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한국 독자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샬럿 퍼킨스 길먼입니다. 1860년에 태어나 1935년까지 살다 간 제가 2021년의 한국 독자들에게 인사를 드린다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3부작’이 모두 한국어로 소개된다니 작가로서 무한한 영광이고 기쁨입니다. 이번에 3부작의 첫권 『내가 깨어났을 때』와 마지막권 『내가 살고 싶은 나라』가 한국어로 초역 출간되었다고 들었습니다. 100년도 더 전의 작품이 호출된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실은, 제가 여러분에게 궁금한 점이 더 많답니다.
Q. 작가님은 단편 「누런 벽지」의 작가로 유명합니다. 「누런 벽지」는 오늘날에도 여성 문학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텍스트입니다. 이 작품은 어떻게 집필하게 되었나요?
A. 「누런 벽지」는 1892년에 발표한 단편입니다. 제 나이 32살이었지요. 당시 저는 남편과 별거 중이었습니다. 저는 24살에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제게 전통적인 성역할을 원했고, 딸을 출산한 후 저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당시 명망 높은 신경과 의사였던 사일러스 위어 미첼이 운영하는 요양소를 찾았는데, 그곳에서 ‘휴식 치료’를 권유받았습니다. 6~8주 동안 모든 사회적, 지적 활동을 금하는 휴식 치료는 오히려 우울증과 신경증을 악화시켰습니다. 그러한 자전적인 경험을 담아 쓴 작품이 「누런 벽지」입니다. 「누런 벽지」는 고딕 소설, 공포 소설, 페미니즘 소설 등으로 다양하게 분류되는데, 여성들이 처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이 이러한 색채를 띤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지요.
Q.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3부작’은 「누런 벽지」에서 보이는 문학적 실험과는 확실히 다른 시도를 하셨습니다.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라는 이름에 걸맞게 SF 페미니즘 소설이기도 하고, 일종의 사회비평서이기도 합니다.
A. 저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페미니즘 이론가, 사회개혁가, 연설가입니다. 또 카드 디자이너, 가정교사, 화가로도 활동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도서관을 자주 찾아 생물학, 인류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탐독했습니다. 저는 나를 둘러싼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면서 왜 이런 세상만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많이 가졌습니다. 그 후 작가가 되어 문학성 짙은 단편을 여럿 쓰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상가로서 『여성과 경제학』, 『아이들에 관하여』, 『가정』, 『남자가 만든 세계』 등 사회분석과 해결책을 담은 글도 많이 펴냈습니다.
그리고 그 두 장르를 연결하는 의미에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3부작’을 집필했습니다. 제가 1909년 49세 때 《선구자》라는 잡지를 직접 창간해서 시, 소설, 논픽션을 많이 발표했습니다.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3부작은 《선구자》에 연재한 작품으로, 바로 여러분이 궁리 에디션F 1~3권으로 만나보는 『내가 깨어났을 때(Moving the Mountain)』, 『허랜드(Herland)』, 『내가 살고 싶은 나라(With Her In Ourland)』가 그것입니다. 저를 구성하는 여러 정체성 중에서 사회학자, 사상가로서 성격을 아낌없이 쏟아낸 결과물이라, 제 소설에 사회비판·사회실험적 성격이 아주 강하지요. 이런 책, 이런 작가도 있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요? 여러분이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3부작’을 성도 나이도 출신도 다른, 다양한 독서 멤버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신다면 작가로서 더없는 기쁨일 것 같습니다.
Q. 작가님에게 모성이나 엄마의 의미는 무엇이었나요?
A. 저는 엄마로서의 역할에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이혼이 아주 드문 시기였던 때, 이혼 절차를 마무리하고 딸 캐서린을 전남편에게 보냈습니다. 자녀를 양육하고 성장시키는 일은 더없이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 역할이 가정에 있는 여성의 몫으로만 돌아가는 현실에는 깊은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섬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배우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여성들도 가정을 포함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머니 한 사람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너무도 큽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게 있어요. 제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3부작’ 마지막 편에서 엘라도어의 목소리를 빌려 전한 말이 있는데요,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건강한 아버지이고, 건강한 사회입니다.
Q. 『허랜드』에는 세 명의 미국 남성이 등장합니다. 어떤 성격의 인물들인지 조금 설명해주신다면요?
A. 『허랜드』는 세 명의 미국 젊은이들이 여자들만 사는 나라인 허랜드를 발견하면서 시작합니다. 제프라는 인물은 여성 숭배론자로 훗날 기꺼이 허랜드의 시민이 되는 인물이며, 테리는 여성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며 나쁜 행실로 허랜드에서 추방을 당합니다. 밴딕은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회학자인데, 『허랜드』 작품을 이끄는 여성 주인공 엘라도어와 남녀를 떠나 인간적 교류를 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엘라도어와 밴딕은 3부작의 완결편인 『내가 살고 싶은 나라』에서도 등장하지요.
밴딕은 제가 바라는 이상적인 상에 가까운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밴딕은 미국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넘치는 인물이었지만, 엘라도어와 미국 사회를 관찰, 경험, 토론하고 미국 사회의 민낯을 알게 되면서 조국을 사랑하지만 조국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게 되는 인물로 나옵니다. 빈부격차, 인종차별, 남녀차별, 제국주의 등 사회 문제점을 알게 된 이후의 일이지요. 엘라도어와 밴딕 모두에 제 모습의 일부가 투영돼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Q. 에디션F 시리즈의 첫 작가는 샬럿 퍼킨스 길먼 작가입니다. 에디션F 시리즈는 여성 작가들의 문학을 소개하는 궁리출판의 문학선집입니다. 길먼 작가에 이어, 이디스 워튼, 캐서린 맨스필드, 히구치 이치요의 작품을 소개했고, 앞으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케이트 쇼팽, 다무라 도시코 등의 작품도 소개할 예정인데요. 에디션F에 응원의 말씀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A. 그동안 출간한 에디션F 시리즈의 표지들을 쭉 나열해서 보았습니다. 다양한 색채의 표지 바탕에 여성 작가들의 실루엣 사진이 전면을 장식하고 있더군요. 다소 엄격하고 진지한 표정의 제 옆모습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여성 작가들이 에디션F 시리즈를 만들어가고 있더군요. 시공간을 넘어 자기 목소리를 가진 여성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어 감개무량하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러 시대에 걸쳐 세상을 바꾸려 들거나 저항하는 여자들은 기피 대상이었고, 여성들이 자기 이름을 드러내놓고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성 작가들의 작품은 모두 다릅니다. 제가 사랑한 『허랜드』의 자매들처럼요. 그들은 뚜렷한 개성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아름답고 강했습니다. 모두가 달랐기 때문에 더 아름다웠지요. 에디션F의 색깔이 앞으로 얼마나 다채롭게 채워질지 기대됩니다. 사실 저는 100년 전의 사람이라 제 작품엔 지금 시대의 눈으로 보면 맞지 않고 낡은 이야기도 있을 것입니다. 21세기 한국 독자들의 날카로운 감상평을 기다리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A.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3부작’을 시작하며 첫권 『내가 깨어났을 때』의 서문에서 저는 두 가지 세상을 이야기했습니다. 희망을 갈망하는 세상과 희망을 잃은 세상. 저는 3부작의 마지막에서 어떤 세상을 그렸을까요? 『내가 살고 싶은 나라』는 사실 열린 결론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회변화의 가능성은 결국 사람들의 생각, 행동의 변화에서 비롯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3부작을 한국어로 옮긴 임현정 번역가의 후기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대기권을 뚫은 수도권 아파트 값, 줄지 않는 소득양극화, 전쟁도 불사할 듯한 젠더 갈등과 꼰대 논쟁을 부르는 세대 갈등, OECD 국가 중 꼴찌인 청소년 행복지수, 출산율 세계 꼴찌 등, 한국 사회가 처한 문제점을 헤아리자니 두통이 몰려온다. 물론 우리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은 이들이 할 일이 많다. 하지만 소시민이라고 손 놓고 있으랴.” 임현정 번역가의 한숨과 의지에 공감합니다.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3부작’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좀 더 살 만한 ‘미래’였습니다. 우리가 소설 속 그들처럼 깨닫고 각성한다면, 진심으로 깨닫고 힘을 쏟는다면, 30년 후 사람의 인생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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