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작가┃정신분석학 에세이 <나를 엿보다>를 펴낸 정재곤 인터뷰


Q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독자들에게 자기소개와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A∥저는 대학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나서 프랑스로 가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정신분석학의 눈으로 읽는 논문으로 프랑스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제가 아둔한 탓에, 이 과정은 근 십 년이나 소요되었습니다. 마지막 몇 년 간은 문학만큼이나 특히 정신분석학에 깊이 빠져들었던 시기였습니다. 엄청나게 읽고 엄청나게 공부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저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지요. 지금까지도 말입니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서 강단에 서서 강의도 하고 책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일도 했지만, 유학 시기, 특히 그 시기의 마지막 몇 해 동안 맛봤던 뭔가 뜨거웠던 갈망 내지는 탐구욕 같은 것이 몹시도 그리워졌습니다. 이런 연유로, 53세라는 늦은 나이에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을 다시 공부하고자 재차 프랑스로 두 번째 유학을 떠났었지요. 이리하여 어린 프랑스 젊은이들 사이에 끼어 심리학 학사와 석사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더불어, 프랑스 정부 공인 심리분석가 자격증(다문화심리학)도 취득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뭔가 배우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건 사실이지만, 이제는 제 안에 쌓아놓은 것들을 바깥으로 끄집어낼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요즘이요? 하루종일 “화요일의 심리학”에 소개할 글들을 궁리 중입니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글의 주제는 ‘마법적 사고’, ‘일인가구’, ‘탄력성’, ‘세 가지 불가능한 직업’ 등입니다. 모두 매력적인 글감이지만, 어떤 꼭지가 더 멋지게 써지고 또 완성될는지 저 자신도 궁금합니다.




Q이번에 선보인 『나를 엿보다』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주신다면요? A ∥ 이 책은 지난 20여 년간 제가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고 알아가면서 일상과 사회, 문화와 문화 차이, 가족과 자녀 교육, 나와 타자 사이에서 고민하고 사유해온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해지길 원합니다. 하지만 행복은 거저 얻어지지 않죠. 저는 짧은 순간이나마 매일 한 차례라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 주변을 살필 때 행복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을 보다 잘 살필 수 있게 해주는 돋보기가 필요하고 졸보기도 필요한데, 이 책이 그 통로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우선은, 그냥 재미난 이야기로 읽혔으면 합니다.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 시각이 배어 있긴 하지만, 문학 얘기일 수도 있고, 언어학이나 수사학, 또는 인류학적 시각이 배어 있는 듯도 합니다. 가능하다면, 앞으로 인문학 전반을 꿰뚫는 ‘통섭’의 글쓰기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희망해봅니다. 다만 제가 글에 임할 때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점은 우리나라에서 그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았고 말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자 했다는 점입니다. 이 책에서 얼마나 실현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예를 하나만 들어보면, 저는 ‘바바리맨’이 벌이는 깜짝쇼의 최종목표가 붙잡혀서 법의 심판을 받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일이죠. 우리의 무의식이 그만큼 교묘하고 무섭습니다. Q ∥ “나를 엿보다”라는 제목에 눈길이 갑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제목과 책의 주제와 관련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 제가 책 서문에서도 간략하게 밝혔듯이, 정신분석학에서는 자기 성찰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대단히 시건방져 보이는 말이지만, 정확한 지적입니다. 기껏 해야 자기 자신의 소소한 ‘편린’ 정도나 볼 수 있을 동 말 동 할 정도란 겁니다... 그것도 어떤 계기로 자기 자신을 흘끗 일별하는 정도?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자크 라캉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기능을 담당한다고까지 말합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세계관을 송두리째 뒤엎는 관점이지요. 저는 『나를 엿보다』를 읽는 독자들이 일종의 깨달음을 경험하길 희망할 따름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깨달음이라기보다, 깨달음의 어려움에 대한 깨달음이라고나 할까요. Q ∥ 집필 과정에서 힘든 점이나 재미있었던 일은 없었나요? 단행본 작업 과정에서 특히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셨나요? A ∥ 제가 양다리 걸치고 있는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은 두 분야 모두 인간성 탐구란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긴 합니다. 대개의 경우, 제도권 내에서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의 한 가지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보자면, 심리학은 우리의 의식과 전(前)의식을, 정신분석학은 의식과 전의식, 그리고 무의식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대별됩니다. 인간성이란 심연을 깊이로 따지자면 단연 정신분석학이 우세하지요. 하지만 우리의 실생활에 보다 가깝고 응용이 수월하다는 점에서는 심리학이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리학은 크게 볼 때, 개인의 (병리학적) 심리를 주로 다루는 (병리)심리학과 사회적 차원의 심리를 다루는 사회심리학으로 대별됩니다. 저는 공식적으로는 다문화심리학 전공의 사회심리학자입니다. 그리고 이는 이 책의 주제와도 상통하는 면인데, 첫 번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고 나서 격심한 문화적 충격과 정체성 혼란을 겪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가 공연히 다문화심리학을 저의 주전공으로 삼은 것이 아니죠. 하지만 실상 저는 불문학과 정신분석학, (개인 및 사회) 심리학 등으로 버무려진 ‘하이브리드’ 인간인 셈입니다. 그중에서도 저에겐 정신분석학이 가장 뜨거운 ‘지옥의 불’이었습니다. 지옥 불이긴 하되, 지나고 나니 가장 모질게 그리운 지옥 불인 것 같습니다. Q ∥ 이 책만의 특장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보거나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각을 경험했으면 한다는 저 자신의 바람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저 재미난 이야기로만 읽혀도 저로선 고마울 따름이지요. Q ∥ 정신분석학, 심리학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A ∥ 권하고 싶은 책들이야 많지만, 딱 한 권만 권한다면,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들고 싶습니다. 세상에 없던 정신분석학이란 학문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불릴만한 책입니다. 유명한 오이디프스 콤플렉스가 처음 등장하고, 우리의 무의식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총망라된 책이기도 합니다. 어렵지 않고 재미있기까지 한 책입니다. 탤런트 김혜자 씨가 심심하면 펼쳐 읽는 책이란 기사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굳이 전문서가 아니더라도, 고전소설을 많이 읽어보시란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사실상 뛰어난 소설가나 시인 들은 사용하는 언어만 다를 뿐 특급 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도스토예프스키, 프루스트 등을 능가하는 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특히 정신분석학이 탄생하기까지엔 문학이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Q ∥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을 더 풀어낼 예정이신지 궁금합니다. 꼭 써보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연구하는 주제나 하고픈 주제를 말씀해주셔도 좋겠습니다. A ∥ 아직 『나를 엿보다』의 동일선상에서 쏟아내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힘들지만, 인간성의 여러 면모를 좀 더 새롭고 폭넓게 관찰하고 접근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심리학 내지는 정신분석학과 문학을 함께 아우르는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학술적 관점이 아니라, 일반독자들이 폭넓게 공감할 수 있는 문학작품 읽기 같은 책 말입니다... 제 삶에서 책을 빼면 곤란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 책과 연관된 뭔가를 써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Q ∥ 독자들이 어떤 면에 주안점을 두고 이 책을 보면 좋을까요? 이 책을 꼭 읽길 바라는 독자가 있나요? 끝인사 겸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 가급적 글을 쉽게 쓰려 했지만, 제가 의도했던 ‘대중적 글쓰기’가 이 책에서 얼마나 구현됐는지 의문입니다. 예전에 제가 강단에 섰을 땐 학생들한테 “유치원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글”이 좋은 글이란 말을 자주 했었는데, 다루는 주제가 주제인 만큼 사실상 유치원생은 이해하기 힘든 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반면에, 제가 예전에 고등학생들에게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을 읽혀본 적이 있는데, 충분히 읽히고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화요일의 심리학”을 연재할 때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 책이 한창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적 역량을 함양해나가야 할 대학생, 고등학생들에게 널리 읽히길 희망합니다. 더불어, 언론사 기자분들께서도 많이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이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글들이 멋들어진 결론이나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마치 중도에서 정지된 듯한 느낌을 주는 까닭은 바로 독자 여러분들이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켜나가길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이 책이 독자 여러분에게 완성된 생각이나 견해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사색의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