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란 무엇인가 - 건축 일기 6


1.


“저건 도시가 아냐.” “……” “저곳은 사람이 살 데가 아니야.” “……” “어떻게 저렇게 꽉 막힌 곳에서 사람이 살아.” “……” “저건 원시인들이 살던 동굴을 차곡차곡 포개놓은 것 아닌가.” “……” “사람들이 실수한 게 있어.” “……” “원래 집이란 피난처야.” “……” “왜냐, 자연은 인자하지가 않거든.” “……” “그래서 무섭게 몰아치는 비바람을 피하려고 지붕을 만든 거야.” “……” “근데 지붕 때문에 하늘도 막히고 별도 달도 차단되었지.” “……” “무서운 맹수나 벌레를 피하려고 벽을 만들었지.” “……” “근데 벽 때문에 사방 풍경이 없어졌어.” “……” “그 부작용을 이제껏 모른 척 하고 살아왔어.” “……” “이젠 하늘을 막고 있는 지붕을 열어야 해.” “어떻게?” 나는 겨우 한 마디 끼어들 수 있었다. “요즘 좋은 소재가 많아서 천장에 차양막을 설치하고 자연을 안방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 많아.” “……”


나는 지금 군대 시절 동기와 불암산 중턱에 앉아 있다. 한줄기 소나기가 지나간 서울 하늘은 아주 청명했다. 발아래 시내를 보니 아파트를 빼놓고는 달리 볼 것이 없었다. 상계, 중계, 하계를 비롯해 도심 저 멀리까지 아파트가 빼곡이 들어찼다. 내 친구는 건축학과를 나왔으나 설계 쪽으로 가지 않고 건설 현장에서 오래 잔뼈가 굵었다. 그가 지은 건물만 해도 서울 시내 곳곳에 여럿 있다. 사내가 세상에 태어나 결혼해서 가정을 하나 건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에 더불어 본인 주관 하에 집 하나 지어보아야 사내는 진정한 사내가 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이 말에 따른다면 내 친구는 진정 사내 중의 사내라 할 수 있겠다. 실제로 그는 이에 걸맞게 행동도 하고 호탕한 마음씨도 가졌다.


친구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이젠 내가 좀 해도 될 차례가 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상계역이 보이고 바로 그 건너편에 벽산아파트가 보였다. 내가 처음 신혼살림을 차렸던 곳이다. 그 아파트에서 시작해서 나는 줄곧 아파트에서만 살았다. 벽산아파트, 신동아아파트, 또 신동아아파트, 또또 신동아아파트, 프라임아파트, 또또또 신동아아프트, 동아아파트, 그리고 지금의 한신아파트까지. 그 짧은 순간에 내가 거쳐간 아파트들이 떠올랐다. 친구의 말이 아니래도 아파트의 지겨움은 이젠 턱에 찼고 틈만 나면 마당 깊은 집에서 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었고 발목을 잡는 생활의 여러 조건들을 따지다보면 아득한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인자하지 않은 건 자연만이 아니었다. 가까이 있는 일상생활도 못지않게 그랬다.


천지불인(天地不仁. 자연은 어질지 않다)으로 유명한 노자 『도덕경』 5장의 마지막 구절은 다언삭궁 불여수중(多言數窮 不如守中)이다. 말이 많아지면 자주 궁한 지경에 이르노니 중용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 라는 뜻이다. 여태껏 집은 짓지 못했으나 말 적게 하는 것은 지키기로 하고 일어서면서 딱 한 마디만 했다. “어이, 친구, 그만 내려가서 맥줏집에나 가세.”


----------졸저, <인왕산일기>에서 인용함.


2.


위에 적은 글은 2010년 7월 어느 주말에 등산하러 갔다가 불암산 중턱에 앉아서 실제 나와 나의 친구가 나눈 대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그날 산에서 내려온 둘은 맥주집에 가서 노가리를 안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그 이후 시간은 멈출 줄을 몰랐으니 나는 또 두 개의 아파트를 더 전전해야 했다. 그때 이미 파주 출판도시 조합원으로 가입했던 터라 막연하게나마 파주를 생각해서 서울을 떠나 일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식사동의 자이아파트, 그리고 다시 현대아파트. 완고한 지붕의 압력에 꽉 눌린 상태로 살아야 하는 그야말로 아파트 행진곡이라 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또 시간은 흘러 궁리 부지에 공사를 시작해야 하는 기한이 점점 다가왔다. 만약 착공하지 않으면 적지 않은 패널티를 물어야 했다. 그런 총중에 엉거주춤 시작하느니 이왕할려면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을 바꿨다. 파주출판 도시로 갈까 말까 고민은 했지만 가면서까지 이끌리듯 억지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를 둘러싼 조건이나 형편만 살핀다면 무모하달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슬슬 눈치만 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내가 한 가지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 실제 공사가 벌어진다면 나에겐 저와 같은 풍부한 경험을 쌓은 든든한 친구가 있다는 점이었다.


궁리 사옥의 설계를 담당할 건축가가 정해지고 내가 생각한 어설프기 짝이 없는 희망사항을 보냈다. 그리고 별다른 무리 없이 설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처음부터 내가 감당 가능한 정도로만 짓자고 했고 크게 무리를 할 수는 없었다. 임대가 되면 건물 유지에 크게 도움이 되리란 생각을 안 한건 아니지만 텅텅 빈 공실로 있을 경우도 생각해야 했다. 그저 날씬하고 소박한 건물이면 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설계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 설계 사무실에 몇 가지 요구사항을 이야기 할 때 퍼뜩 불암산 중턱에서 친구와 나눈 대화가 생각이 나서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혹 맨 꼭대기 층에 천창(天窓)을 달면 어떨까요?” 그러나 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한 것이었고 나도 썩 비중있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또 그만한 일은 나중 실제 시공할 때 얼마든지 반영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해서 그 이후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집이란 무엇일까.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내가 그간 건물을 꿈꾸면서 가진 생각이나 메모를 여기에 차곡차곡 공개하려고 한다. 건물을 지으면서 건축주로서 건축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기는 했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학창시절부터 벼락치기는 몸에 밴 습관이라서 하루 아침에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부딪히고 깨지고 나서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3.

궁리출판 사옥을 의뢰하면서 설계사무실에 처음 보낸 개념도가 여기에 있다. 그동안 많은 회의와 아이디어, 희망사항과 설계변경 등 우여곡절 끝에 궁리는 설계도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존경하는 건축가를 만난 행운에다가 설계과정이 너무 원만하게 진행되는 것 같아 무언가 놓치거나 빠진 게 없을까, 오히려 걱정이 들 정도였다. 어느 날, 설계사무소의 실무 직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언뜻 이런 심사를 슬쩍 내비쳤더니 돌아오는 말이 내입을 쑥 다물게 했다. “대표님. 그렇게 말씀 하시면 서운합니다. 보시기에는 간단할지 몰라도 우리는 이 설계를 위해서 밤낮없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답니다!”


두 장의 그림을 보면 실로 엄청나고 어마어마한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그야말로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한 듯하다. 꼼지락 꼼지락 아무렇게나 나눈 칸들이 저리 어엿한 공간으로 자리잡을 줄이야! 이제 그런 고민의 시대는 끝나고 실제 시공에 시간에 들어선지 어느덧 한 달. 하늘로 향하는 건물인데 땅속으로 먼저 들어가야 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다. 이제 차츰차츰 틈이 생기고 그 틈에 공간이 들어서고, 내부와 외부가 나뉘어지고, 유리창이 달리고, 그 유리창으로 바깥 풍경이 쫄깃하게 수렴될 것이다. 그때까지도 끊임없이 나의 내부에서 흘러나올 생각은 바로 이것이겠다. 집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