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깝다, 이 책┃봄을 만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 걷는 행복!


봄은 우리에게 어떻게 올까. 봄을 맞이하는 각심은 누구에게나 있다. 사람들의 지문이 모두 다르듯 봄을 맞이하는 방법은 각각 다를 것이다. 봄은 천지사방에서 온다. 하늘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산에서 마구 불어닥친다. 작년 이맘때쯤 인왕산 둘레의 산책로를 걷다가 나도 몰래 고개가 구부러졌다. 잘 가꾸어논 화단에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새싹은 내 눈 바로 밑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싹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천지로 돋아나는 풀들, 그것은 새싹들의 아우성이요 함성이었다.


우리 몸에서 봄을 가장 먼저 느끼는 기관은 어디일까. 봄이라고 그게 눈일까. 물론 눈이 가장 먼저 봄을 찾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눈보다 먼저 봄을 찾아서 부릉부릉 시동을 거는 기관이 있다. 이러한 사정을 존 스타인벡은 궁리출판에서 펴낸 책, <찰리와 함께한 여행>에서 이렇게 적는다.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울려오면 여전히 온몸이 쭈뼛해지며 발이 들썩거린다. 제트기나 시동 걸린 엔진 소리, 아니 심지어는 포장도로를 울리는 징 박은 말굽소리만 들어도 옛날부터 계속된 그 소름 끼치는 듯한 충격이 온몸을 휩싼다. 입속이 깔깔해오고 눈이 멍해진다. 손바닥이 화끈거리고 속이 뒤틀리듯 가슴이 꽉 메는 것이다.”


봄은 본다고 봄일 것이다. 겨울 지나고 우리의 눈길을 단연 끄는 것이 있다. 혹한을 이겨내고 봄의 전령사처럼 오는 동백꽃도 그 중의 하나이다. <국토와 민중> <나의 국토, 나의 산하>로 유명한 박태순 선생은 프레시안을 통해서 국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선생은 우리가 제철 음식을 먹듯 우리 국토의 고갱이를 제때에 찾아가는 일에 앞장을 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의 주제는 <해남반도와 보길도의 별천지 꽃길, 하염없는 동백나무 숲속의 산책>이었다. 우리 국토의 끝인 땅끝과 그 아래 보길도는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이기도 하다. 3월 13일. 땅끝에서 배를 타고 보길도로 들어갔다. 날씨가 하수상한가. 이미 철이 지났건만 아직 꽃은 피지 않고 있고 꽃을 피우려고 마지막 몸살을 앓고 있었다. 노화도를 지나 보길도에 올라서니 윤선도가 마중하여 주었다. 그런데 윤선도 뒤로 낯선 프랑스인이 뒤따라 나왔다. 이름은 이브 파칼레. 사연이 있다.



2001년 3월 27일. 봉천동 산비탈에 자리한 궁리출판 사무실에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렸다. 쨔쨔쨘쨔쨔쨘 또각또각 찌찌찌잉. 쨔쨔쨘쨔쨔쨘 또각또각 찌찌찌잉. 쨔쨔쨘쨔쨔쨘 또각또각 찌찌찌잉. 무슨 소리일까. 봄이 오는 소리일까. 그것은 팩시밀리가 글자를 인쇄하는 소리였다. 이윽고 한참 몸살을 하던 팩시밀리 기기가 용지를 툭 떨어트렸다. 두루마리 용지는 꽃처럼 또그르르 말렸다. 그곳에는 식물학자이자 동물학자인, 걸어서 세계를 일주한, 프랑스의 산책자 이브 파칼레가 보내온 글이 적혀 있었다. 그 서문은 한국어판 <걷는 행복>에 실을 저자 서문이었다. 아무리 걷기의 달인이라 해도 그의 글에서 윤선도, 어부사시사, 동해, 울진, 영덕을 발견할 줄이야! 나의 마음은 이브 파칼레를 안내하면서 보길도를 향해서 마구마구 달리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걸어본 적은 없다. 꿈 속에서만 제외하고……. 나는 한국에 꼭 갈 것이다. 나는 한국을 내 발의 정열을 통해서, 다시 말해 온 몸으로 알고 싶다. 나의 피부로, 나의 눈으로, 나의 코로……. 나는 벌써 여정을 짰다. 나는 나의 뒤에 부산, 서울 그리고 여러 도시들을 정열시킬 것이다. 나는 시골 마을로, 동해안으로 갈 것이고, 그리고 동해의 푸른 물을 만질 것이다. 나는 암벽 위를 걸을 것이고, 울진과 영덕 근처를 걸을 것이다. 나는 가장 아름다운 수묵화가 품고 있는 소나무를 배경으로 심호흡을 할 것이다. 나는 걸으면서 한국의 시 한 수를 흥얼거릴 것이다. 예를 들면,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중 봄노래의 구절과 같은 것을 말이다.

향기로운 풀 위로 걷자. 난초와 붓꽃을 꺾자. 배야 서라, 배야 서라! (……) 배를 매라, 배를 매라! 떨어진 꽃잎들이 우리 주변에 떠다닌다. 복숭아 밭이 아주 가까이 있음이 틀림없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인간 세상의 먼지에 나는 이방인이다!

나는 약 400년 전 이 시를 쓴 극동의 한 시인과 왜 그렇게 가깝게 느끼는지를 자문한다. 나는 단어들이란 아무것도 아님을 잘 안다. 그저 간단한 번역 문제일 따름이다. 이런 교감에서 가장 내밀한 것은 바로 감각이다.

나는 걷는다. 그리고 나는 (무슨 자연적인 마술을 통해서?) 윤선도의 피부 속으로, 몸 속으로, 귀 속으로, 눈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와 소통하고, 난초의 향기를 들이마시며, 붓꽃의 꽃잎들을 만지고, 대나무와 소나무를 스친다. 나는 손으로 바위를 문지르며, 새들의 노래를 듣는다. 

벌써 밤인가? 뻐꾸기 소리가 청명하게 울린다. 

마술 같은 자연! 프랑스의 한 시골에서, 바다와 산 사이에서, 내가 한국 시인의 이 단어들을 수첩에 쓰는 순간, 뻐꾸기가 숲에서 노래한다……. 시간과 공간은 없어진 것 같다. 산책의 기적으로 나는 4세기를 거슬러 올라, 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얼굴은 모르지만 그 마음은 통할 것 같은 사람과 어깨동무하며 길을 간다. 내일은 정선으로, 한강의 발원지까지 가볼 것이다. 나는 산 속을 거닐고, 안개 속을 걸을 것이며, 벼랑을 기어오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숨어 있는 작은 오솔길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윤선도의 또다른 시 한 수를 읊을 것이다.

내 벗이 몇인가? 그들은 물, 바위, 소나무, 대나무이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동산 위로 떠오르는 달! 이 다섯 말고, 더 더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나는 이 이상으로 내가 왜 걷는지를 더 잘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찾는 시인을 만날 희망을 갖고서 손에는 수첩을 들고,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한국의 오솔길들을 밟게 될 여유이다. 나는 팽팽히 긴장할 것이다. 그 시인이 꾀꼬리, 나비, 아니면 뻐꾸기의 모습으로 숨어 있을 테니까…….

2001년 3월 27일 한국의 걷는 친구들에게, 이브 파칼레 -<걷는 행복>, 저자 서문

<걷는 행복>이 출간된 지도 10년이 지났다. 책은 매해 찍지 못했지만 봄은 해마다 발행되었다. 어느덧 나의 봄은 올해로 52쇄. 하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나의 가슴은 설레이고 나의 두 눈은 휘둥그래진다. 그리고 또 마구마구 들썩거리는 게 있으니, 그건 바로 나의 발! 오, 걷는 자의 행복이여! (글: 이굴기/궁리출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