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학교, 회사 등과 같은 일상적인 곳에서부터 정치, 경제 등의 거대한 사회 구조까지 삶에서 수없이 많은 불의와 거짓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런데 일상 속의 불의와 거짓은 대체로 우리 눈에 잘 보이는 반면, 그 일상을 지배하는 거대한 사회 구조 속의 불의와 거짓은 익숙할뿐더러, 그 범위나 영향력이 너무나도 커서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때문에 불의와 거짓 그 자체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불의와 거짓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익숙한 삶의 한 단면일 뿐이라고 단정 짓는 우리의 시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익숙함 속에서 지나치는 사회구조의 문제점처럼 인식하기에는 너무나도 크게 다가오는 거짓과 불의일수록 눈에 잘 띄는 거짓과 불의보다 더 큰 악영향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그러나 훨씬 위험한 불의와 거짓을 보는 눈을 기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익숙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을 '의심하는 태도'를 지님으로써 거짓과 위선을 들추어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불의와 거짓에 대한 우리의 자세도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불의와 거짓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그것이 불의와 거짓이 아니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자기합리화는 불의와 거짓을 끊임없이 재생산할 뿐입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정세청세'라는 이름하에 전국 6개의 도시에서 같은 시간에 모여 같은 영상을 보고, 같은 주제로 소통하는 것은 우리 주변의 불의와 거짓과 이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기합리적인 자세에 대해 의심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이번 제2회 정세청세의 주제는 '의심하기'입니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사실인 것으로 인식하지만, 진실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 살펴보려 합니다. 주체적으로, 시대를 꿈꾸는 올곧은 청소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가, 세계가, 덮어버린 베일에 대해 단호히 의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의심과 서로 소통함으로써 스스로의 생각을 지닐 수 있게 됩니다. 지난 1회에서는 어떠한 가치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면, 이번 2회에서는 우리 주변과 우리 자신에 대해 '의심'해봄으로써 보다 옳은 선택을 하는 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영상 <2704>
의심한다는 것은 우선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 너머에 대해 상상하는 것,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의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18세기, 흑인 노예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설탕이라는 것을 안 백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거기에 의심을 갖고 거기에 저항하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설탕 1톤을 생산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기를 강요당하는 흑인의 수가, 그리고 그 흑인들을 2704번이나 노예선에 실어 나르는 일은 조금이라도 줄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소비하는 일상적인 물품들을 위해 누군가는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구조가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존재합니다. 이것이 단지, "아, 흑인들이 불쌍해. 제국주의자들은 미친거야. 영국인들은 나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존재하는 경제구조의 모순에 대해 의심해볼 줄 아는 태도로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축구공 경제학>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구입하고 소비하는 축구공 하나를 만들기 위해 파키스탄의 어린이들이 하루 종일 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커피에 관해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에티오피아의 농부들의 손에는 커피 한잔 당 10원이 떨어집니다. 커피에서 나오는 이윤의 99퍼센트는 거대 커피회사, 중간거래상, 소매업자들이 다 가져가고 오직 1퍼센트만이 커피를 재배하는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첫 번째 영상을 보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사물이 생산되는 과정, 이것이 지금 내 손에 있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해보았는가? 거기에 부당한 과정이 존재하지는 않는지 의심해볼 수 있지않을까?
"초콜릿, 축구공, 커피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많은 제품들이 제 3세계 어린이들의 노동력의 착취를 통해서 만들어진다고 들었어요. 흑인노예가 존재하던 이 영상의 시대상황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오늘날에도 이러한 부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들은 우리 자신의 편익을 위해 외면하는 경우가 많죠. 다르게 말하자면 '나는 편하니까'라는 의식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노예제도와 노동착취를 합리화해서 의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질문지의 논지와 조금 다르긴 한데, 집단 따돌림 문제도 비슷한 맥락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왕따를 당하는 친구가 있는데, 도와주었다가 괜히 나까지 당할 것 같아서 외면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무언가 불이익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에 옳지 못한 것에 대한 의심하기가 잘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정리 하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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