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 도쿠지, 일본 최고재판소를 말하다>를 우리말로 옮긴 논픽션 작가 이범준 인터뷰


Q∥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를 펴낸 지 벌써 7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을 들려주신다면요?

A∥ 그 사이에 불혹을 넘겼습니다. 『헌법재판소』에 1980년대 얘기가 많은데 이를 제가 체험한 것이라고 착각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이유는 저자 소개에 나이와 경력을 정확하게 적지 않아서이기도 합니다. 저 나름으로는 오로지 내용으로 승부를 내고 싶어서 그랬는데, 돌이켜보면 독자에게 무례한 면이 있었습니다. 『헌법재판소』를 냈을 때 서른다섯이었습니다. 이후에 어쩌다 보니 신문사에 (다시) 들어갔고 현재 경향신문 법조팀장이기도 합니다. 



Q∥ 이번에 『이즈미 도쿠지, 일본 최고재판소를 말하다』를 우리말로 옮겼는데요, 어떤 계기로 이 책을 알게 되고 번역출간까지 하게 되었는지요? 이즈미 도쿠지라는 분과의 인연도 궁금합니다. 

A 『헌법재판소』 일본어판이 2012년에 나왔습니다. 추천사를 이즈미 도쿠지 전 일본 최고재판소 재판관이 써주었습니다. 일본어판을 번역한 자이니치코리안변호사협회가 부탁했습니다. 자이니치는 식민지 이후에도 일본에 남겨져 살아온 조선인과 후손을 가리킵니다. 자이니치가 조선·한국적을 유지한 채로 변호사가 되는 길을 젊은 시절의 이즈미 판사가 열어주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지난해 저는 『일본제국 vs. 자이니치』를 발표했는데 이즈미 전 재판관이 주요 인물로 등장합니다. 이 책을 취재하려 일본에 머무르던 2013년 이즈미 재판관의 책이 나왔고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Q ∥ 한국 사법은 일본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데, 최고재판소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역할을 합니까. 일본 최고재판소는 우리나라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합친 것에 해당한다면서요? A 1889년에 시행된 일본제국헌법은 이토 히로부미가 주도해 만든 것입니다. 1882년 정부의 명을 받아 유럽에 건너간 이토가 군주권이 강력한 독일·프로이센 헌법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내각제를 정비해 초대 총리가 됩니다. 내각은 전쟁에 모든 것을 희생시키고 사법도 영향을 받습니다. 이 시절 사법제도와 사법독립을 위한 일본 재판관들의 투쟁을 이 책에서 섬세하게 복원했습니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하고 정령군인 연합국최고사령관총사령부는 새로운 헌법을 만듭니다. 새 헌법인 일본국헌법에 따라 만들어지는 곳이 일본 최고재판소입니다. 1947년 시행된 일본국헌법이 바뀌지 않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민·형사재판은 물론 헌법재판까지 최고재판소에서 모두 담당합니다.  이런 방식을 채택한 곳은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미국 연방대법원의 경우 민·형사사건을 거의 하지 않고 헌법문제에 집중합니다. 민ᆞ형사 사건은 주 대법원이 대부분이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 최고재판소는 민·형사재판에 치여 헌법문제를 손대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1988년 시행 헌법에서 민·형사재판(의 최종심)을 대법원에서, 헌법재판은 헌법재판소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1951년 헌재를 세운 독일이 대표적입니다. 헌재 설립 이후 한국의 헌법재판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 책에서 한국의 헌법재판이 많이 언급됩니다.  Q ∥ 일본국헌법은 2016년 11월 공포 70주년, 2017년 5월 시행 70주년을 맞습니다. 1945년 일본의 패전을 계기로 만들어져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본국헌법 70주년을 맞아 헌법 개정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A 아베 신조 총리는 1945년 패전 이후 미국이 만든 질서를 바꾸려 합니다. 아베 총리는 A급전범 용의자이던 기시 노부스케 총리의 외손자인데 그의 성향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최근 박근혜 정부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히로시마에 부른 것도 일본국헌법 70주년에 개헌하려는 정지작업이란 분석이 많습니다. 평화조항으로 불리는 일본국헌법 제9조를 개정하려고 합니다. 다음과 같은 조항입니다. 제9조 ①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하게 희구하며,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② 제1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그밖의 전력은 보유하지 아니한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아니한다. Q ∥ 이즈미 도쿠지 선생은 세상에 소수의견을 던지는 것은 토론을 활발하게 하고 수준을 향상시켜, 결국 그 토론이 미래를 연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신념대로 그의 소수의견이 시간이 흘러 다수의견으로 발전한 경우도 꽤 있었고요. 그에 대한 일본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A 일본 아사히신문 법조기자가 이 책 한국어판 추천사에 적은 평가는 이렇습니다. “최고재판소에 재직한 약 6년 동안 36건의 독자의견을 썼다. 역대 최고재판소 재판관 가운데 손꼽히는 숫자다. 독자의견을 써온 최고재판소 재판관은 변호사나 학자 출신인 경우가 많았다. 법관 출신 재판관은 다수의견에 가담하는 경향이 강했고 선례를 지키는 내용이었다. 재판관으로서 엘리트 코스를 거치고 사법관료 최고위직에 올랐던 이즈미 도쿠지의 경력을 아는 사람들에게 그의 소수의견은 의외였다.” 자이니치 인권 변호사인 배훈 일본 변호사의 이 책 추천사 가운데 나오는 설명입니다. “도쿄지방재판소 판사, 최고재판소 조사관, 최고재판소 사무총장, 도쿄고등재판소장관을 거쳐2002년 최고재판소 재판관에 취임했다. 재판관으로서 더할 수 없이 훌륭한 경력을 가진 그가 왜 최고재판소장관이 되지 못했을까. 최고재판소 재판관으로 있으면서 썼던 많은 반대의견이 실마리다. 그의 반대의견의 배경에는 다수자와 강자는 소수자와 약자를 차별하고 억압하기 쉽다는 인간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 그리고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재판관으로서의 확고한 직업윤리가 있다.”  Q ∥ 기자라는 직함 외에도 ‘논픽션 작가’라는 타이틀이 눈에 들어옵니다. 주로 관심이 가는 분야는 어떤 곳이고, 앞으로 어떤 글들을 써나갈 계획인지 들려주신다면요? A 법조 논픽션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다음에 예정한 작품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30년』입니다. 1982년 만들어져 2013년 폐지된 검찰 수사조직입니다. 대한민국의 정치사를 관통하는 중수부 역사를 복원하고 싶습니다.  Q ∥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면 해주십시오 A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정의는 뜨거운 인간애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자의 사람에 대한 예의와 애정이 저의 마음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나도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뭉클함과 우리에게도 이런 법조인이 많으면 좋겠다는 부러움이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