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독자들에게 자기소개와 인사를 해주세요.
A∥ 안녕하세요,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윤소, 제이입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삶을 통해 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는 여성단체입니다. 1987년 창립되었고,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2017년 한국여성민우회는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활동, 미디어 속 혐오표현을 몸추기 위한 활동, 성폭력 피해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함께 실천하는 활동 등을 펼치고 있습니다. 저희는 여성건강팀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올해 낙태죄 폐지를 위한 활동, 몸다양성 실현을 위한 ‘월간액션 머리어깨무릎발’ 등을 하고 있습니다.
Q∥ 이번에 펴낸 『온갖 무례와 오지랖을 뒤로하고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해주신다면요?
A∥ 2015년부터 지금까지 소위 ‘페미니즘 열풍’이 불고 있지요. 그래서 페미니즘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책을 한 권 읽고, 강의를 한 번 듣는다고 페미니즘을 다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도대체 페미니즘이 무엇이고,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답답할 때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내가 페미니스트가 맞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됩니다.
그럴 때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답답함과 고민이 조금씩 풀리곤 합니다. 이 책에 그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몸에 대한 이야기, 직장생활 이야기, 결혼 이야기 등 페미니스트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거나 이제 막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시작한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이 책을 어떻게 준비하게 되셨나요? 책을 만들며 힘든 점은 없었나요? 특히,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A∥ 2007년에 한국여성민우회는 10년 동안 민우회의 회원소식지 《함께가는 여성》에 쌓인 페미니스트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모아 『여자들의 유쾌한 질주』를 펴냈습니다. 다시 10년이 지났고, 그사이에 또 좋은 이야기들이 많이 쌓여왔어요. 올해 민우회는 30주년을 맞이하여 더 많은 독자들과 이 이야기들이 만나는 계기를 만들고자 『온갖 무례와 오지랖을 뒤로하고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를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쓰인, 회원과 활동가 등 페미니스트의 시선과 경험이 담긴 글로 구성되었습니다.
10년 간 쌓인 글의 양은 정말 어마어마했습니다. 일일이 다시 읽고, 리스트를 만들고, 좋은 글이 너무 많은데 그중 책에 실릴 글을 선정해야 하고… 이런 과정들이 힘이 들었지만, 공감이 되고 감동적인 글이 많아서, 또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사건(?)과 고민이 담긴, 지금 읽어도 그 의미가 크게 울리는 글을 골랐습니다.
Q∥ 책 제목을 직접 지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목이 뜻하는 바가 있다면요? 어떤 의미로 생각해보면 좋을까요?
A∥ 겨드랑이털을 제모하지 않았습니다. “난 겨털 있는 여자 싫더라.”
성별임금격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자는 능력 없고 일을 적게 해서 돈 덜 받는 거잖아.”
하루에도 몇 번씩 무례한 말을 들을 때가 많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애는 키워봐야 어른이 되는 거다.”
화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너 쌩얼 아파보인다? 그리고 요즘 화장은 예의야.”
깊은 고민 없이 막말을 던지는 ‘오지라퍼’ 때문에 분노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길을 막아서는 무례와 오지랖에도, 그것을 ‘뒤로하고’ 우리는 계속 페미니스트로 살아갈 것이라는 다짐, 선언, 선전포고(?)를 담아서 책 제목을 지었습니다.
Q∥ 본문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면요?
A∥ 책에 실린 모든 이야기가 다 귀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생각나는 것들을 소개해볼게요. <얼굴 없는 (성)폭력>이라는 글은 밤길에 상습적으로 성기를 노출하는 남자를 용감하게 잡았지만 '수치심'을 느꼈냐는 경찰의 질문과 그 남자가 '풍기문란'을 이유로 처벌된다는 것을 접하며 떠오른 물음표들을 놓지 않고 세세히 풀어내고 있는데요. 살면서 뭔가 ‘이건 아닌 거 같다’, ‘뭔가 딱 맞진 않는 거 같다’고 느낄 때 그걸 그냥 넘기지 않고 ‘왜 그럴까’를 더 파고들어 고민하고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어 참 좋다고 느꼈어요. 또 선배의 장례식을 치르며 장의차와 관에도 성별이 있다는 걸 느꼈다는 <하늘로 가는 길에도 남녀가 따로 있더라>, 직장동료 20명에게 커밍아웃한 경험을 담담하게 기록한 <회사에서 커밍아웃하기>도 생각나네요. 대대적으로 뒤엎어버리는(?) 변화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조금씩 달라질 수 있는 것들을 이뤄나가는 사람들의 경험이 오히려 더 큰 용기를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Q∥ 몇 년 사이 페미니즘에 관한 책들이 부쩍 출간되고 있습니다. 이 책만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A∥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엮은 페미니즘 서적이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한국 여성의 다양한 고군분투가 생생히 잘 담겼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신나고 멋지지는 않지만, 너무 지치거나 힘 빠지지는 않는 ‘꽤 할 만한 싸움’의 기록들입니다. 책을 만들면서 “헐! 내가 쓴 줄!”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공감할 만한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으니 꼭 읽어주시고 주변에도 권해주시면 좋겠어요!
Q∥ 페미니즘은 무엇인가요? 어떤 사람들을 페미니스트라고 하나요?
A∥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를 정의내릴 수 있을까요? 한 가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고 토론하는 것, 페미니스트로 실천하고 싸워나가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페미니즘 이론서를 읽는 것보다 실생활에서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것이 백 배 정도는 어렵다고들 합니다. 페미니스트로 잘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요? 꿀팁 내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A∥ 각자의 꿀팁이 있겠지만, 하나만 이야기한다면 저는 “페미니스트 친구 사귀기”를 꼽고 싶습니다. 혼자서 고민하고 싸우다 보면 금방 지칠 수 있거든요. 페미니스트 친구들과 토론도 하고, 고충을 나누고, 집회도 나가는 경험이 쌓이면 어느 순간 페미니스트로서의 근육이 자라 있을 겁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친구를 사귀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많은 여성단체와 페미니스트 그룹의 활동에 참여해보는 것입니다. 거기에 가시면 사이다 같은 친구들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Q∥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한 한국여성민우회는 어떤 단체인가요?
A∥ 어려운 질문이네요. 30년의 역사와 앞으로의 비전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여기에 다 풀어놓을 수 없겠네요. 민우회 회원들이 민우회 회원이 되고 나서 달라진 점을 적어준 적이 있는데요. 그 이야기들이 민우회를 잘 소개해주는 것 같아서, 그것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숨 쉴 공간이 생겼어요. 내가 느끼는 일상적 성차별, 불편함, 속상함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여성주의 이슈나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더 깊은 생각과 이해를 하게 되고, 이슈에서 그치지 않고 일상하게 고민하게 된다는 점이 달라졌어요.”
“나의 변화와 선택에 있어서 훨씬 더 주체적으로 나답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요.”
Q∥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A∥ 저희가 만든 책을 저희가 추천하는 것이 좀 쑥스러운데요, 『온갖 무례와 오지랖을 뒤로하고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와 『거리에 선 페미니즘』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거리에 선 페미니즘』은 2016년 강남역 사건 직후 열렸던 <여성 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 ‘나는 ○○에 있었습니다’>의 현장 녹취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입니다. 두 권의 책 모두 여성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겼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고,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책 『온갖 무례와 오지랖을 뒤로하고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를 꼭 읽길 바라는 독자가 있나요? 끝인사 겸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이 책은 처음 페미니즘을 접했을 때, 페미니스트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될 때,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것이 지칠 때,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며 함께 고민을 나누고, 경험을 공유하고, 싸워나갈 힘을 키우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너무 확신했네요.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것이 쉬운 길은 아닙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되돌아갈 길은 없습니다. 우리 함께 만나고, 이야기하고, 싸워나갑시다! 앞으로도 용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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