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책 밖에서 만난 작가┃『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기획한 박용준 인터뷰


Q이번 공동선 총서를 인디고 연구소가 기획했다고 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 곳인지요? 인디고 서원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청년 연구원들이 주축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울러 인디고 서원의 요즘 근황도 들려주세요.

A∥ 인디고 연구소는 인디고 서원에서 성장한 청년들이 개인의 성장을 넘어 공동의 작업을 통한 지속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고자 지난 2008년 발족한 공부공동체입니다. 쓸모 있는 인문적 실천과 공동의 전 지구적 참여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일본에서 가라타니 고진 선생님을 인터뷰하고 왔습니다. 가라타니 선생님은 공동선 총서의 두 번째 주인공이시기도 한데요. 공동선의 의미가 무엇인지, 청년 세대의 역할은 무엇인지, 세계공화국은 어떻게 탄생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뜻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답변 사이사이에 느껴지는 가라타니 선생님의 원대한 꿈과 굳은 신념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Q슬라보예 지젝 인터뷰집은 ‘공동선 총서’의 첫 번째 책입니다. ‘공동선’이라는 말이 조금 낯선데, 무슨 뜻인 지부터 물어보고 싶습니다. 또한 시리즈 이름을 이렇게 지은 까닭이 있는지요? 올해 8월 열릴 2012 인디고 유스 북페어(Indigo Youth Book Fair)의 주제도 ‘공동선을 향하여(Toward the Common Good)라고 알고 있습니다.


A∥ 공동선이란 삶이라는 공동 투쟁의 장이 궁극적으로 향하고 있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환영이 1%와 99%라는 새로운 형태의 장벽을 만들어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진실의 추구이자 정의에 대한 정당한 요구인 것이지요. 불가능해 보이는 시도를 가능한 미래로 바꾸고자 하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공동선이란 자유와 평등, 해방의 공동체를 이루는 근본 구조의 이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배제와 간극의 논리를 넘어 공동의 삶의 윤리와 양식을 무수한 투쟁의 이름들 속에서 함께 추구하고자 함이지요. 이것은 끝나지 않는 기획이자 불가능한 시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고통 속에서 절망에 빠진 모든 세계 시민의 기원이자 희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Q공동선 총서 첫 번째 인물로 지젝을 꼽은 까닭은 무엇입니까? 단지 요즘과 같은 혼란스러운 시대에 사회의 여러 문제점들을 순발력 있게 짚어내며 발언하기 때문인지요? ‘공동선’이라는 키워드에 지젝은 어떤 부분에서 부합되는 인물인지요?

A∥ 지젝은 우리가 자명하다고 믿는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통해 의미 있는 파열음을 남기는 철학자입니다. 파열음을 내는 지젝의 방식은 매우 독특하지요. 지젝은 이 세계의 치명적 급소, 다시 말해 골조물의 이음새 부분을 정확하게 겨냥하여, 지젝의 질문 앞에 상대가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도록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젝을 읽어야 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도저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세계도 지젝의 통찰력 앞에서 맥없이 주저앉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젝에 따르면 공동선이란 '자유를 향한 공동투쟁'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여기서 '공동'이란 배제된 자와 포함된 자를 가르는 장벽을 허무는 보편적 해방의 근본 조건을 뜻합니다. 이러한 공동성, 혹은 보편성이야 말로 진정한 좌파의 기획이자 그 궁극지점인 것이지요. 지젝은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과제란 '도덕적 다수'의 자리를 점령하기 위한 정치적 이론화 작업과 실천적 네트워크의 구축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인디고 연구소의 기획 또한 지젝의 지적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지젝을 만나러 다녀온 슬로베니아 여정에서 인상 깊었거나 기억에 남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으면 들려주세요.

A∥ 우선 인디고 연구소 선임연구원이신 브라이언 파머 교수와의 재회가 기억에 남습니다. 지젝과의 인터뷰를 위해 스웨덴에서 슬로베니아로 날아오셨어요. 다시 만나서 함께 인터뷰 질문을 준비하고, 주제에 대해 논의도 하며 밤새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또한 지젝의 작은 아파트와 그의 친절함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현관 입구에 붙어 있던 스탈린 포스터, 책과 DVD로 가득 차있던 작업실 겸 서재, 장난감이 흩어져 있던 어린 아들의 방, 그리고 음료수만 들어있던 작은 냉장고까지. 지젝은 4층인 자신의 집에서 나가는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농담을 하며 저희를 1층까지 친절하게 데려다 주었어요. 물론 처음 만날 때에도 직접 거리로 나와 저희를 자신의 집까지 안내해 주었지요. '동유럽의 기적'이라 불리는 대철학자의 소박함과 친절함, 그리고 그의 빛나는 유머가 아직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Q공동선 총서를 준비하면서 해당 학자들의 저서들을 거의 빠짐없이 탐독하며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기획과 실천의 모태가 된 것이 바로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박용준 팀장에게 책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합니다.

A∥ 인터뷰를 하기 전에 인터뷰이의 저서 및 기사를 빠짐없이 챙겨보는 것은 인터뷰어의 기본이자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소소한 개인사적 경험까지도 모두 알고 인터뷰에 임하다 보니 때론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저희의 이런 철저한 정보력(?)에 놀라는 분들도 계셨지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책읽기는 영혼을 놀라게 한다. 책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특이한 비밀 결사를 구성한다. 한 권의 책을 펼치면, 영혼 안으로 강렬한 한 세계가 솟아올랐다." 결국 책이란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고 무한한 우주-도서관으로의 진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부터 삶의 중심이 건설되고, 새로운 세계가 창조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Q얼마 전 공동선 총서 두 번째 학자로,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을 인터뷰하러 일본에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인디고 글로벌 인문학 프로젝트팀은 그 동안 하워드 진, 지그문트 바우만, 노암 촘스키 등 수많은 외국 학자들을 만나 ‘인간과 가치’를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외국의 학자들은 전 세계의 독자들을 환대하고 그들과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주제로 국내 학자들과도 소통을 해본 적이 있는지요? 또한 인디고 팀이 국내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를 누빌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A∥ 인디고 서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세계에서 실천입니다. 아무래도 해외 석학들과의 인터뷰가 부각되다 보니 국내에서 시도는 주목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아쉬운데요, 국내 저자와의 대담 행사인 <주제와 변주>를 현재 58회까지 진행하였고, 세미나의 형식으로 국내의 학자 및 연구자들과의 소통도 계속해서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를 다니며 많은 이들을 만나 배울 수 있었던 경험은 정말 귀하고 경이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 때로는 비행기를 4번씩 갈아타면서 30시간 넘게 한 사람을 만나러 가기도 했지요. 이러한 에너지의 근원은 사실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 아니 만나야만 하는 절실한 당위가 저희를 이끈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도 저희를 열린 마음으로 환대해주셨던 진실한 인간들의 고귀한 품성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지요. 아직도 감사하게 여기고 있고 국제인문잡지 인디고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습니다.



Q지젝, 가라타니 고진 외에 공동선 총서로 담고 싶은 인물이 있는지요? 또한 ‘공동선’이라는 주제 이후에는 어떤 주제에 천착할 계획인지 궁금합니다.

A∥ 공동선 총서의 다음 인터뷰이로는 알랭 바디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인터뷰를 하기도 했던 지그문트 바우만 선생님도 기존의 논의를 확장시켜 인터뷰를 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크 랑시에르, 샹탈 무페, 클로드 르포르 등도 가능한 인터뷰이로 고려중입니다.

그리고 윤리적 주체의 형성과 탄생에 대해서는 계속 공부를 해나갈 것이고, 가라타니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혁명적 정치 주체와 가능한 미래 세계의 구조(예를 들어 '세계 공화국')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탐구할 계획입니다. 나아가 이를 어떻게 하면 삶의 장 속에서 실천할 수 있을지도 함께 고민해 나가고자 합니다.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