


제가 자주 하는 말이지만 생명을 보는 창문은 분자적 수준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군집, 종, 생태계, 생물권 등 다양한 수많은 수준들에서도 가능하며, 모든 관점들이 제각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물론 분자적 수준의 접근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많은 사실들을 밝혀낸 것은 큰 진전이지만, 오로지 DNA와 유전자를 통해서만 생명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식의 접근은 편협하고 위험할 수 있습니다.


마치 대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카드 섹션을 잘 보려면 카드 하나하나를 관찰하기보다 운동장 위에 띄운 드론이나 헬리콥터에서 보는 편이 나은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분자적 관점이 가장 근원적인 관점이라는 식의 생각은 잘못입니다. 생명은 다양한 수준에서 볼 수 있고, 어떤 관점이 채택되는가도 시대적 흐름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지금은 분자적 패러다임에 속해 있기 때문에 분자적 관점이 지배적인 관점의 지위를 갖지만, 패러다임이 바뀌면 관점 또한 변화할 수 있지요.


오늘날 분자적 관점이 힘을 가지게 되는 까닭은 그 관점이 생명에 대한 통제와 조작을 수월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조금 어렵게 이야기하자면 조작과 통제에 대한 인식적 토대를 제공해준다는 것이지요. 제가 3부와 4부에서 집중적으로 탐구하려 했던 것이 이러한 ‘생명의 통제와 조작가능성’을 둘러싼 논란입니다. 사실 서구에서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생식에 개입해서 인류를 좀더 나은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우생학적 시도가 끊이지 않았고, 그 비극적 결말이 나치의 홀로코스트였지요.


이런 갈망은 이후 분자생물학이나 유전학을 통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1990년대 이후에는 과학의 상업화와 신자유주의의 본격화로 생명공학이 자본에 완전히 포박되면서 생명의 전지구적 사유화체제라는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DNA는 엄청난 사회적 권력이 되었고, 사람들은 생명을 이해하는 다른 경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까맣게 잊게 되는 지경이지요. 그것은 DNA에 얹힌 엄청난 자본의 힘이라고 할 수 있고요. 분자적 관점을 통해 생명을 남김없이 설명하겠다는 정복주의적 생명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런 정복주의적 관점이 아닌 ‘다른’ 생명관의 가능성을 시사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물론 이것은 앞으로 계속 연구해야할 주제입니다.



Q∥ 오늘날 대중은 GMO, 줄기세포, 가습기 살균제, 구제역 등 과학과 연관된 주제를 둘러싼 정보들을 매체를 통해 알게 되고, 때로는 직접 토론에 나서기도 합니다. 대중은 더 이상 과학의 지지자나 후원자에 머물지 않고 과학활동의 주요 행위자로 나서고 있습니다. 과학전문가들과 일반대중이 좀더 원할하게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요?

A∥  전통적으로 대중은 전문가인 과학자가 생산한 과학을 소비하는 역할로 한정되어 왔지만, 멀게는 1960년대 환경운동과 197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재조합 DNA 논쟁 이래 점차 과학기술을 둘러싼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지요. 오늘날에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신고리 5,6호기 건설 계속을 둘러싼 공론조사처럼 일반 시민들의 견해가 과학기술의 의사결정에 중요하게 반영되고 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998년부터 ‘시민합의회의’와 같은 시민참여 모형들이 여러 차례 시도되었고, 많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동안에는 NGO 등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어 이런 노력이 이루어져서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정부와 국회가 주도해서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좀더 적극적으로 이끌어내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 우리나라 국민들 사이에서 과학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고, 지난해 촛불시위에서 나타났듯이 참여에 대한 의지가 어느 때보다도 강하기 때문에 앞으로 점차 다양한 영역에서 시민참여가 이루어질 것으로 봅니다.



Q∥ 이 책 외에 지금 집필중이거나 앞으로 더 쓰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살짝 들려주세요.

A∥  에필로그에서 시론(試論) 형태로 제기했던 생명에 대한 다른 관점의 가능성을 좀더 집중적으로 연구할 계획입니다. 사실 분자적 패러다임이 워낙 강고해서 이런 관점을 상상하는 것조차 버거운 일입니다만, 최근 생명이 분자적 생명관을 토대로 한 생명공학과 기업의 조작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여러 분야에서 문제제기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생명의 상업화와 소외 현상을 조금더 구조적으로 분석해서 생명 운동을 향한 대안적 관점을 제기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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