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 거푸집이 올라가자 궁리의 공간은 외딴 섬이 되었다. 허공으로 가득 채운 해자(垓字)가 빙 둘러싸고 작은 문 하나만 통로가 되었다. 그곳으로는 사람 하나 겨우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놓였다. 그곳으로 물자가 드나들었다. 물과 커피도 그중의 하나였다. 나도 일삼아 건너가 보았다.
아늑하기도 했지만 거푸집 안은 보통 복잡한 게 아니었다. 바닥에는 못과 나사, 핀과 나무조각으로 어지러웠다. 나무를 자를 때마다 나오는 톱밥도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작은 물건들은 직접 들고 이곳으로 왔지만 무겁고 큰 물건은 기중기를 통해 이 안으로 들어왔다. 철근, 지지대, 합판 등이 쌓여 있다가 모두들 제자리를 찾아갔다. 어떤 것은 바닥에 눕고 어떤 것은 천장에 달리고 또 어떤 것은 비스듬히 눕기도 했다.
이 모두가 작업자의 의도가 하나하나 반영된 것일 테다. 어느 것 하나 삐끗하면 그 조립품은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지고 말 것이다. 행여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바깥으로 지지대를 받쳤고, 내부는 내부대로 버팀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있었다.
처음으로 제 눈에 형상을 갖춘 것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입구였다. 그것은 15도의 경사를 유지하면서 비스듬히 꼴을 갖추고 있었다. 수직과 수평의 공간에서 하늘로 입구를 크게 벌린 공간이 그 용도를 짐작케 했다. 그 외의 것은 앞으로 그게 무엇이 될지 나의 안목으로는 전혀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지하층의 뚜껑이 덮였다. 어렵게 지하로 들어가 보았더니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빛은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캄캄했다. 몇몇 작업등이 흔들리는 가운데 천정을 떠받치는 기둥이 빽빽하게 들어 차 있었다. 이제 곧 콘크리트를 들이부어 천장과 보, 벽을 완성할 텐데 그 무게와 압력을 견디자면 이런 장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 뚜껑을 덮었다는 것은 1층의 바닥이 완성되었다는 것이기도 하다. 바닥에는 다시 손바닥만 한 네모꼴로 철근이 조립되었다. 2중으로 촘촘히 배열되고, 교차하는 곳마다 가는 철사로 묶어 튼튼히 고정시켰다. 그 작업은 간단한 갈고리로 했는데 한두 번 휙휙 돌리자 나비 같은 매듭이 완성되었다. 아름답게 배열된 철근 하나하나마다 매달린 나비떼!
1층부터는 땅의 보호가 아니라 공중에 그대로 노출이 된다. 날씨의 습격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에 대비해서 견고한 스티로폼과 합판도 깔렸다. 일반 합판이 아니라 코팅된 검은색의 합판이었다. 이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내일이면 콘크리트 타설을 한다. 다행히 일기예보를 보니 날씨도 맑는다 하였다.
우리가 신사복을 맞출 때 소위 가봉(假縫)이라는 것을 한다. 시침질이다. 넥타이를 벗어던지면서 양복을 입을 기회는 이젠 나에겐 없다. 하지만 한때 양복을 입어야만 했던 시절도 있었다. 대부분 기성복을 사 입었지만 아주 드물게 양복을 맞춘 적도 있었으니 그건 내가 소위 장가라는 것을 갔을 때였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자면 명동의 어느 양복점이었다. 가봉하던 날 가게로 가니 옷핀으로 누비누비 여민 옷을 입게 했다. 그것은 마치 붕대로 오려서 만든 옷 같기도 하고 주머니가 뒤집힌 것이라 무슨 수의(壽衣) 같기도 했다. 어쨌든 나의 신체의 구석구석을 알맞게 번영한 것이었다. 재단사는 나를 마네킹처럼 세워놓고 어깨, 겨드랑이, 사타구니, 허리 등을 꼼꼼히 재면서 옷과 몸의 관계를 살폈다.
지금 궁리 건물에서 일어나는 작업도 말하자면 시침질 같은 것이리라. 어디 내 몸에만 그러랴. 건물에도 다리와 허리, 어깨와 겨드랑이, 사타구니는 물론 아랫도리가 있다. 건물도 세월을 따라 아프고 병들고 늙어가는 것이다. 나무를 자르고, 못을 박고, 버팀목을 대고, 철근을 엮고, 거푸집을 대는 것. 이 모두는 내 몸에 맞춰 옷감을 끊어 바느질을 하듯, 궁리 건물에 맞게 바느질을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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