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작가│『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거의 모든 것1』을 펴낸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인터뷰



Q.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를 출간한 뒤로 『이즈미 도쿠지, 일본 최고재판소를 말하다』를 번역하는 등 법조 관련 도서들을 펴냈습니다. 이번에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거의 모든 것 1』을 준비했습니다. 우선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설명해주신다면요?


A. 우리나라 최고 사법기관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두 곳입니다.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는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현대사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살핀 책입니다. 가령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을 다루면서 대리인단 문재인 변호사, 주심인 주선회 재판관 등 관련자들을 인터뷰했습니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거의 모든 것』은 대법원의 작동방식을 대법관들의 논리에 집중해 밝혔습니다. 21세기 주요 판례가 나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법관을 인터뷰했습니다. 이를 통해 대법관들이 서로를 어떻게 설득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앞으로 3편까지 계획한 시리즈의 첫 권입니다. 개성이 다른 대법관들을 차례로 인터뷰할 계획입니다.


대법원은 1년에 7만 건 이상 처리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대법관 4명으로 이뤄진 소부(小部)에서 합니다. 20~30건만 대법관 전원과 대법원장까지 13명 최고법관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결론을 냅니다. 법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건이기에 대법관들의 치열한 논리 싸움이 벌어집니다. 이 전원합의체 사건을 이 책에서 다뤘습니다.


Q.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거의 모든 것 1』의 부제가 ‘갈등이 설득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전원합의체 10건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궁금한데, 저 부제와도 관련이 있을까요?


A. 사건이 소부에서 끝나지 못하고 전원합의체로 가는 이유는 합의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소부는 전원일치로 운영합니다. 법조 경력이 30년 가까운 대법관 4명의 의견이 갈린다는 것은 양측이 논리적으로 충분히 자신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사건을 두고 전원합의체에서 거듭해서 토론을 벌이는데, 치열하게 서로를 설득하면서 상대 대법관의 입장을 변경시킵니다.


대법원에는 대법관을 이론적으로 보좌하는 연구관이 있습니다. 가장 가까이서 대법관을 관찰하는 이들은 전원합의체를 이렇게 말합니다. “대법관이 논리력과 설득력이 모두 있으면 자기 주장을 다수의견으로 만들어내고, 논리력은 있지만 설득력이 없으면 자기 한 표로 남는 것이며, 둘 다 없으면 다수의견의 거수기가 된다. 대법관들의 세계도 관계다. 그들도 (다른 사람의 의견과 충돌해) 관계가 틀어지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 논리로 무장한 투사만이 전합에서 이길 수 있다.”


이 책을 쓰면서 100건 가까운 전합 판결을 검토해 18건을 인터뷰하고 초안까지 작성했습니다. 다시 출판 단계에서 10건으로 추렸습니다. 이론이 너무 복잡한 소송법 사건이나 판결의 쟁점이 이미 많이 알려진 사건을 제외했습니다. 아무런 법률 지식이 없어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사건을 골랐습니다. ‘나라면 상대방을 어떻게 설득할까’를 상상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일상에서 상사를 동료를 연인을 설득하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합니다 ^^.

Q. 저자 소개에서 스티븐 브라이어 미국 연방대법관을 비롯해 세계 7개국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을 인터뷰한 이력이 나옵니다. 외국의 대법관들을 인터뷰하면서 한국의 대법관들과 어떻게 다르다고 느끼셨는지요.


A. 지금까지 미국, 독일, 유럽인권재판소, 이탈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오스트리아, 일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방문해 대법관들을 인터뷰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뉴욕타임스의 애덤 립택 기자가 저의 기사를 SNS에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제 자랑이어서 부끄럽습니다만 유례가 없는 연속 인터뷰를 한국 언론에서 처음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터뷰에 성공한 배경에는 한국 법원 수준이 이들 나라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 있습니다. 인터뷰 현장에서 한국에 관한 얘기를 나누게 되는데, 한국에서 법의 지배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습니다. 헌재 결정으로 대통령이 물러나는 극적인 사건 외에도, 법원이 의회와 행정을 견제해 인권을 보호하고 있다고 보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사법을 신뢰하는 편입니다. 전관예우 문제나 사법농단 사건을 들면서 법원을 자주 비난합니다. 하지만 의회와 행정, 언론, 검찰에 대한 감정과 비교하면 법원을 그렇게까지 못 믿는 것은 아닙니다. 이유는 대법원 판결이 통념과 상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원칙을 지켜왔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반발 더디게 때로는 반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다른 말로 논리의 힘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그런 논리를 이 책에서 다뤘습니다.


Q. 사법전문기자로 일하면서 가장 시간을 많이 들인 것이 ‘판례 읽기’라고 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공부했는지 궁금합니다. 이 책 원고를 읽어본 변호사들이 새로운 이야기여서 매우 흥미롭다고 했다는데, 판결에서는 알 수 없는 내용이 무엇일까요?


문학평론가 김윤식은 평생 월평(月評)을 썼습니다. 77세 인터뷰에서 “내가 아직도 젊은 작가들의 문학 월평을 월간지에 쓰지 않소. 쓰려면 최소한 작품당 세 번씩은 읽어야 해”라고 했습니다. 기자 출신인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1년 동안 보는 영화가 200~300편이라고 합니다. 미국연수 시절에는 1000편 넘게 봤다고 합니다. 제가 법조를 담당하는 기자로서 판례를 읽는 것은 최소한의 직업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판결문의 구조도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비평은 고사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를 찾아가 의문이 나는 부분을 물었습니다. 오래된 판결을 들고 온 기자가 기특했는지 다행히 법전을 펼쳐가며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렇게 가르쳐준 판사들 가운데 인터뷰이 권순일 대법관이 있습니다. 그 시절 권순일 판사가 지금의 저보다 젊습니다. 판례를 읽으면서 청춘을 보낸 셈입니다. 이후로 대학원에 진학해 법학 공부를 시작했고 10년이 됐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려진 게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퇴직한 최고재판소 재판관들 상당수가 책을 씁니다. 제가 번역한 이즈미 도쿠지 재판관의 저서도 그중 하나입니다. 종신인 미국 대법관들은 임기 중에 책을 씁니다. 앞서 얘기한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도 여러 권을 남겼고, 저도 가지고 있던 책에 사인을 받았습니다. 우리만 그런 책이 없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거의 모든 것 1』 초안을 읽어본 법조인들이 반색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Q. 리걸 브레인(legal brain)이란 용어를 쓰셨는데, 요즘 새롭게 등장한 어휘인지요? 리걸 마인드(legal mind)와는 어떤 면에서 다르고 같은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이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좋을지 이야기해주신다면요?

A. 리걸 마인드는 법과대학에서도 자주 쓰이는데 영미권에서는 보이지 않는 표현입니다. 법적 소양을 가리키는 단어는 리걸 콘셔스니스(legal consciousness)라고 합니다. 아무튼 우리가 오랫동안 써온 리걸 마인드가 다소 낡은 은유 같아 ‘리걸 브레인’이란 단어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법률 인공지능 서비스를 가리키는 단어로 쓰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써 놓고 읽어보니 어감이 좋고 알기도 쉬워 사용하게 됐습니다.

책에 나오는 10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찬성과 반대로만 입장을 선택해도 1024가지 입장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13명 최고법관은 몇 가지 패턴 안에 있습니다. 가장 독특하게 입장을 드러낸 사람이 이번 제1권 인터뷰이인 권순일 대법관입니다. 그와 모든 전원합의체 사건에서 의견이 같았던 대법관은 없고, 그나마 비슷했던 경우라도 합치 비율이 높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권순일 대법관이 주심인 경우 그 자신이 소수의견에서 출발해 다수의견으로 끝난 경우가 많습니다. 대법관들을 설득해 낸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젊은 독자들이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이해하고 나아가 사회와 일상에서 상대를 설득하는 능력과 수용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일상도 사회도 갈등이 설득으로 바뀌기는 그 순간을 모두가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