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광대하여 성글지만 빠트리지 않는다. 노자 73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하늘이 모른 척해도 악인에게 벌주는 일을 빠뜨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흔히 쓰입니다. 세상 일이 내뜻대로 안 돌아간다고 여겨질 때, 저 글귀는 얼핏 위로가 될 법도 하겠지만, 어디 꼭 그렇기만 하겠습니까. 악과 선, 죄와 벌이란 게 어디 명확하게 구분되는 일이 아니라서 본인 기준으로 보아야 할 게 아니겠지요. 못된 놈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면 하늘의 그물이 참 부실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곳 파주는 눈이 올 듯 말 듯한 날씨. 심학산으로 오르다 죽은 신갈나무 밑둥 근처의 낙엽에 패잔병처럼 남은 쌓인 눈을 보다가 저 글귀를 떠올립니다. 천망회회 소이불실. 눈은 엄청 단단하게 서로를 꽉 붙들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릴 때는 참으로 성글게 내리던 눈이었는데!
심학산 정상에 서면 한강은 물도리동처럼 둥글게 휘감아 돌며 서해로 빠져나갑니다. 강 건너 서울, 김포, 강화를 아우르는 풍경을 보다가 군데군데 쌓인 눈을 보면 누가 던진 그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빠트리는 법이 없는 하늘의 그물. 눈이 한번 왔다 가면 세상은 빨래라도 한 듯 일순 깨끗해집니다. 하지만 근심 많은 이들의 가슴에는 빗금 하나 긋고 갑니다. 눈 녹고 난 뒤, 하늘 아래 모든 이들의 얼굴에 그늘이 조금 지는 건 눈 그물의 정체를 알아버린 탓이 아닐까요. 올해도 조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2022.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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