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출근길. 올림픽 대로에 접어든다.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출근시간대가 비슷해서 차들이 많이 몰려있다. 아마 차속의 모든 이들이 모두 비슷한 동작을 거쳤을 것이다. 깨고, 일어나고, 싸고, 씻고, 먹고 그리고 후다닥 뛰어내려 시동을 걸었겠다. 그래서 그런가. 뒷모습들이 모두 비슷해 보인다. 검은색 계통의 옷을 입었고 고민을 하나씩 짊어진 각진 모습의 실루엣.
느림보 걸음이던 도로가 동작대교를 지나면서 슬슬 정체가 풀렸다. 좌측 차선은 여의도로 빠지는 길이라 차들이 꽉 막혔고 오른쪽 차선은 씽씽 달린다. 멀리서 한강철교가 보이고 그 위로 전철이 달려든다. 속력을 더 낸다. 전동차와 자동차가 한번 교차하고 싶은 것이다.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듯, 다리 아래를 지날 때 마침 운행하는 기차가 있다면 꽁무니와도 한번 겹치는 게 좋다. 그럴 때 기차의 굉음을 들으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 아무려나 그런 사소한 끄나풀이라도 잡아서 있지도 않는 행운을 내편으로 끌어당겨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다리를 지나칠 때면 혹 기차가 오나 두리번거리게 되고, 멀리서 기차를 발견하면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속력을 높여 기차와 높이를 달리하여 충돌해 본다.
한강철교 아래를 지날 때면 그 느낌이 더욱 남다르다. 작은 거리를 오가는 전철이거나, 서울 시내를 두더지처럼 순환하는 지하철과는 유(類)다 다르다. 그것은 저 멀리 내 고향보다도 훨씬 아래쪽에서부터의 기운을 흠뻑 몰고오는 열차들이다. 노량진을 도움닫기 삼아 한강을 점프하듯 돌진하는 차는 그래서 한강철교에 들어서는 순간에는 더욱 힘을 내는 것도 같다.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 만나는 기차는 밤새 열심히 달려온 기차일 공산이 크다. 모르긴 몰라도 저 기차안에는 식솔을 이끌고 이 낯설고 야뱍하기 이를 데 없는,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룰이 지배하는 정글같은 서울로 이사하는 가장도 더러 한둘은 있을 터!
다행이다. 오늘은 기차의 몸통 부위와 내 쏘렌토가 정확히 충돌했다. 만약 행운이 온다면 제대로 된 어마어마한 행운일 성 싶다. 찌르르르한 진동을 폭포수처럼 느끼며 경쾌한 기차소리를 귓구멍에 가득 채우면 나는 그냥 가만 있을 수가 없다. 무언가 느낌에 걸맞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휘파람은 라디오 소리에 묻힌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동작. 오른손을 펴고 천천히 들어 그 어딘가의 허공에 거수경례를 한다. 그리고 반드시 눈썹을 한번 만진 뒤 손을 다시 핸들로!
무사히 출판단지 사무실에 도착했다. 아무런 사고가 없었으니 이만하면 큰 행운이겠다. 월요일 회의. 궁리에서는 신년 벽두에 대작을 기획했다. 그 결과물이 곧 나온다. 총 9권으로 진행되는 <시튼의 동물 이야기 선집>이다. 처음 소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을 한곳에 모은 것이다. 두 편은 초역이다. 표지를 결정하는라 시안을 놓고 편집부 직원들이 의견을 수렴했다. 뒷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식물의 사생활>의 저자이고 영국 BBC 자연 다큐멘타리 제작자로 유명한 데이비드 애튼버러가 남긴 말이다.
“나는 시튼의 동물 이야기를 여덟살 때 처음 읽었는데 내 어릴 적 가장 소중한 책으로 남아 있다. 시튼은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 인간의 시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데이비드 애튼버러
나의 시선은 그 문장 중에서도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 인간의 시선’이란 구절에 머물렀다. 그러면서 바로 조금 전 한강철교를 지나면서 문질렀던 내 눈썹 생각이 났다. 내 눈썹은 아직도 그대로 내 눈 위에 처마처럼 조용히 달려 있었다. 동물진화학자가 이 글을 본다면 참으로 가소롭게 여겨 웃으실 이야기겠지만 오늘 아침 출근길에서부터 월요일 편집 회의때까지 내가 취한 일련의 행동을 이렇게 정리해도 되겠다.
좋은 일이 생기면 원숭이가 그저 헤벌쩍 웃거나 춤을 추듯, 내 나름의 소박한 행운으로 치부하는 경우를 만나 나는 잠깐 얼굴을 비스듬히 들고 정면에서 조금 기울이진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더랬다. 그리고 엉거주춤하게 손을 들어 새로운 허공에 대고 거수경례를 붙였더랬다. 이건 불현듯 흥건해진 내 마음을 만나 나도 모르게 내 나름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문득 내가 아침에 문질렀던 눈썹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내처 야생동물에게도 눈썹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났다. 막상 생각해 보니 개들에게 눈썹이 있는 것도 같았고 없는 것도 같았다. 제1권은 <커럼프의 왕, 로보>로 늑대가 주인공이다. 표지에 실린 잘 생긴 늑대를 보니 궁금증이 쉽게 풀렸다.
눈썹이란 인간에게나 해당될 뿐, 동물에게는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었다. 자연의 동물은 온몸에 옷처럼 무성한 털을 잔뜩 달고 있다. 자연에서 빠져나온 인간만이 털을 모두 잃어버리고 머리카락과 함께 그저 은밀한 몇 군데에만 털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얼굴에 남은 눈썹은 한때 털북숭이로 살았다가 이젠 잔설처럼 희미하게 남은 흔적!
사람이라고 동물이 아닌 것도 아니다. 지구는 사람만이 사는 별이 아니다. 그 별은 중층(重層)의 구조로 된 집이다. 하나의 시선을 고집한다는 건 그집에 창문은 없고 출입문만 있는 것과 같은 것...............<시튼의 동물 이야기>를 많이 주목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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