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층 벽에 추억의 벽돌을 붙이다 – 건축 일기 32


각 층이 올라갈 땐 변화하는 모습이 눈에 잘 띄었다. 하루가 다르게 건물의 외부가 쑥쑥 자라났던 것이다. 이제 건물이 우뚝 서고 그 내부로 눈길을 돌리자 공사의 진도는 작은 변화를 보일 뿐이었다. 큰 장비가 들어와서 쿵쾅거리면서 나, 여기 작업한다오! 광고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면밀하고 꼼꼼하게 치수를 확인하고, 더 나은 방안을 상의하면서 차분히 진행하는 것이다. 하나하나 착착 진행되기는 하는 것 같은데 건축의 문외한인 나로서는 얼른 그 변화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래도 각 층마다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면서 각자의 맡은 바 임무를 착실히 진행하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가장 큰 변화는 지하층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모처럼 지하로 내려갔더니 찬 기운이 휙 불어나왔다. 언제 이런 일이 진행되었는지 많은 변화의 흔적이 지하층에 고여 있었다. 이 건물이 하나의 나무라면 지하는 뿌리에 해당하는 셈이다. 뿌리가 튼튼해야 줄기가 비바람에 끄떡없는 것처럼 지하가 건강하고 튼튼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작은 사다리를 놓고 관을 연결하는 작업하는 것과 동시에 한편에서는 다른 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탓에 외부에서 끌어온 임시 전등이 공중에서 밝히는 가운데 방수작업을 하고 있었다.


지하는 하늘에서 오는 빗물만이 아니라 땅속을 돌아다니는 물줄기의 습격을 언제 어디에서 받을지 모른다. 또한 작은 온도 변화에 따라 결로현상이 일어날 수가 있다. 아무리 단단한 시멘트라 할지라도 결로현상으로 맺어지는 이슬 한 방울에 주저앉고 마는 것이다.


먼저 벽에 묽은 회백색의 방수페인트를 칠했다. 여러 겹으로 칠하자 밋밋하던 벽이 휘장이라도 두른 듯 그림자놀이라도 해도 좋을 근사한 무대막이 되었다. 그것도 잠시 다시 그 앞에 시멘트 벽돌을 쌓았다. 방풍과 방수를 위해 5센티 정도의 간격을 띄웠다. 그냥 벽에 벽돌을 붙이면 되는 줄로 알았더니 바람과 물의 성질을 파악해서 정교하게 대처하는 것이었다. 벽돌도 마구잡이로 쌓는 게 아니었다. 그 자체에 구멍을 뚫어 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했다.


지하층의 마감을 할 때 재료에 대해 잠깐 고민했었다. 요즘은 워낙 좋은 재료가 많이 나오는 지라 선택의 여지가 많다. 지하라서 그냥 어둡고 습한 분위기를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아니 그럴수록 밝고 따뜻한 색상으로 연출할 수도 있다. 대형 마켓이나 병원 등 큰 규모의 건물 지하에는 알록달록한 재질의 벽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도 그런 쪽으로 갈까 샘플을 가지고 검토를 해보았다. 가격도 오히려 벽돌보다 저렴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니 궁리처럼 작은 건물에 뺀질뺀질하게 마감을 하는 게 어울릴까 싶었다. 건물 바깥은 투박한 벽돌과 더 투박한 노출콘크리트로 했다. 안과 밖의 조화가 영 마음에 걸렸다. 마치 범박하게 생긴 자연스러운 얼굴에 오똑한 콧날을 갖다 붙이는 성형수술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가로 두뼘, 세로 한뼘, 두께 반뼘의 시멘트 벽돌, 벽돌, 벽돌들. 이런 벽돌에 나의 많은 추억이 연결되어 있다. 아파트로 점철된 서울에서의 생활은 빼고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을 보낸 부산에서의 생활은 대부분 이런 벽돌로 만든 공간이었다. 흔히 집장사가 날림으로 지었다는 브록끄 집이 우리 집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겨울철 난방이며, 여름철 피서를 어떻게 했는가 싶지만 그래도 비에 젖지 않고, 땀띠 한번 나는 일 없이 사계절을 지냈다. 다 저런 벽돌의 덕분이라고 지금에 생각할 수 있겠다. 더구나 마당 한 귀퉁이에 조성된 화단은 으레 남은 브로끄 몇 장으로 울타리를 삼았다. 그 벽돌 사이를 비집고 피는 봉숭아와 채송화는 얼마나 황홀했던가!


요즘은 그때 그 시절보다 더위는 엄청 더 더웠고, 추위는 또 더 춥다. 부산보다 위도가 높은 파주에서 벽돌집은 어렵겠지만 지하의 마감재로는 더할 나위 없는 재질이라 생각되었다. 도면을 보면 궁리 건물의 내부 마감재로도 일부 벽돌을 사용한다. 요즘은 벽돌의 거칠고 투박함을 높이 사서 실내 인테리어에서 각광을 받는다고도 한다.


벽돌과 벽돌을 연결하는 접착제로 쓰이는 미세한 분진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벽돌쌓기는 진행되었다. 길게 곧은 벽을 따라 쌓는 것이지만 상당한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오와 열을, 수직과 수평을 맞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흰 줄을 늘어뜨린 채 차곡차곡 면적을 넓혀가는 벽돌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곳 지하에 나의 추억이 견고하게 부착되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