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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 | 『기술에게 정의를 묻다』를 펴낸 이채리 저자 인터뷰



Q. 안녕하세요, 교수님. 우선 독자 여러분에게 첫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한양대학교에서 과학철학 교양 강좌를 담당하고 있는 이채리입니다. 저는 주로 유전공학, 포스트휴먼, VR과 같은 과학기술을 윤리 및 철학을 통해 접근하는 연구를 전공으로 하고 있고,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과학기술이 도발하는 문제들을 토론하며 풀어가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한양대에 재직한 지 14년 차가 되었고, 학생들과 함께하는 수업의 즐거움도 지나온 세월만큼 무르익은 듯합니다. 이제 학생들과 나누던 수업의 즐거움을 강의실 밖 세상과도 나누고 싶어 수업 내용을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기술이 불러일으키는 윤리적 문제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고 논쟁하는 즐거움이 독자 여러분에게도 잘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Q. 이번에 출간된 『기술에게 정의를 묻다』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흔히 ‘과학에게 정의를 묻다’ ‘과학기술에게 정의를 묻다’라고 할 수도 있는데, ‘기술에게 정의를 묻다’라고 지으신 까닭이 궁금합니다.


A. 이 책은 제가 담당했던 강의에서 학생들이 가장 좋아한 7가지 테마를 골라 구성하였습니다. 그 7가지 테마는 ‘똑똑해지는 약, 먹어도 될까?’, ‘잊고 싶은 기억, 지울 수 있다면?’, ‘아이의 유전자, 선택할 수 있다면?’, ‘현실 대신 가상현실?’, ‘로봇과 함께 사는 세상?’, ‘동물실험, 정의로운가?’, ‘휴먼 다음엔 포스트휴먼?’인데요. 모두 현대의 최첨단 기술을 윤리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테마입니다.


예를 들어 뇌과학 기술을 이용해 똑똑해지는 것은 정의로운 일인지, 기억을 지우는 것은 옳은 것인지,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해 아기의 유전자를 맞춤하는 것은 정당한 것인지, 가상현실 기술 때문에 현실이 사라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로봇 기술이 발전한 세상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과학기술의 연구와 발전을 위해 이용되는 동물실험은 정당한 것인지, NBRIC 기술로 기계와 몸을 결합하여 포스트휴먼이 되는 것은 환영할만한 것인지를 탐색합니다. 기술이 도발하는 문제들을 옳음, 정당성, 정의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거지요. 즉, 기술에게 정의를 묻는 겁니다. 그래서 책 제목이 『기술에게 정의를 묻다』입니다.


여기에서 ‘기술’은 과학이론을 실제에 적용하여 인간에게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을 의미합니다. 일상적인 의미에서 ‘과학기술’과 같은 의미이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 ‘과학’과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과학기술’은 통상적으로 과학의 성과를 실현하여 실용화하기 위한 기술을 의미하고, ‘과학’이라는 단어는 흔히 ‘기술’과 구별되지 않고 사용되니까요. 그래서 ‘과학에게 정의를 묻다’나 ‘과학기술에게 정의를 묻다’로 책 제목을 지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과학’의 사전적 정의(사물의 현상에 관한 보편적 법칙을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지식체계)가 실용적인 측면의 기술과는 거리가 좀 있는 데다, 책 제목으로 쓰기에 ‘기술’의 어감이 ‘과학기술’보다 더 좋아 최종적으로 ‘기술에게 정의를 묻다’로 정했습니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에요.^^


제목의 ‘기술’이라는 단어가 좀 추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요. 이 책에서 ‘기술’은 뇌 향상 기술, 유전공학 기술, 로봇공학 기술과 같은 과학기술을 뜻하고, 그런 기술에게 7가지 테마로 정의를 묻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라고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앞서 말씀하셨듯 이 책에는 ‘똑똑해지는 약, 먹어도 될까?’ ‘잊고 싶은 기억, 지울 수 있다면?’ ‘아이의 유전자, 선택할 수 있다면?’ 등의 기술의 주요 테마들이 등장합니다. 논쟁의 대상이 된 7가지 테마의 과학기술은 어떤 기준으로 고르셨는지요?

A. 뇌신경과학, 유전공학, 컴퓨터공학, 로봇공학, 나노공학 등 최첨단 과학기술이 불러오는 여러 문제들 가운데 7가지 이슈를 선별해서 책에 담은 것인데요. 선별 기준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흥미로운 테마, 둘째, 학자들 사이에서 핫하게 논쟁 중인 테마, 셋째,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서 어느 한쪽이 우세하다고 보기 어려운 테마입니다.

이 7가지 테마 모두 이 자체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게 하는 매력이 있어요. 최첨단 기술을 다루기에 신선하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똑똑해지는 약, 먹어도 될까?’는 뇌향상과 관련하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똑똑해지는 약을 먹으면 좋은 일이 많은 대신 부작용이 있지 않을까? 부작용만 없다면 먹어도 되는 것일까? 정상적인 사람이 약을 먹는 건 속임수가 아닐까?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수 있을까? 향상이 나쁜 것이라면 커피도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닐까? 부자들만 똑똑해지는 약을 살 수 있을 텐데? 약값을 떨어뜨리면 되지 않을까? 등등, 이런 식으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테마에 빠져들게 되지요.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상과 비정상, 평등과 불평등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하게 됩니다. 흥미롭지 않나요?


그리고 책에서 다루는 테마들은 모두 학자들이 현재 논쟁 중인 핫한 이슈들입니다. 인지향상, 기억제거, 맞춤아기, 로봇, VR, 포스트휴먼 등 다루고 있는 기술들이 모두 최신 기술이자 미래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기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현재 맞춤아기로 태어난 아이들이 세 명 정도 있지만, 미래에는 더 많은 맞춤아기가 태어날 가능성이 있고, 기계가 인간 몸속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최근이지만 미래에는 우리 몸의 대부분이 기계로 대체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일들은 좋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학자들은 열심히 논쟁하고 지혜를 모으는 중입니다. 이렇게 이 책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살아 있는 이슈들을 다룹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논쟁들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서로 팽팽합니다. 한쪽이 우세한 입장을 펼쳐 결론이 나버린 논쟁이 아닌 거죠. 기억을 지우는 것이 옳은지, 유전자를 맞춤하는 것이 정당한지, 포스트휴먼은 공포스러운 것인지, 한쪽 말을 들으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고, 다른 쪽 입장을 들으면 또 그 말이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양측의 의견이 설득력 있어요. 그래서 논쟁을 지켜본 사람들은 자연스레 양측의 견해를 참고하여 자신만의 입장을 만들게 됩니다. 그게 이 책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Q. 한양대에서 ‘기술시대의 인간과 윤리’, ‘과학에게 정의를 묻다’라는 강좌를 꾸준히 진행해오면서, 베스트티처상, 강의혁신상 등을 수상하셨습니다. 강의를 잘하는 비결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는지요?


A. 글쎄요. 제가 담당하는 이 과목들은 인간의 본성, 평등, 행복, 도덕, 정의와 같이 어려운 철학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데요. 그럼에도 학생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도 어려운 철학 이론들을 비교적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강의 내용과 학생들이 참여하는 토론 수업이 비결이 아닐까 합니다. 이론이나 개념을 예시를 들며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토론을 통해 생각의 크기를 넓히도록 유도하는데, 학생들이 그 부분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Q. 그렇다면, 수강하는 학생 입장에서 토론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이나 비결을 꼽는다면 어떤 걸 말씀해주실지요?

A. 우선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경청합니다. 토론의 기본은 잘 듣는 것이죠. 그런데 요즘 우리 학생들은 말을 해야만 점수가 기록되는 고등학교식 수업방식에 익숙해져서인지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을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토론의 전체 흐름을 잘 보세요. 누가 어떤 말을 하는지, 그리고 그 말에 대해 어떤 반론을 제시하는지 잘 듣습니다. 경청만 잘해도 토론을 잘할 수 있어요.


다음으로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납니다. 토론은 싸움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날카로운 반론을 제시하면, 내가 진 것이 아니라 나에게 도움이 된 것입니다. 좋은 반론 때문에 내 주장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거니까요. 상대를 이겨야겠다고 생각하면 토론에서 지켜야 할 매너가 사라지고 인신공격의 오류를 범할 수도 있으며 토론 자체가 부담이 됩니다. 토론은 부담스럽지 않아야 합니다. 즐거워야 해요. 그래야 잘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자료 조사보다는 자신의 생각으로 토론해보세요. 자료에 의존하다 보면 토론이 자료싸움이 되거나 누가 더 많이 아는가를 겨루는 게임이 되기 쉽습니다. 자료가 아닌 자신의 생각으로 토론하면 생각의 크기가 커질 겁니다. 생각을 잘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토론도 잘하게 됩니다. 생각과 토론은 선순환합니다. 한 번 시도해보세요.


Q. 현재 가장 관심을 쏟는 연구 분야가 있으신가요? 또한 앞으로 더 집필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살짝 귀띔해주세요.


A. A.I 윤리, 로봇공학 윤리에 관심이 있어서 공부하는 중입니다. 이 책에서도 한 챕터를 다루었는데요. 더 넓고 깊게 연구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진행하는 토론 수업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아서 토론과 관련한 책도 집필할 계획입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요?

A. 『기술에게 정의를 묻다』에는 과학기술, 윤리, 철학, 토론이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 최첨단 기술의 발전 현황과 미래의 모습을 알 수 있고, 그 기술이 불러일으키는 심오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파헤쳐볼 수 있으며, 학자들이 핑퐁 게임하듯 토론하는 현장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의, 평등, 권리, 인간의 기준, 존엄성의 근거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에 관심 있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 책에 담긴 고민과 토론들이 기술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단순히 기술이 제공하는 풍요 속에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 존재니까요. 우리는 기술에게 정의를 물을 필요가 있고, 또한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과연 어떤 기술이 정의로운 것이고, 어떻게 기술을 사용해야 바람직한 것일까요? 우리에게 이로움을 주는 과학기술의 이면에는 어떤 문제가 감추어져 있고, 그 문제들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요? 『기술에게 정의를 묻다』는 독자들과 함께 기술에게 정의를 묻는 여정을 떠나자고 제안합니다. 이 책이 기술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흥미로운 토론과 다양한 생각을 하는 발판이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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