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깝다, 이 책┃神? 과연 신은 있을까 없을까.


1.


『시간의 역사』로 유명한 영국의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우리나라에 온 건 1990년이다. 지금은 명성에 흠이 많이 간 주간지 <시사저널>이 창간하면서 그를 초청한 것이었다. 정치인이거나 경제인, 주식투자가들을 주로 초청하는 마당에 휠체어에 의지해 힘겨운 연구 활동을 해가는 호킹 박사의 초청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1990년 9월 10일. 호킹 박사는 신라호텔에서 대중강연을 했다. 제목은 <블랙홀과 아기우주>.나도 그 강연에 가 보았다. 말은 하지 못하고 컴퓨터에 연결된 조작신호로 의시표시를 하는 호킹 박사의 강연에는 정말 구름 같은 사람들이 몰렸다. 강연을 마치고 나는 퇴장하는 호킹 박사를 직접 볼 수가 있었다. 겹겹이 사람들로 둘러싸인 가운데 휠체어에 가냘프게 누워있는, 힘들게 숨을 몰아쉬던 호킹 박사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그 호킹 박사에 대한 뉴스가 며칠 전 여러 언론에 소개되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호킹박사가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천국이나 사후(死後)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동화(fairy story)’일 뿐”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또한 호킹 박사는 사람의 뇌를 부속품이 고장 나면 작동을 멈추는 컴퓨터에 비유하면서 “고장 난 컴퓨터에는 천국이나 사후 세계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뇌가 깜빡한 이후엔 천국 같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한편 호킹 박사는 작년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를 출간하면서 신(神)의 존재를 부정해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도 있었다. 그 저서에서 호킹 박사는 “우주는 중력의 법칙과 양자이론에 따라 무(無)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나 신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담아 종교계의 논쟁을 불러일으켰었다.


과연 신은 있을까 없을까.




2.


헌법에 대한 책을 하나 내고 싶었다. 많은 말들이 있지만 그래도 헌법은 헌법이다. 우리나라 헌법의 제1조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고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이 중에서 가려보자. 대한민국, 민주, 공화국, 주권, 국민, 권력이라는 단어.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은 참 잘 모른다. 그리고 또 헌법에 자주 등장하는 권리, 자유, 행복, 통일, 평등, 양심 등의 말들.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기획한 것은 다음과 같았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으로 시작하는 헌법전문은 아주 긴 한 문장이다. 이 문장의 한 구절 한 구절을 떼내어 해설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짚어주면서 그 구절들에 헌법의 각 조항이 담고 있는 것들을 배치하는 것이었다. 어쩐지 좀 엉성했다. 그래도 제대로 된 필자를 만나 의견을 나누다보면 골격이 잡히고 잘 하면 인터넷신문인 <프레시안>에 연재도 연결될 것 같았다.


내친김에 프레시안과 공동으로 ‘헌법읽기, 헌법전문 외우기’ 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할 구상을 세우기도 했다. 염두에 둔 필자가 두 분 있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분들이었다. 기획취지와 함께 정중한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아무런 답신이 없었다.


우리나라 헌법의 제 20조는 종교에 관한 것이다.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이고 제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제21조는 이렇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나는 기획할 자유를, 궁리는 출판할 자유를, 필자들은 나의 제안에 아무런 대꾸도 안할 자유를 각각 가진다. 이는 헌법으로 보장된 것이다. 신에 대한 자유를 헌법으로 인정하는 줄도 그때 알았다. 아쉬웠지만 도리가 없었다. 나의 기획안은 보기 좋게 쓰레기통으로 갔다.




3.


불문학을 전공하고 번역가로 유명한 분이 재미있는 책 하나를 소개해 주었다. 제목은 『DIEU?』. 우리말로 『神?』이었다.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형식이 재미있었다. 그것은 내가 헌법에 관한 책을 기획하면서 작성해본 것과 같은 것이었다. 즉 서기 325년 니케아 공회에서 채택된 이래 오늘날까지 변치 않고 전해지는 사도신경을 한 구절 한 구절씩 살피면서 그 구절들이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의미를 가지며 또 오늘날의 과학과 어떤 연관을 맺을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책이었다. 목차를 연결하면 그대로 다음과 같은 ‘사도신경’ 전문이 되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그 외아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성령으로 인하여/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하늘에 올라/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성령을 믿으며/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죄의 용서와/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아멘.”


저자는 프랑스에서 살아 있는 소크라테스로 추앙받는 알베르 자카르. 세계적인 유전공학인 동시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빈민구제 운동과 휴머니즘의 실천에 몸을 던진 분이었다. 궁리출판에서는 그의 전작인 『과학의 즐거움』을 낸 바도 있었다.


가톨릭의 경전 중의 경전이라 할 사도신경에 대해 일종의 난도질을 한 이 책이 프랑스에 출간되었을 때 종교 사회계에서 큰 논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신앙을 가진 이라면 감히 하느님 말씀에 손을 대었다고 경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다음과 같은 주장―사도신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을 분석해보면서 깊은 실망감을 금할 수 없었다. 예전에나 통했을 낡은 문장으로는 오늘날의 풍요로운 개념들을 모두 담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사도신경은 새롭게 씌어져야 한다―을 읽고 프랑스의 한 여성독자가 쓴 독후감―그는 신에 대한 비논리적이고 모순된 이미지를 하나씩 걷어낸다. 가장 견고하다고 여겨졌던 교리도 한순간에 허물어진다. 그래서 독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견디기 힘든 긴장감에 휩싸여 이제 신에게 남아 있는 부분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자문하게 된다.―을 만나면 새삼 그 책의 깊이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神은?




4.


과연 神은 물음표 속에나 있는 것일까.


지구가 편평했다고 알았던 시절에는 하늘에 천당이 있고 그곳에 하느님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종교에서 말하는 하늘이 저 구름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아닌 줄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 하늘은 사람들의 가슴 속 너머 저 아득한 마음속에 있는 하늘이다. 그 오리무중의 가운데 있는 하늘이니 비와 바람과 천둥과 번개가 숨어있는 자연의 하늘보다도 실은 더 알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정말로 神은 물음표 속에나 있다는 표현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호킹 박사의 강연이 끝나고 신라호텔을 나오니 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있었다. 비는 땅에서 솟구친 게 아니다. 하늘로부터 유래한 물질이다. 다른 것은 모르겠다. 다만 하늘에 비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분명히 내 육체를 통하여 실감하고 확인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