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저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마음. 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혹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대항하는 것. 제3회 정세청세 때 나눴던 이야기처럼 자신의 신념에 따라 끝까지 실천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도 저항하기의 방법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정세청세에선 ‘저항하기’를 주제로 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저항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과 함께, 직접 겪었던 경험담을 나누었습니다. 또 어렵거나 힘든 일 앞에서 무력한 개인으로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도 가져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진정한 저항, 즉 저항의 의미에 대해서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저항하며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가치, ‘용기’를 모두가 재충전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지식e <지독한 싸움꾼 3부>, <칩코의 여인들>, <웩, 우웩>, <파블로 카잘스의 콘서트>, <Summer of love>는 모두 저항을 다룬 영상이지만 조금씩 가지고 있는 의미가 달랐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할 내용이 더욱 많았던 소통의 장, 지금부터 살펴볼까요?
전주
<칩코의 여인들>에서 소외계층이었지만 숲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저항이라는 것이 아주 크고 대단한 일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는 것이며, 우리 주변에도 충분히 찾을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신념을 지키고 저항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용기는 외부로부터 오는 시련에 맞서는 용기라고도 할 수도 있지만 자신을 믿고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구
저항은 마이크입니다. 우리가 정의를 위한 일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어떤 일을 실천할 때 부딪히게 되는 장애물, 즉 옳지 못한 것에 용기를 가지고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저항을 하기 위해서는 내 자신부터 돌아봐야합니다. 내가 추구하려고 하는 가치와 신념이 올바른지, 내 저항이 옳은 저항인지에 대한 반성을 해야 하며 이기적인 것, 나를 위한 것만이 아닌지에 대해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저항이야말로 진정한 저항이라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아직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우리의 저항이 반항으로만 치부되고 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순천
저항이 단순한 반항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선 뚜렷한 가치관과 신념, 용기와 자신감,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줄 아는 끈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기 위해선 언제나 의문을 제기하는 태도 역시 중요하지만, 독단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 세상에 대한 귀를 쫑긋 세워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서울
내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것에서 오는 ‘절박함’이야말로 용기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 사람들로 하여금 저항을 하도록 만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절박함은 우리가 좀더 절실하게 깨어 있을 때만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부산
의심을 한다는 것은 항상 깨어 있는 마음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저항한다는 것은 온전한 실천을 동반할 수 있어야만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언제나 불평만 하고, 저항하고 싶다는 욕구만 가득 차 있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아직 학생이기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가능성의 입구부터 차단하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힘든 과정을 건너뛰어 저항으로 이뤄낸 결과만을 취하려는 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되어선 안됩니다.
우리가 정세청세라는 공간에서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내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저항일 것입니다. 아니, 학원 보충수업을 빠지고 참석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저항을 위한 멋진 선택이며,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목소리를 나누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저항이라는 것이 거창하고 거대한 것이라는 편견, 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의 범위는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칩코의 여인들> 영상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무서움과 두려움에 맞설 용기는 충분히 지닐 수 있음을 확인하였으며, <파블로 카잘스의 콘서트> 영상에서 파블로 카잘스는 직접적인 충돌과, 무력 없이도 악기 연주라는, 예술로 끝까지 맞서 싸우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보다 다양한 저항의 가능성과 방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토피아와 같은 이상적 삶을 위해 저항했던 히피족. 실패로 끝났지만 그들의 인간답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시도와 노력 그리고 열정은 사실로 남아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저항은 시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빛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그 빛을 꺼뜨리지 않고 오랫동안 빛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겠지요.
그 과정을 걸어 나갈 때, 바보 같은 짓이라고 비웃으며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쓸데없는 소모전이라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냉담한 현실 속에서 힘을 잃어가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땐 정말 슬플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나가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하는 이유와 입시와 공부 때문에 지쳐있는 우리들이 소통을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는,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원하고, 자유롭고,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이고, 타인의 고통에 가슴 아파하고 돕고 싶어 하는 따뜻한 존재들입니다. 그러기에 항상 깨어있어야 하고, 과감하게 부딪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항은 대표하는 한 사람만의 외로운 싸움이거나 용기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침묵하지 않고, 방관하지 않으며 각자의 작은 힘을 모아 진정한 힘을 키워나가는 시작이 바로 오늘이었으면 합니다.
정리 : 고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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