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항타를 하다 - 건축 일기 7


날씨가 우중충했다. 토요일 오후 2시에 시항타를 한다는 연락이 현장소장으로부터 왔다. 자유로는 나들이 차로 북적댔다. 땅의 마음을 확인하러 가는 날이다. 추첨을 통해 단지에서 궁리의 위치는 이미 정해졌다. 쑥부쟁이와 쑥, 개망초 등이 주인 행세를 하는 땅은 이미 여러 번 보았다. 혼인으로 친다면 이미 맞선은 보았고 상견례도 여러 번 한 셈이라 할 수 있겠다. 오늘은 말하자면 땅속의 마음을 확인하는 날이니 속궁합을 보는 날이라 해도 될까.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현장에 도착하니 조립을 완료한 포크레인이 육중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땅에 따로따로 뒹굴고 있던 부품들이 정확하게 제자리를 찾았다. 복잡한 연결 고리들 중에서 하나라도 삐끗한다면 동력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시공하는 분들의 의도도 중간에 끊기고 말 것이다. 무려 33미터의 높이. 공중이라도 뚫을 듯 기세좋게 하늘을 향하지만 실은 땅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은근히 시치미를 뚝 떼면서 제 할 일을 기다리고 있는 총각신랑이라고 해도 되겠다. 호주머니 손을 넣고 튼튼한 불알을 은근히 만지작거리는 총각신랑.


긴장하는 장비와 부품들. 그 앞에서 이 시공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나름대로 긴장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예정된 2시 무렵 phc 파일을 실은 화물차가 도착했다. 시항타에 쓰일 6개를 내리는 동안 운반해온 서글서글한 눈매의 청년에게 물었다. 강화도에서 제작한 전봇대 같은 파일. 이곳 출판도시의 웬만한 현장에는 모두 자기가 납품했노라고 했다.


차에 실린 파일을 미니 포클레인이 와서 번쩍번쩍 들기에 신통하다고 했더니, 파일 하나가 3톤인데 저 포클레인은 미니라 해도 5톤은 끄떡없이 처리한다고 했다. 크고 육중한 것들만을 상대해서 그런지 말이 시원시원하고 성격도 화통한 것 같았다. 눈매가 서늘한 청년이 손을 흔들며 웃으면서 화물차를 몰고 떠났다.


파주 출판도시의 대지는 매립지이다. 뻘밭을 개토하여 땅을 다진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파보면 모래가 나오고 뻘층이 나오고 급기야는 물이 나온다. 그 깊이가 15미터 이내에서 암반을 만난다면 오늘의 공사가 수월하게 끝나는 셈이다. 미리 이 지역의 지질 공사를 해보았다지만 땅의 마음은 여자의 순정과 같아서 오리무중이라 했다. 파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


미니 포클레인이 움직여 포클레인이 본격 힘을 쓸 준비를 갖춰주었다. 두꺼운 철판을 요처럼 깔아주었다. 그 요 위로 포클레인이 천천히 이동했다. 그리고 사대를 움직여 꽃심기를 해 둔 곳 중에서 가장자리 하나를 정확히 겨냥했다. 드디어 요란한 굉음을 내면서 오그 드릴이 돌기 시작했다. 힘이 굉장했다. 대단하고 단단하게 보이던 땅, 내가 함부도 딛고 꿀렁꿀렁 대어도 꼼짝도 않던 땅이 그냥 맥없이 쑥쑥 파이는 게 아닌가.


들어가는 것만큼 나오기 마련이다. 오그 드릴로 뚫고 케이싱이 들어가면서 땅이 그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벼운 흙먼지가 일더니 이윽고 깊이대로 서로 다른 성분의 흙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붉은 빛을 띄는 것 같더니 어느새 물기가 나타나고 아주 진흙탕이 튀어나왔다. 물을 피하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그리 되기는 어려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어느 순간부터 흙반 물반의 걸죽한 물질이 용솟음쳤다. 대지의 피가 오늘 제대로 한번 끓어보는 것일까. 그것은 시골 잔칫날 희생된 돼지의 멱을 딸 때, 피가 콸콸콸 나는 것을 방불케 했다. 리어카 위에서 고무줄에 꼼짝없이 사지를 결박당한 채 몸부림을 칠 때마다 솟구치던 피! 그런 피처럼 땅속에서 잠자고 있던 진득한 진흙들이 마구마구 솟아나왔던 것이다. 이제 원하던 만큼 들어간 모양이다. 빙글빙글 돌던 드릴이 멈추었다.


일순 잠깐의 정적이 찾아왔다. 시동이 꺼지고 포클레인을 운전하던 기술자도 담배를 꺼내물었다. 공중에서 떨어지던 흙이 진동을 타고 마지막으로 떨어졌다. 시공회사의 사장님이 성큼성큼 다가가서 흙은 한줌 손으로 떼내어 문질렀다. 흙의 찰진 정도와 물기, 성분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보통의 흙 사이로 뻘의 표지하는 성분이 이 방면의 문외한인 내 눈에도 확 들어왔다.


지금 내 눈앞에는 며칠간 애를 태운 땅의 마음이 속속들이 드러나 있다. 그것은 알라딘의 요술램프에서 호리병에 감금되었다가 겨우 탈출한 거인이 푹 널브러져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말하자면 지구라는 거대한 호리병에 갇혀 있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하늘과 햇빛을 쬐는 것이라 할 수도 있으리라. 이것도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그것은 우락부락하게 생긴 거인이 아니라 아주 곱상한 케이크 같은 모양을 빚어내고 있었다. 혹 누군가는 이를 보고 저 멀리 심학산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무덤을 떠올릴 수도 있으리라.


다시 작업이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15미터 파일로는 감당이 안 되는 분위기였다. 마지막으로 확인하듯 phc 파일을 걸어 드릴이 뚫어놓은 구멍으로 집어넣었다. 그 육중한 파일이 순식간에 쑥 들어갔다. 어느 새 구멍을 가득 채운 허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아무런 힘이 필요치 않았다. 파일이 가진 스스로의 무게로 인한 가속도의 힘으로 쿵, 하고 떨어졌다.


과연 예상대로였다. 사정없이 좁은 구멍으로 들어가던 파일이 다이빙 선수가 물속에서 되튕겨나오듯 그 무거운 파일 국수가락처럼 둥실둥실 다시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별 별일도 아닙니다. 이젠 땅의 속마음을 알았으니 됐습니다. 5미터짜리 파일을 용접해서 23미터로 내려갈 수밖에 없군요.” 옆에서 말을 했지만 나는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제 땅의 마음이 명확해졌다. 이 지상의 발밑에서부터 15미터에는 물이 있다. 그곳에는 힘을 받을 여지가 없는 것. 기둥을 세울 암반을 찾아 다시 더 뚫고 내려가야 한다. 비용이 더 들고, 시간도 더 들어가야 한다. 나에게 땅을 맞출 수는 없다. 오로지 오밀조밀한 땅의 마음에 내 마음으로 궁합을 맞추자니 가슴이 흙처럼 깊게 타들어갔다. 갈 길이 멀구나.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다. 땅밑은 땅밑의 질서대로 지상에서 맞춰나가면 된다. 내일부터 제대로 공사를 시작하면 된다. 구정 전에 파일 공사를 끝내고 연휴기간 동안 콘크리트 양생을 시키면 가장 좋은 스케쥴이었는데 그건 일단 물 건너갔다. 우선 5미터짜리 파일을 구하는 게 급선무였다. 주문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시공사 사장님이 급하게 핸드폰을 누르기 시작했다.


*시항타 : 본 공사의 항타 전에 구조도, 토질주상도 등을 토대로 pile의 길이, 허용지지력 등을 확인하는 시험으로 에너지보존법칙을 이용한 항타공식에 의해 말뚝의 지지력을 예측하는 것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