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니스트이자 KBS1 FM <실황음악> 진행자인 정준호 인터뷰


Q음악칼럼니스트이자 KBS1 FM <실황음악> 진행자로, 또 강연 활동 등으로 바쁘게 지내실 듯합니다. 자기소개와 함께 근황을 들려주세요.

A저는 서울에서 태어난 음악칼럼니스트로, 현재 KBS클래식FM(수도권 93.1MHz) 채널에서 <FM실황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입니다.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해서 음악 관련한 일을 하는 저에게 어찌된 일인가 궁금해 하는 분이 많은데, 그런 식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전공한 것을 일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오히려 대학 시절 자연히 익힌 문학적 소양과 글쓰기 연습이 지금 일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그 이전에 독문과를 간 것이 음악에 대한 동경 때문임을 누누이 강조하곤 합니다.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 지 벌써 7년이 지났습니다. 눈 깜짝 할 사이라 그런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그 밖에 세종문화회관과 무지크바움 감상실에서 정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고, 최근에는 베를린과 뮌헨, 취리히를 다녀오느라 두어 주 칼럼을 걸렀습니다. 미리 챙기지 못해 죄송합니다. 여행에서 보고 들은 것들은 앞으로 글로 전해드리겠습니다.




Q궁리닷컴에서 일주일에 한 차례씩 <명곡 명반 일기>을 연재 중이시죠. 칼럼 집필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인연이 있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칼럼 소개를 간단히 해주신다면요?

A심리학자인 정재곤 선생과 알고 지내던 터에 선생이 화요 칼럼을 쓴다는 것을 알았고, 연재라는 좋은 소통 방법을 찾던 차에 “저도 지면을 주십사”고 부탁했습니다. 다행 중 불행히 궁리의 소중한 서버 공간에 졸고를 담을 여유가 있어 민폐를 끼치고 있습니다. 책으로는 만날 수 없는 동영상과 음악을 홈페이지에서 구현할 수 있어 더욱 소중합니다.

일기라는 형식에서 짐작하듯이 처음 의도는 쉽게 읽히는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무턱대고 말랑말랑한 글은 아니고요, 우리의 일상이 클래식 음악과 얼마나 가까운지 살펴보려는 뜻이었는데 쓰다 보니 주관적인 관심으로 흐른 글도 있네요. 하지만 크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쓰려고 합니다. 그게 일기의 매력일 테니까요.

저는 평소 명연주나 명음반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클래식 애호가는 유독 새로운 ‘음악’보다는 새로운 ‘음반’에 눈이 밝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한정된 똑같은 음악을 가지고 수많은 음악가들의 녹음을 모은다는 것입니다. 감지할 수 있는 차이가 얼마나 되겠으며 너무 소비지향적인 방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그보다는 늘 어떤 소리가 어떤 공간에서 처음으로 울렸을까, 어떤 음악이 어떤 시대를 반영하고 있을까 하는 데 더 관심이 큽니다. 다행히 음악사에는 아직까지 제가 들어보지도 못했음은 물론이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곡들이 무진장 많습니다. 또 소수의 호기심 많은 연구자들과 음악가들이 그 지평을 한껏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 중에도 평소 잘 모르던 로시니와 차이콥스키,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에 대해 살펴볼 틈이 있어 즐거웠습니다.




Q그동안 푸치니, 베르디, 바그너, 연극과 음악의 관계 등의 주제로 칼럼을 풀어내셨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주제들을 만나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데요. 각각의 주제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다면요?

A말씀드린 대로 일기라는 형식을 빌다보니 특정 주제 없이 최근 쓴 글들을 정리해 링크와 함께 보내드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꼭 두서없이 나열된 것만은 아닙니다. 제가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음악과 다른 예술과의 교류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런 궁금증은 결국 “우리 시대에 새로운 예술 창작이 가능한가”라는 문제에 답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음악칼럼니스트는 글을 쓰는 일이지만, 최근에 저의 일은 그보다는 오히려 ‘강연자’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청중 앞에서 음악과 연극, 영화와 미술을 엮어 보여주는 일은 마치 배우가 되어 무대 위에 서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평면적이었던 작업이 요즘에는 여러 가지 시청각 자료의 도움을 받아 매우 입체적으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DVD와 같은 2차 자료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프레지’라는 플래시 기반의 툴이 생겨 매우 혁신적인 프리젠테이션이 가능합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 그림을 클릭하시면, 해당 동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1670년에 베르사유 궁정에서 공연된 몰리에르와 륄리의 작품이 20세기 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후고 폰 호프만스탈에게 미친 영향


앞으로는 좀 주제 의식도 가지려고 합니다. 역사 속의 음악, 음악 속의 역사에 대해 상상해 보는 것이라는 정도로만 힌트를 드리죠.




Q음악 또한 ‘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이 성립될 것 같은데, 클래식 음악은 가까이 하기엔 조금은 먼 어려운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클래식 음악과 어떻게 가까워지셨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이 음악이 가치를 지니게 된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 궁금합니다.

A제 첫 책 『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에 소개된 글은 유감스럽게도 그 뒤로 쓴 어떤 내용보다 독자들에게 큰 인상을 남긴 듯합니다. 질문에 답이 될 듯해서 다시 옮깁니다.


“얼마 전에 뵌 작곡계의 원로 한 분이 들려주신 말씀이다. 옛날 명동에 ‘아폴로’라는 음악 감상실이 있었고, 당시 작곡과를 다니던 그분은 그곳 디제이였다고 한다. 당시 감상실 문을 열기가 무섭게 와서 슈베르트의 곡을 신청하는 아가씨 L이 있었고, 그녀를 멀리서 애타게 바라보는 동료 디제이 C가 있었다. L은 슈베르트의 <빈터라이제>나 피아노 트리오를 듣고 눈물을 흘렸고, C는 그녀가 오면 갑자기 부산하게 판을 뒤지곤 했다고 한다. L과 C는 바로 우리 부모님이다.

사랑하는 두 분 덕에 나는 교양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물려받고 여태껏 살아온 것 같다. 그러나 이 얼마나 위대한 유산인가! 내가 이 유산을 탕진하지 않고 지금껏 살아올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용기를 주고 격려해주신 두 분께 이 책을 바쳐 마땅하지 않은가! (중략)

해가 얼마나 더 가야 교양인이 될 수 있을까? 다만 이 음악들이 그것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잔잔하되 늘어지지 않고, 에로틱하되 퇴폐적이지 않으며, 에너지가 넘치되 낭비 없는, 아이러니가 있으면서 냉소적이지 않고, 아름다움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노래하면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이 예술이 나를 가끔씩 사심 없는 순간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Q 관련하여, 클래식 음악과 친해지고 싶지만 그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인 분들이 있을 듯합니다. 일상생활에서 클래식을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나 팁이 있을까요? 클래식 입문자 분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A 이 또한 솔직히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널려 있고, 굳이 도움말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렇지요? 저는 남들이 애써 클래식 음악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꼭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얼마 전 TV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남이 써준 대본을 읽게 되었는데 황경신 작가의 다음과 같은 글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누구도 그 형체를 잡을 수 없고, 누구도 그 순간을 머무르게 할 수는 없지만, 음악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의 음악을 즐기면 그것으로 가장 행복할 것입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을 필요는 없지요. 클래식 음악계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의 저변이 넓어지기를 바라고 대중화되어야 한다”는 말을 무책임하게 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미 많은 클래식 음악이 맥락 없이 대중화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정말 뭔가가 바뀌어야 한다면 대중이 클래식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 좋은 것은 소수만이 그 진가를 안다”는 것이 제가 즐겨 쓰는 말입니다. 그 소수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왕도는 없습니다. 꾸준히 듣다보면 자기 길이 생깁니다. 방법은 무수합니다. 다만 여유가 없을 뿐이겠지요.

Q 음악을 소재로 한 책은 쓰기도 만들기도 참 까다로운 것 같습니다. 음악이 주인공인데, 그 음악을 종이책에 담을 수가 없으니까요. 궁리닷컴에 연재하는 선생님 칼럼에서는 글과 음악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참 다행인 것 같습니다. 인터넷 환경의 장점일 텐데요, 아마도 가까운 시일에는 음악책도 전자책으로 다양한 실험이 가능해질 것 같습니다. 글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클릭하면 클래식 듣기도, 연주 실황을 보는 것도 가능한 책 말입니다. 음악책을 여러 권 펴내오셨는데, 음악책을 쓰면서 특별히 주안점을 두는 곳이 있으신가요, 어려운 점은요? 그리고 역사적으로 매체가 바뀌면서 클래식이나 음악이 수용자들에게 더 널리 퍼진 사례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모두가 바라는 일을 똑같이 하려고 하면 얻는 바가 적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얘기했듯이 클래식 음악이라는 것이 즐기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고 접근이 쉽지도 않습니다. “말(馬)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을 수는 없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들으라고 유인하는 글을 쓰는 것은 이제 포화상태이고 한계가 있는 듯합니다. “내 글을 읽고 사람들이 음악이 듣고 싶어 했으면” 하는 바람은 철지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대로 음악이 주인공인 되어 스스로의 내면을 통찰한다면 읽는 사람이 굳이 음악을 알지 못해도 그 본질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음악을 아는 사람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반응을 보일 터이고요. 결국 문제는 문체입니다. 로맹 롤랑과 토마스 만이 바로 그런 글을 쓴 작가입니다.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늘 구상하는 중입니다. 세상에 노벨상 수상 작가들이라니! 매체의 변화가 음악 수용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일 것입니다. 19세기까지 어느 위대한 작곡가들도 자기 작품을 두 번 이상 들을 기회가 흔치 않았습니다. 대개가 일회 연주를 위해 작곡되었기 때문입니다. 오페라는 제작비가 많이 드는 공연이라 수차례 상연되었지만, 그 또한 전해에 들은 곡이 다음 해에 연주되지는 않았습니다. 니체가 자신의 책에서 비제의 <카르멘>이나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를 몇 번째 보았다라고 말하는 대목은 뭉클하기까지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오디오 기기에 음반을 걸어놓고 반복해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20세기 ‘녹음’ 이후에 닥친 21세기 매체의 변화는 ‘보는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리로만 듣던 것을 이제는 연주회장에 가지 않고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나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공연을 전 세계 영화관에서 실시간으로 상연하는 시대입니다. 다음 차례에 매체가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이 매우 융복합적이고 그런 변화에 적응하는 예술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점만 짐작할 뿐입니다.

Q 평소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시나요?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을 꼽는다면요? A 역시 토마스 만입니다. 저에게 가장 압도적인 영향을 미친 작가입니다. 『부덴부르크 일가』부터 『베네치아에서 죽음』, 『트리스탄』, 『파우스트 박사』, 『요셉과 그의 형제들』, 『선택된 인간』까지 독일적인 것(특히 음악)에 대한 송곳 같은 이해를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니체의 난해한 텍스트에 대한 문학적인 주석이라고 할까요. 토마스 만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완전히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이며 타협 없는 사람으로 찍히겠지요. 보완이 필요할 것입니다. 첫 사랑은 셰익스피어였고, 프랑스에서는 빅토르 위고가, 러시아에서는 도스토옙스키가 가장 위대한 것 같습니다. 늘 미루고 미뤘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는 중인데, 프로코피예프가 이 소설을 가지고 쓴 오페라가 그에 비할 만한지 가늠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별로 보완이 되지 않는 것 같군요. (웃음) 문학 이외의 교양서는 점차 읽지 않습니다. 2차 서적을 여러 권 읽을 시간에 정전(正典)을 하나 읽는 것이 낫다는 생각입니다. 아직 맛보지 못한 작가로는 허먼 멜빌과 장 파울을 읽고 싶습니다. 특히 독일낭만주의의 핵심 작가인 장 파울은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어 특히 번역을 간절히 만나고 싶습니다. 제가 많이 듣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그런 책을 언제 다 읽었느냐는 것입니다. 질문 받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제 독서량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덧붙이자면 무라카미 하루키나 알랭 드 보통 같이 널리 읽히는 작가의 책에 무관심하면 어렵지 않습니다. 그보다 책 읽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끼는 제일 큰 이유는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앞선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저는 영화를 오페라의 연장선상에 있는 예술로 이해합니다. 장르 구분 없이 즐기지만 전 ‘예술 영화’보다는 ‘재미있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누가 그러더군요. “네가 좋다고 하는 많은 영화는 죄다 예술 영화야.” 과연 그럴까요? 지금 바로 생각나는 세 편만 골라볼게요. <사운드 오브 뮤직>, <시네마 천국>, <대부>. 저는 모두 오락영화라고 생각합니다.

Q 끝으로, 궁리닷컴의 독자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상업적인 잣대로 장르의 구분을 지어놨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음악은 인간의 가장 가까운 벗이었습니다. 위로하고, 유혹하고, 가장하고, 스스로 만족합니다. 제 짧은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세계 문화가 여러 가지 재료를 버무려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냈는데 그 정점은 바흐에서 베토벤 사이였다고 믿습니다. 그 뒤로는 다시 도달하지 못한 경지였습니다. 어떻게 그때 그곳에서 그런 수준이 가능했는지 그 파급은 어떠했는지 과연 다시 이르지 못할 것인지가 제 관심사입니다. 함께 ‘궁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터뷰가 칼럼 쓰기보다 더 어렵네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