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작가┃『별 방랑자』를 옮긴 번역가 이성은 인터뷰

Q잭 런던의 작품을 두 권 번역하셨습니다. 잭 런던을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A경험을 극대화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쌓은 작가란 생각이 떠오릅니다. 런던의 소설 대다수가 젊은 시절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을 소재로 삼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쉽게 접할 수 없는 분야의 삶을(가령 배를 타는 선원이나 극지를 다니며 금을 캐는 사람들의 삶) 더 생생하게 접할 수 있게 하는 것 같아요.



Q『별 방랑자』를 작업하며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A저는 번역가가 배우와 비슷하다란 생각을 합니다. 일단 작업을 시작하게 되면 내 목소리가 아닌 작품 속 인물의 목소리를 내야 하니까요. 저는 30대 여성이지만 작품 주인공이 저와 성별도 다르고 나이대도 다른 사람이라 한다면, 그 사람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주위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텔레비전을 참고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자꾸 변하지 뭐예요. 처음에는 40대 남자교수였지만, 곧이어 젊은 귀족 남성, 또다시 대여섯 살 된 꼬마아이, 그다음에는 뱃사람 등등… 그래서 작업하는 내내 이 목소리에서 저 목소리로 옮겨가려고 하다 보니 마치 제 안에 여러 자아가 들어가 있다는 기분이 들더군요. 뭐랄까, 다중인격자라 부를 수 있을까요? 모노 드라마를 하는 배우 같다는 기분도 들고요. 주인공 안에 숨겨 있던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까다로운 작업이었습니다.



Q ∥  사진을 즐겨 찍으시고, 종종 궁리 앞으로 멋진 사진도 선물해주셨습니다. 그간 찍은 사진 중에서 『별 방랑자』와 어울릴 만한 작품이 있다면 독자 여러분께 한두 컷 정도 소개해주시면 어떨까요?



A『별 방랑자』란 제목이 알려주듯 이 작품은 길 위에 서 있는 작품 같습니다. 교도소 지하 감옥을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나갔다가 들어오기를 여러 번 반복하더니 또다시 주인공은 정처 없이 죽음의 길로 나서더군요. 대럴 스탠딩이 죽음 이후 어떤 삶을 만나게 되었을까 상상해보면, 언제 돌아올지 기약 하나 없이 길을 나선다는 기분이 들면서 그저 머릿속이 희뿌옇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부족하나마 제가 고른 사진은 안개가 내린 어느 아침 사진입니다. 안개 너머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듯이 이 삶 너머 뭐가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잖아요. 삶과 삶 이후라는 미지의 길을 나서는 불안하면서도 설레는 기분을 안개가 내린 풍경이 잘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Q『별 방랑자』는 잭 런던의 만년 작품입니다. 환생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을 쓰고 런던은 1년이 지나지 않아 40년의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그에게 생과 죽음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A잭 런던은 생과 죽음을 둘로 보지 않고 하나로 본 것 같습니다. 생의 연장이 죽음이고, 죽음은 또 다른 생이 이어진다고 말이죠. 그래서 40년의 짧은 생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면서 자신이 살았던 삶을 소설로 고스란히 표현한 다음 아무 미련 없이 새로운 길로 걸어간 것 같아요. 물론 이 질문에 대해 가장 좋은 답을 이야기 해줄 분은 잭 런던이겠지만요. ^^;



Q『별 방랑자』는 일종의 모험 소설입니다. 종횡무진 시간과 장소를 넘나들며 여행하는 주인공이 나오지요. 만약 선생님께서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어느 시대 어떤 장소로 떠나고 싶은지요?

A∥  세상이 탄생되었던 바로 그 순간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난 까닭이 모두 풀릴 것 같거든요.



Q대학과 대학원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하고 번역가로 활동 중입니다. 번역가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A학생 시절, 우연한 계기로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영어를 보면서 한글로 글을 옮기는데 마치 강물이 흘러내려가듯 제 손가락 끝으로 글이 술술 풀려나지 뭐예요. 그 경험이 너무나 신기했답니다. 눈으로 읽은 원문이 제 머릿속 뇌 구비구비를 따라 흘러 돌아다니더니 어느새 한글로 나오는 거죠. 그 자연스러운 흐름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머릿속 물길을 트느라 엄청 삽질을 하고 있지만, 그때 그 시원한 흐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Q영어영문학을 공부하면서 매료된 영미작가나 작품을 소개해주신다면요?

A미국 작가 셔우드 앤더슨이 쓴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가상의 동네 ‘와인즈버그’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한 인물을 중심으로 옴니버스 형식으로 모아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루저라 불릴 만한 사람들이 어떤 욕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린 작품인데, 이 소설을 읽고 났을 때의 그 낯설음과 괴상함은 소설만이 줄 수 있는 느낌이라 생각합니다.



Q평소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시나요?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을 꼽는다면?

A저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것, 표현하지 못한 것, 표현하지 않았던 것을 언어로 탄탄하게 표현하는 작가들을 참 좋아합니다. 그 중 단연 으뜸이신 분은 김훈 선생님이 아니실지. 선생님 책은 한 구절구절이 너무나 감탄스러워 책을 읽기가 아까울 정도이더라고요.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지요. 우리말을 공부하는 외국인 친구에게 우리말을 자랑하고 싶어 선생님의 『자전거 여행』을 선물한 기억이 나네요. 김훈 선생님처럼 알랭 드 보통이란 작가도 남들은 표현하지 못한 방법으로 세계와 인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 같아요. 그 분의 책은 자꾸 곱씹어 읽는 맛이 있지요. 많은 분들이 그 분 책을 좋아하시겠지만 저는 특히 『행복의 건축』이라는 책을 좋아합니다. 최근 들어 새롭게 좋아하게 된 작가로 김경욱 씨도 계십니다. 팔색조 같다고나 할까요. 나온 작품마다 다양한 소재로 다양한 목소리를 뽐내시는 솜씨가 정말 대단합니다. 특히 『천년의 왕국』이란 소설은 조선에 표류한 애덤 스트랭 에피소드를 풀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Q끝으로 ‘잭 런던 걸작선’을 아직 만나지 못한 독자 여러분께 책을 소개해주신다면요?

A소설은 결코 현실과 떨어질 수 없는 장르입니다. 현실이 없다면 현실을 양분으로 먹고 사는 소설은 태어날 수 없겠지요. 잭 런던은 그런 소설의 특징을 가장 잘 파악한 작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신이 몸소 경험하고 체험한 다양한 현실을 바탕으로 사실감 넘치는, 그래서 더 그럴듯하고 있음직한 허구의 세계를 창작해냈거든요. 그의 소설은 『야성이 부르는 소리』에서처럼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롭고 낯선 삶이자, 『강철군화』에서처럼 우리가 어느 정도 경험하고 있는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100여 년 전 살았던 런던이지만 그가 뿌리박고 있던 삶은 여전히 우리가 뿌리박고 있는 삶이기도 합니다. 그런 까닭에 런던의 소설은 낯설면서도 친밀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별 방랑자』는 그 모든 다양한 삶을 모으고 모아 마치 인류의 파노라마 같은 웅장한 그림을 선사해준답니다. 그 긴 세월동안 다양한 모습 다양한 경험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다고 지나갔음을 잭 런던은 이야기하면서, 우리도 역시 그 흐름 속에 있음을 알려주지요. 그러면서 이 유구한 인류의 방랑 속에 어떤 어려움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쉼 없이 빛나고 있던 의지라는 보석이 우리에게도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잭 런던의 책을 통해 자신 안에 빛나고 있는 의지라는 보석을 발견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