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에 관한 명상 – 건축 일기 28


공중으로 1층, 2층 3층이 아무런 사고 없이 착착 진행되는 동안 지하가 내심 궁금해졌다. 지하는 진즉에 완성이 되었지만 내부에 밀림처럼 받침대가 빽빽해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터였다. 작업 소리는 간간이 들려왔지만 그 안에서 무슨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뗏목 같은 지하는 말하자면 이 건물의 원점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건물은 지하를 딛고 일어날 수밖에 없다. 처음 흙을 파내고, 콘크리트를 들이붓고, 그 안에서 철근 배근 작업을 할 때 지하묘처럼 거대한 직업이 벌어지는 때가 바로 엊그제였다. 불과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지하의 깊이보다 더 높은 지상의 층들이 뻗어나간 것이다.


학창 시절, 원점을 배운 것은 수학 시간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물질로 이루어진 물질의 자식임이 분명하다. 자연계에 미만하는 그 108가지 원소의 이합집산이 곧 이 세상의 존재하는 것들이다. 돌, 물, 나무, 몸. 그 어느 것이나 똑같은 성분의 배합에 따른 것이고 그 차이의 결과일 뿐이다. 돼지고기 600그램이나 몸의 600그램은 같은 무게이며, 신갈나무 가지의 성분이나 내 팔뚝의 성분이 실은 같다. 태우면 다 탄다. 재만 남는다.


화학 시간에 배우는 것은 분자에서 더 쪼개진 원자이다. 이제는 원자보다 더 들어간 쿼크를 논하고 이제는 더 미세한 물질의 모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내가 참여한 그 당시의 수업에서는 원자핵이 있고 그 핵을 주위로 전하가 있어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전자가 돌아가는 모형을 칠판에서 배웠다.


내가 참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겠는데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때 교과서나 칠판에 그린 원자핵이 말하자면 그 작은 세계의 원점이나, 중심일 수가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개념상의 관념상의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내가 딛고 사는 이 세상에서 그 실재하는 원점은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혹 지금의 나에겐 바로 이 지하가 그 원점이 아닐까.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어느 날, 파주로 달려갔더니 어느 새 지하로 가는 길이 어느 정도 치워져 있었다. 거푸집과 지지대, 각종 자재들이 바깥으로 나오고 일부 자재만이 한켠에 치워져 있었다. 안전모를 쓰고 지하로 내려가보았다.


가장 먼저 형태를 분명히 드러낸 건 주차장으로 가는 출입구였다. 작은 경사를 따라 내려가니 드디어 지하가 고요한 비밀을 움켜쥐고 있는 듯 자리잡고 있었다. 텅 빈 공간의 한켠에서 종류가 다른 찬바람이 휭 전신을 때렸다. 엄숙한 기분이 저절로 들었다.


바깥으로 숨 쉬는 구멍이 하나 있다면 좋겠는데 이곳은 지반이 조금 융기하느라 바깥으로 창을 내지는 못했다. 다만 우리 건물은 중정으로 연결된 통로가 있어 공기의 순환은 그리 문제가 없어 보였다. 거대하고 딱딱한 바닥을 딛고 위를 쳐다보았다. 견고한 뚜껑이 답답하기보다는 튼튼하다는 느낌을 주어서 안도했다. 적어도 함부로 무너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지하는 지하대로 맛이 있다. 각종 잔해가 부지기로 쌓여 있었지만 가장 먼저 형채를 드러낸 곳이었다. 그곳 역시 지을 때는 몰랐는데 사방의 벽이 생기고 기둥이 떠받치는 규모를 보니 작다는 느낌을 주기보다는 큰 규모로 다가왔다. 이곳은 일부는 주차장으로 쓰고 또 일부는 창고로 활용할 예정인 지라 크기는 클수록 좋은 곳이었다. 다만 책을 보관하느라 습기를 예방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건물을 처음 지을 때, 두부처럼 땅이 정확하게 잘려나갈 때도 사실 땅은 그 밑천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땅을 본다고 해도 사살 땅을 다 본 게 아니었다. 그러니 땅을 안다고 해도 그게 아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단지 이 거대한 땅의 와중에서 경우 한 움큼의 허락을 받아 이렇게 깃들어 사는 것, 그 사실에 새삼스럽게 생각하여 보았다.


하루가 더 지나 지하를 다시 찾았다. 어느 새 곳곳에 쌓여있는 자재가 대부분 치워지고 없었다. 지하층의 규모가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 붉은 흙속에 파묻힌 지하를 지하에서 보았을 땐 그리 실감이 나질 않았는데 콘크리트 벽으로 사방이 분명한 경계를 짓고 보니 좁은 공간은 아니었다.


땅 움푹 파이고 콘크리트를 들이부으면서 균형을 잡고 딱딱한 건축의 의도가 드러났을 때 지하에서 내가 본 것은 그 어떤 무덤이었다. 그것도 진시황의 병마용 무덤을 생각했었던 바가 있었다. 서늘한 공기가 감돌고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몸을 한 바퀴 휘감고 나갔다. 그들은 이제껏 이 대지를 지배하던 정령일 수도 있고 이 땅에 붙박아 있던 원주인의 흔적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저런 궁리에 사로잡혀 지하를 거닐었다. 처음 터파기를 하기 직전에 붉은 말뚝을 기준으로 서른일곱 걸음으로 궁리의 터를 확인했던 일이 떠올랐다. 지상에서는 반듯한 사각형이라 걸음에 질서가 있었지만 이곳은 조금 다른 세계였다. 벽을 따라 걸어 보았지만 들고나는 구조가 조금은 복잡해서 여의치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눈앞으로 기묘한 물체가 들어왔다. 이곳이 어떤 무덤이라도 된다는 표시일까. 한 구석에 이곳에서 출토된 듯 가지런히 정돈된 것이 있었다. 혹 백골일까, 싶었지만 이내 나의 기대를 외면했다. 그것은 그동안 이 어둑한 어둠속에서 힘들게 고생하신 누군가의 땀에 찌들은 작업모!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신 분들의 덕분으로 보이지 않는 지하가 완성되었다. 커다란 한 매듭을 지었다는 실감이 튼튼하게 들었다. 거대하고 딱딱한 바닥을 딛고 위를 쳐다보았다. 하늘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의 머리 위로 내가 솟구친다는, 내가 견고하게 확장된다는  기분이 처음으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