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저자, 바로 그 책┃한국 과학자사회 대표필자 김환석 교수 인터뷰


『한국의 과학자사회』의 대표필자인 김환석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의 인터뷰는 우리나라 과학자사회의 구조와 특성을 형성하였던 역사적 요인들을 살펴보고,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 과학자사회의 규범과 보상체계, 계층화와 일탈행동은 각각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이러한 과학자사회 내부에서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어떤 정체성을 지닌 인간들로 사회화되는지 심층적으로 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Q국내에서 ‘과학자사회’에 대한 연구가 이처럼 포괄적이고 체계적으로 수행된 것은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기획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주십시오.

A현대 사회에서 과학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도 후발자이기는 했지만 이제 선진국과 상당히 근접할 정도로 과학이 발전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정작 국내의 학계에서는 과학과 사회의 관계 그리고 과학자들의 사회적 성격에 대해서 아직 관심이 높지 않고 그 연구가 일천한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과학자사회’에 대하여 서구에서는 수십 년에 걸쳐 과학사회학 분야를 중심으로 많은 이론적·경험적 연구가 축적되어왔지만 국내에서는 그러한 연구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학의 급속한 발전은 추구하면서 우리나라의 과학자사회에 대해서는 이렇게 초보적 연구도 안 되어 있다는 것은 학문적으로도 또 정책적으로도 커다란 맹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책을 집필한 연구자들은 우리나라의 과학자사회를 다양한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일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이지요.


Q‘과학자사회’라는 말은 언제부터 쓰였는지 그 기원이 궁금합니다. 또한 왜 과학자사회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A‘과학자사회’ 또는 ‘과학공동체’는 영어의 ‘Scientific Community’를 우리말로 번역한 개념입니다. 이 말을 처음 창안하여 사용한 사람은 물리화학자 출신의 과학철학자인 마이클 폴라니(경제학자 칼 폴라니의 동생)였습니다. 폴라니는 1942년 2월 맨체스터 문학·철학 학회에서의 연설을 위해 작성한 그의 논문 “과학의 자치”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그가 이 논문을 쓰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38년부터 영국의 과학계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과학의 계획화’ 논쟁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존 버널 등 사회주의적 과학자들의 주도로 과학의 계획화 운동이 확산되자, 이를 반대하고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순수과학을 옹호하기 위해 앞장선 과학자들의 대표가 바로 폴라니였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후 학계에서 ‘과학자사회’ 개념을 널리 퍼뜨리고 중요한 연구의 주제로 만든 것은 로버트 머턴의 과학사회학과 토마스 쿤의 과학사·과학철학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머턴과 쿤 이전에는 과학이란 것이 진리를 탐구하는 합리적인 개인 과학자들의 활동이라고 당연하게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에 반하여 머턴은 확증된 지식으로서의 과학이 발전하는 것은 과학자들의 개인적 특성 때문이 아니라 과학자 집단이 지닌 독특한 규범과 보상체계 등 제도적 특성 때문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쿤은 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과학의 발전은 패러다임의 교체에 의해 불연속적으로 이루어지며 특정한 패러다임을 신봉하는 과학공동체는 내부 성원들을 결속시키고 외부와 경계를 짓는 행동규범과 평가기준 그리고 사회화의 기제를 발전시킨다고 주장하였습니다.


Q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과학사회학’, ‘과학지식사회학’ 등의 학문 분야를 이해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이 분야를 간략히 소개해주신다면요.

A‘과학사회학’은 한마디로 과학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때 ‘과학’이라는 것은 지식의 일종인 동시에 과학자들이 수행하는 실제 활동, 즉 과학적 실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학은 그 탄생부터 대체로 자연과학을 자신의 모델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과학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하여 관심이 지대하였지만, 과학 그 자체를 사회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었습니다. 1950년대 말~6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미국의 기능주의 사회학자인 로버트 머턴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 사회학의 전문 분과로서 과학사회학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머턴은 과학의 내용은 보편합리성을 지니는 지식으로서 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사회학적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다만 그러한 지식을 만들어내는 과학자사회의 독특한 제도적 성격만이 과학사회학의 연구 대상이 된다고 보았던 것이지요.

머턴식 과학사회학의 이런 제약에 도전하면서 1970년대 중반에 영국의 젊은 과학사회학자들을 중심으로 새로 대두된 것이 바로 ‘과학지식사회학’입니다. 이들은 토마스 쿤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어서 과학의 내용 자체가 자연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며 과학자사회의 집단적 속성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반드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지식사회학이 지식의 사회적 구성을 사회학적으로 연구하듯이, 과학의 내용 역시 지식사회학을 확장시켜 연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실제로 수많은 경험적 사례연구를 통하여 과학지식의 사회적 구성을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이후 과학지식사회학의 이러한 구성주의적 접근은 단지 과학사회학 분야를 넘어,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학제적으로 연구하는 과학기술학(STS) 분야를 성장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Q근대사회와 긴밀한 연관을 맺으며 근대과학이 발생하고 다른 사회조직과는 구별되는 자율성을 지닌 집단으로 과학자사회가 형성된 서구와 한국의 경우는 상당한 차이가 보인다고 기술되고 있는데요. 한국 과학자사회의 독특한 점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A서구 과학자사회는 근대 시기 실험적·수학적 방법론에 근거한 새로운 지식 생산 집단으로서 종교집단 혹은 정치집단과 차별성을 갖게 됩니다. 과학자집단은 종교적 교리나 정치적 당파를 좇지 않고 새로운 방법론에 근거하여 파악한 ‘자연의 책’에 기초하여 세계를 판단하는 집단으로 인식되게 됩니다. 이것이 근대 과학이 지닌다는 객관성의 내용이지요. 그리고 이 객관적 과학은 18~19세기 그 실천적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제도적 권위 획득에도 성공합니다.

이에 반해 한국 과학자사회는 초기 과학자사회 형성 과정에서부터 식민 지배의 극복이라는 사회·정치적 과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객관적 지식 생산의 담당자로서 사회적 의제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서구 과학자의 이미지가 식민지 과학자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학에 대한 사회적 담론에서도 도구적 과학론이 지배적이게 되면서 사회적 의제에 봉사하는 과학자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이미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방 이후의 정치적 상황 역시 식민지 시기와 유사하게 과학자들에게 자율적 공간을 허용하지 못했고, ‘근대화’, ‘산업화’라는 국가적 과업을 수행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민족, 국가 등의 사회적 의제에 우선적으로 봉사하는 과학자 역할이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 하에서 과학자사회에 내면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사회적 쟁점들에 독립적으로 발언하는 대표적인 과학자집단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이런 역사성이 만들어낸 한국 과학자사회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이 책 후반부, ‘실험실’을 배경으로 한 석·박사 대학원생들의 인터뷰가 흥미로웠습니다. 예전 과학자 선배들과 요즘 젊은 세대 과학자를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A실험실 문화에 관한 인터뷰에서 뚜렷하게 드러난 것이 과거 실험실에서 보여지던 엄격한 위계질서가 많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지도교수와의 관계에서도 한층 수평적인 관계가 보이고, 남녀 연구원들 사이의 위계도 엷어졌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과거 선배 과학자와 달리 국제화된 실험실에서 실험실에 적용되는 표준 규범들을 학습하고 내면화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예전의 과학자들은 국가에 봉사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강했던 반면에, 젊은 세대 과학자들은 이러한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주의적 관심과 동기를 비교적 자유롭게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현재 서구와 국내 과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과학의 상업화’ 추세와 이것이 과학계와 사회에 초래하는 심각한 문제점들을 젊은 과학자들이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은 우려를 자아내기도 합니다.


Q이 연구를 진행하시면서 힘들었던 점은 없으셨는지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세요.

A개인연구가 아니라 팀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서로간의 상이한 견해와 사정들을 조율하는 것이 힘들었고 또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과학자들의 협조를 얻는 것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연구를 수행하는 기간 동안 가장 큰 에피소드는 역시 ‘황우석 사태’란 커다란 사건이 뜻하지 않게 터진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황우석 사태’는 단지 한 유명한 과학자의 연구부정행위라는 좁은 의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자사회의 역사적 형성과 그 결과로서 국가와 과학자사회의 특수한 관계, 그리고 오늘날 과학자사회의 규범과 보상체계 및 계층화 등의 복합적 측면들을 망라해서 보여준 집약적 사건이라고 우리 연구진에게는 보여졌습니다. 따라서 ‘황우석 사태’는 우리 연구프로젝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계기가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순탄한 연구수행에 다소 장애가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황우석 사태’가 진행되는 거의 일년 동안 급박한 상황에 맞추어 우리 연구진들도 여러 곳에서 발언을 요청받고 시사성의 글을 써주어야 할 일이 빈번하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Q끝으로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A‘과학자사회’라는 특수한 사회집단에 대한 학술적 연구결과를 담은 책이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에게는 다소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질 것이 염려됩니다. 그렇지만 과학과 사회의 관계가 점점 더 일상적인 현실에서도 중요해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과학자사회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학계뿐 아니라 일반 사회에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이미 과학기술 없이는 살 수 없고 또 미래의 후손들은 더욱 더 그러한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라면,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지금보다 바람직하게 바꾸는 일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학자사회의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그러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쓴 첫 책으로 이해하시고, 앞으로 여기서 논의된 주제들이 보다 구체적이고 쉽게 다루어져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여러 후속 작품들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