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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저자, 바로 그 책!┃<수냐의 수학카페>를 펴낸 김용관


Q. 독자들에게 첫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이 책을 쓴 계기와 기획의도를 들려주세요. A. 반갑습니다. 김용관입니다. 학교에서는 '수냐'라는 별명으로 불립니다. '그런 것도 수(數)냐?' 할 때의 수냐가 아닙니다. 야수의 반대도 아니죠. 수냐sunya는 '비어 있음'을 뜻하는 인도말로 최초의 0을 지칭한 말입니다. 전 수학, 특히 수학사를 즐겁게 공부하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글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몇(?) 지인들의 권유를 받고 수업 내용도 정리할 겸 도전해보게 되었습니다. 꿈도 꿔보지 못한 일이었죠. 무엇부터 시작할까? 가장 좋은 출발점은 수였습니다. 수는 수학의 축소판이니까. 어떻게 쓸까? 밋밋하지 않게 이야기 속에 수학적 사실과 개념들을 담아내려 했습니다. 그러면서 수에 대한 의미 해석을 아마추어적인 과감함으로 해봤습니다. 왜 굳이 이야기일까? 이야기는 쉽고 재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자꾸 변형되고, 늘어나고 더해지죠. 만약 수가 쉬우면서도 세련된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면, 아마도 더 많은 사람들이 수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풍부하게 지어낼 수 있겠죠. 그래서 저는 수에 관해 극적이면서도 대립적인 인물들, 유클리드와 니체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빅뱅처럼 그들은 충돌하게 되고, 그 충돌은 새로운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칸트, 베르메르, 갈릴레이, 모모, 어린왕자 그리고 수학자들이 계속 등장하며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Q. 어린 학생들은 연산에 지쳐하고, 청소년들 역시 입시의 주요 과목인 수학을 골치 아프게만 여깁니다. 대안학교와 도서관 등에서 청소년과 일반인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계시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수업인지 들려주세요. 그리고 수업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지요? A. 전 수학을 테마별로 수업하고 있습니다. 수, 계산, 도형, 미술과 수학, 수학영화 등. 각각의 주제를 다룰 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의 내용을 묶어서 공부합니다. 그 내용들을 묶되 역사적 과정을 따라 재배치하며 살펴봅니다. 어떤 맥락에서 등장했는지, 어떤 사건과 배경 속에서 변화했는지, 어떤 모습으로 정리 정돈되었는지,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가를 공부합니다. 공부할 때는 우선 '질문해보기'를 강조하고 연습해봅니다. 그 질문으로부터 수학을, 그리고 수학과 관련된 역사, 철학, 예술을 공부해갑니다. 그림이나 이미지, 문학, 동영상 등의 보조교재들의 도움도 받으며 토론과 이야기 식으로 진행합니다. 가끔 '이것도 수학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방식이 달라서겠죠. 그러나 수업 방식에 적응하고 나면 무척 재미있어 합니다. 특히 성인들의 반응이 더 좋습니다. '수학을 이런 식으로도 접근할 수 있구나, 수학으로 이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구나!' 이런 반응을 많이 보입니다. Q. ‘수를 센다는 것은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수의 발달은 인간 인식의 확장이다’… 선생님 글을 읽으며 수학으로도 세상 공부를 할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선생님은 수학을 인문학적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하십니다. 수학이 자연과학, 인문학(역사, 사회문화, 철학 등), 예술 등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통합적으로’ 바라보시는데요. 어떤 계기나 이유에서 이러한 수학관을 갖게 되셨는지요? A. 전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살아가기 위해서 수학을 공부했습니다. 삶의 경험들이 분열된 채 의미로 다가오지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공부가 필요했습니다. 그때 수학에 대한 우연한 경험을 통해 '수학을 따라 공부해가면 되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질문과 관심분야를 따라 다양하게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수학을 꼭 통합적인 관점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학적 이론이나 사실 등의 의미가 궁금하고 알고 싶다면 통합적인 관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순간이나 하나의 사건의 의미란 관련된 삶의 전체적인 이야기 속에서 발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수학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학문일까요? 그리고 수학적 ‘사유’란 것이 일상생활의 ‘사유’와 어떤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이 주제는 <수냐의 수학카페>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곧 독자들에게 선보일 테지만, 미리 맛보기로 소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전 모든 사람에게 수학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필요하더라도 그 정도와 내용 역시 얼마든지 달라집니다. '입시'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수학에서 얼마든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굳이 고통을 받으면서까지 수학을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수학과 다른 분야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수학의 엄밀함, 만국공통어, 자유로운 사고의 학문? 그럴 수도 있겠죠. 저는 표현요소와 표현대상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표현요소들이 있습니다. 문자, 언어, 행동, 악기, 색... 저는 수도 그런 표현의 하나일 뿐이고, 그런 점에서 다른 것들과 차이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요소의 용도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적절한 표현요소도 달라집니다. 자기에게 더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매체가 있는 거죠. 수학에 대한 괜한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가질 필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하나의 표현요소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수학만이 가능한, 수학만이 가장 적절한 영역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그걸 알아둔다면, 그리고 그걸 필요로 한다면 수학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학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Q. 이 책에는 에셔의 그림으로 수를 설명하는 독특한 부분이 나옵니다. 선생님은 예술과 수학과의 관계가 어떠하다고 보시는지요? 예술가와 수학자 간에는 어떤 공통된 면모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A. 예술도 수학도 그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가 앞으로 노력해야 할 것도 고정된 의미를 벗어난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더 나아가 둘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에 준해서 말하자면 예술과 수학은 상당히 닮아 있으면서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이나 수학에서 직관은 매우 중요합니다. 뭔가의 느낌이나 생각, 정신세계에 대한 직관으로부터 위대한 예술품이나 수학적 발견이 이뤄지죠. 그리고 그 직관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수학과 예술은 기본적으로 창조적입니다. 하지만 그 직관이 표현되는 방식은 다릅니다. 수학은 추상적인 기호를, 예술은 실제적 매체를 통해 직관을 구체화합니다. 그런 차이로 인해 예술과 수학은 역시나 구별되며 상호보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Q. 서양의 유클리드 <원론>과 비견될 만한 동양의 수학 고전이 있습니다. 바로 3세기 중국의 위나라 유휘가 주석을 단 <구장산술>인데요. <수냐의 수학카페 1>에도 유휘의 방정 풀이가 서양과 비교되어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구장산술>의 246개 문제를 살펴보셨을 텐데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비교사적인 관점에서 동양세계만이 지니고 있는 특이한 점이 있나요? 혹은 어떤 공통점을 발견하셨는지요? A.

-지금 체 모양(등변사다리꼴)의 밭이 있는데, 혀 너비가 20보, 무릎 너비가 5보, 높이가 30보이다.    밭의 넓이는 얼마인가? (구장산술 제1권 29번) -어떤 다각형을 주었을 때, 그것과 넓이가 같은 정사각형을 작도하라.(원론 2권 정리 14)

넓이의 문제를 다루고 아주 다른 형식의 문제들입니다. <구장산술>에는 도형의 이름도 체 모양이고, 구체적인 길이가 주어졌으며, 길이의 단위 또한 걸음을 뜻하는 '보'입니다. 실제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것 같습니다. 반면 <원론>에서는 이런 구체적인 면이 보이질 않습니다. 모든 구체성을 포함하는 보편성과 이론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유휘는 3세기에 <구장산술>의 주석을 달았습니다. 따라서 <구장산술>은 그 이전, 즉 기원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렇다면 <원론>의 시기와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과 방식 모든 면에서 두 책의 모습은 너무나 다릅니다. 그렇지만 이런 차이를 동양과 서양이라는 지리적 문명의 차이라기보다는 그리스적 철학의 이전과 이후의 차이로 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리스 이전의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수학 형식은 <구장산술>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적 이전의 수학은 현실의 테두리 내에서 생성된 것입니다. 현실적 문제나 용어, 해법이 수학의 형식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그에 반해 <원론>은 현실 너머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현실이 모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너머를 통해 현실을 재구성하고자 했습니다. 가능한 한 현실의 냄새를 없애려 했죠. 현실에 대한 수학의 지향성이 차이를 생산한 것 같습니다. Q. 수많은 수학자 중에서 남다르게 애정이 가는 수학자가 있나요? 수학자는 외로운 천재, 혹은 광인이라는 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전 무한이라는 주제에 무척 끌리고 애정이 갑니다. 유한에 익숙한 우리를 무한은 낯선 존재가 되게 해줍니다. 사유가 전복되는 느낌, 다시 사유해야만 하는 긴장감, 20세기 이후의 무한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들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광인적인 수학자로서 칸토어, 괴델이 대표적으로 등장합니다. 전 그들을 존경과 호기심, 경계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미친 수학자들!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지 않았을까요? 미칠 정도로 살아갔다는 점에서 전 그들을 존경합니다. 태어나서 미칠 정도로 뭔가를 해본다는 거, 괜찮지 않을까요? 뭐가 그들을 그토록 끌어당겼을까 하는 점에서 호기심을 가지고 있고요. 하지만 난 그런 삶을 살지는 않겠다며 경계하죠. 그들의 삶의 경로에 대해서 전 가치판단하지 않습니다. 다만 수학이라는 학문이 광기를 이끌어내는데 아주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수학은 이제 순수한 사고의 학문입니다. 그런 사고의 세계를 실재적 세계로 만들려 했던 수학자들의 경우 미쳐가기 십상이었습니다.(문제가 안 풀려서 미친 경우는 없는 듯)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 보이는 세계를 실제처럼 믿고, 만들어야 하니까. 그걸 보면 참 순수한 사람들 아닐까요? Q. 수학이나 수학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을 몇 권 일러주신다면...? A. 전 소설이 참 좋습니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한 외로운 수학천재 이야기(생각의 나무)>, <용의자 X의 헌신(현대문학)>, <앵무새의 정리(끌리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레)>이 대표적입니다. <어느 수학자의 변명(G. H 하디, 세시)>은 수학자가 직접 쓴 수학에 관한 책이어서 수학자들이 수학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이해할 수 있고, <수의 세계(드니 게디, 시공사)>는 짧지만 수에 관한 다양한 내용을 알차게 담고 있고, <수학의 몽상(이진경, 푸른숲)>은 수학과 인문학적 사유를 잘 결합한 책으로 추천할 만합니다. 수학사의 세세한 내용을 알고 싶을 때는 경문사의 경문수학산책 시리즈가 좋습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일반적으로 수학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고, 매우 유용하다고 합니다. 전 꼭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입시와 방정식/계산과 같은 분야를 제외하고도 우린 정말 수학이 중요하고 유용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린 얼마나 수학이 주는 쾌감과 즐거움, 아름다움, 자유로움을 직접 경험하고 느끼고 있을까요? 수학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매력적인 학문임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이 책을 통해서 하신다면 좋겠습니다.


김용관ㅣ수학, 특히 수학사를 즐겁게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 성미산학교, 꽃피는학교, 여러 도서관 등에서 어린이, 청소년, 어른에게 수학으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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