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작가┃『사랑하면 보이는 나무』를 쓴 허예섭&허두영


Q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2004년 봄 어느 주말, 아들과 함께 목욕을 갔다 오는데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아들이 아파트 현관 앞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더군요. 아무 생각 없이 아내에게 그 곤란한 임무를 떠넘겼지요. 그날 저녁, 아내가 “당신은 과학에 대해 잘 알잖아요. 문과 출신인 내가 나무에 대해 뭘 알겠어요? 당신이 예섭이한테 알려주는 게 어때요?”라고 하더군요. 며칠 뒤 아들이 또 물었습니다. “아빠, 저 나무 이름이 뭐예요?” “……, 인터넷 찾아봐.” 며칠 전의 상황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인터넷을 뒤져보라고 했다가, 아뿔싸!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10년 넘게 과학기자로 지내면서 일반 대중에게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려 애썼는데, 정작 제 아들과 함께 나무 이름 하나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Q요즘 들어 나무를 소재로 한 책들이 부쩍 출간되고 있습니다. 이 책만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A(아들) 그 많은 소재들 중에 왜 하필 나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무는 우리 가까이에 살고 있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책 제목처럼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고 얼마나 우리들에게 필요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책입니다.


(아버지) 최근 생활수준이 높아져 집안에서 화초를 재배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지방자치단체가 가로수와 공원을 정비하고 있으며, 학교에서도 정서교육의 목적으로 다양한 나무와 풀을 심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식물에 대한 관심이 늘어 식물을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하고 저술한 서적들이 기획, 출판되고 있지요.

과학교육에서 학교밖 교육이 학교 교육만큼 중요하지만, 학교밖 교육은 대부분 학원이나 동아리 활동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학교밖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부모에게 있지만 과학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않은 부모는 물론, 과학을 전공한 부모조차도 과학교육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존재지요. 생활 그 자체에서 과학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집과 학교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를 골라 함께 관찰하고 그 결과를 글과 사진으로 정리하여 엮은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와 함께 나무를 관찰하면서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 펴내는 과정에서 대화를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Q자작나무부터 호랑가시나무까지, 계절에 따라 52그루의 나무를 고른 기준은 무엇인지요?

A나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마가목 때문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던 나무지만, 무슨 나무인지 전혀 관심을 갖지 않다가 아들의 질문으로 그 존재를 알게 되었지요. 닥터 지바고가 흰 눈이 쌓인 산 속에 갇혀 있을 때 마가목의 빨간 열매를 보며 그의 연인 라라를 그리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볼 때마다 얼마나 아름다운 나무인지 매번 감탄하곤 합니다.


마가목을 알게 되자 그 화단에 있는 회양목, 주목, 측백나무, 향나무, 산수유, 앵두나무, 목련, 치자나무, 백당나무, 중국단풍 등에 대해 차례차례 공부했습니다. 아들이 다니는 당촌초등학교와 딸이 다니던 샛별유치원 주변에서 무궁화, 살구나무, 매화나무, 사철나무, 조팝나무, 명자나무를 미리 파악해두었지요. 아들이나 딸이 언제 물어볼지 모르니까요.

출근하는 길에 느티나무, 쥐똥나무, 이팝나무, 플라타너스, 등나무, 때죽나무를 눈여겨 봐두고, 아내와 함께 중앙공원과 탄천을 산책하는 길에 마로니에, 자귀나무, 배롱나무, 팥배나무, 회화나무, 느릅나무, 보리수, 박태기나무, 버드나무를 목록에 올렸습니다. 가족이 함께 불곡산에 오르면서 개암나무, 생강나무, 싸리나무, 아까시나무, 층층나무, 노간주나무, 물푸레나무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했고요. 우리 집을 기준으로 주변에 어떤 나무들이 분포하고 있는지 아예 ‘나무 지도’를 그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마가목 ⓒ신준환


이렇게 집을 기준으로 행동 반경 안에 있는 나무들을 정리하면서 소나무, 잣나무, 참나무, 벚나무, 대나무, 단풍나무, 개나리, 진달래, 장미처럼 누가 봐도 쉽게 아는, 너무 흔한 나무는 제외했습니다. 또 감나무, 배나무, 사과나무, 포도나무, 복사나무처럼 주로 과수원에서 자라는 과실 나무도 빼기로 했고요. 또 중국단풍, 백당나무, 가래나무, 낙상홍, 황매화처럼 약간 어렵게 느껴지는 나무도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백화제방(百花齊放)으로 온갖 꽃이 한꺼번에 흐드러지게 피더라도, 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제각기 다릅니다. 대부분 봄에 꽃을 피우기는 하지만, 꽃보다 잎이나 열매나 줄기가 더 아름다운 나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무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언제일까?


이 책은 겨울에서 시작하여 봄, 여름, 가을, 다시 겨울로 끝납니다. 1월 첫주부터 시작해서 1년 동안 한 주에 한 그루씩 이 책에 나온 순서대로 관찰하면 그 나무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작나무는 4월에 꽃을 피우지만 한겨울 눈 속에 서 있는 모습이 가장 멋지고, 오동나무는 6월에 꽃을 달지만 커다란 이파리를 떨어뜨리는 오동추(梧桐秋)의 늦가을에 오동동(梧桐動)의 호젓한 운치를 느낄 수 있거든요.



Q‘사랑하면 보이는 나무’라는 책제목을 염두에 두신 까닭은요?

A그렇게 많은 나무가 나와 가족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왜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까 싶습니다. 느티나무는 내가 출근하고 퇴근하던 길을 가로등처럼 지켜보고 있었고, 명자나무는 딸내미가 놀던 놀이터를 예쁘게 지키고 있습니다. 전설의 계수나무는 달이 아니라 화단에 우뚝 서 있고, 동화 속의 개암나무는 우리 집 바로 뒷산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호젓한 매화나무는 옛시조가 아니라 나의 술잔 속에서 꽃을 피우고, 높다란 벽오동은 봉황의 존재를 궁금하게 만들었지요. 앵두와 살구가 바로 옆에서 앙글앙글 피고 지고 다람다람 열매를 맺었는데, 그 동안 왜 한 번도 내 눈에 띄지 않았을까요?


<접시꽃 당신>을 사랑한 도종환 시인은 <배롱나무>에게서 배운다고 했습니다. “늘 다니던 길에 오래 전부터 피어 있어도/ 보이지 않다가 … (중략) … / 사랑하면 보인다고 사랑하면 어디에 가 있어도/ 늘 거기 함께 있는 게 눈에 보인다고”.


나무를 하나씩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서 나무들이 점점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는데, 왜 그 동안 한 번도 내 눈에 띄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사랑하면 보이는 나무>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평소에 이름조차 모르는 채 무심코 지나쳐 눈에 띄지도 않던 나무도 관심을 갖고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그 존재가 드러나면서 정말 사랑스러운 대상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Q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나무를 관찰하고 글을 써나가면서 겪었던 힘들었던 기억,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있으면 들려주세요.

A(아들)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쓴다는 게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생각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표현하고 싶어도 잘 안 되었는데, 아버지와 8년 동안 함께 글을 쓰다 보니 제가 의도한 이야기들을 훨씬 수월하게 표현하고, 글을 쓰는 형식과 문법, 맞춤법 등 많이 다듬어졌으며 사물을 좀 더 맛깔나게 표현하는 법을 많이 배웠습니다. 밤새며 작업할 때 가장 힘들었고 글을 쓰다가 자판을 잘못 쳐서 오타가 나와 문장이 엉뚱하게 바뀌어 아버지와 웃을 때가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아버지) 아들과 함께 나무를 관찰하고 글을 쓰면서 서로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기로 했습니다. 아들은 나무의 학명, 분류, 분포, 생태, 꽃말, 유래, 용도, 전설처럼 직접 관찰하고 조사해서 쓸 수 있는 영역에서, 아버지는 나무에 대한 인문학적인 영역에서 각각 접근하기로 했습니다. 공동저자로서 저의 고민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나무를 관찰하고 채집하는 데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글을 쓰는데 관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나무를 쓸지 정하면 그 나무를 관찰하고 잎을 채집해야 하는데, 키가 큰 나무는 잎을 관찰하고 채집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가죽나무, 마로니에, 플라타너스, 메타세쿼이아처럼 키가 큰 나무는 바닥에 떨어진 잎을 찾을 수 없으면 채집하기 위해 나무에 올라가야 했습니다.


경기도 용인의 한 마을을 지나다 기품있게 우뚝 서 있는 포플러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높은 언덕 위에서 바람이 부는 대로 반듯한 손바닥을 흔들며 ‘솨아솨아’ 소리를 내는 포플러를 보며, 아들에게 관찰하러 가자고 부추겼지요. 작은 개울을 건너 언덕을 올라갔더니 그 포플러는 예쁘게 단장한 전원주택의 정원 안에 있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개가 짖기 시작했습니다. 덩치가 나보다 큰 개가 짖기 시작하자 마을의 작은 개들이 덩달아 짖어댔지요. 조용한 마을에 개 짖는 소리가 크게 들리자 당황했지만, 목적은 달성해야 하는지라 나무 아래를 뒤졌지만 온통 무성한 풀밭이어서 포플러 이파리 한 장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개 짖는 소리에 놀란 주인이 나와 우리에게 뭐하느냐고 물으시더군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창고에서 사다리를 갖다주셔서 아들과 함께 가장 낮은 가지의 생생한 이파리 몇 장을 채집할 수 있었습니다.

연방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우리에게 그분이 물었습니다. “근데,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알아요?” 아들이 “포플러요!”라고 답하자, 그분이 기특한 듯 바라보더니 정확한 이름은 ‘은수원사시나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개들이 하도 짖어대는 바람에 그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누지는 못했지만, 포플러 이파리를 몇 장 들고 의기양양 대문을 나서는 아들에게 은수원사시나무에 대해 더 설명해주었습니다. 주인 아저씨가 이렇게 나무에 대해 잘 아시니 얼마나 학식 있는 분인지 짐작할 수 있겠느냐는 감탄과 함께……



Q예섭군이 글을 쓸 때 아버지가 어떤 조언을 해주셨나요?

A이파리를 채집하는 것은 이미 맺혀 있는 것을 따기만 하면 되는 수준이지만, 글에 대한 조언은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싹이 터서 꽃이 피기까지 기다리는 힘들고 지루한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후배 기자들이 써온 원고는 여기저기 붉은 줄을 긋거나 연필로 ‘휘리릭’ 표시하고 야단만 치면 되지만, 아들이 써온 원고는 손을 댈지 말지부터가 고민이 되었지요. 손을 대는 순간 아들의 글이 아니라 아버지의 글이 되기 때문입니다.


글의 형식에 대해 간섭하면 어른의 글이 되고, 글의 내용에 대해 끼어들면 내가 쓴 글과 중복되고……그렇다고 아들이 쓴 글에 아무런 조언도 해주지 않는다는 게 어쩌면 독자를 무시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싶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최소한의 방향만 정해주었습니다. “문장을 짧게 써라”, “더 좋은 표현을 찾아보라”, “구체적으로 써라” 등 방향만 제시할 뿐, 내용에서 가능한 한 아들의 창의성과 고집을 그대로 드러내려 했습니다. 따라서 아들의 글에서 ‘옥의 티’처럼 보이는 잘못들은 아들이 우긴 것이니 제 잘못은 아닙니다.^^


이 책을 내는 데 8년이나 걸렸으니 사실 그 동안 속이 터질 지경이었지요. 특히 아들이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 최근 2년 동안 마주보고 편안하게 설명하지도 못하고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문장을 하나하나 완성해갔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한 수 두 수 바둑을 두는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니까요.



Q(예섭군에게) 나무를 관찰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 공부하면서 어떤 점들이 변화하던가요? 예를 들어, 이제는 신문이나 잡지, 방송에 나오는 나무만 봐도 한눈에 척척 알아볼 수 있다던가 하는……

A모든 나무마다 특징이 있다는 것을 좀더 분명하게 잘 알게 되었습니다. 옛날엔 잣나무를 봐도 소나무, 측백나무를 봐도 애기 소나무라고 생각했는데 관찰하다 보니 다 다른 점이 있더라고요. 이젠 척 봐도 저게 무슨 나무인지 알 수 있습니다. 책을 만들어주신 출판사 대표님이 어떤 나무 사진을 가져오셔서 이게 무슨 나무냐고 물으시길래 전 자신있게 주목이라고 대답했지요.


예섭군의 나뭇잎 스케치_ (왼쪽부터) 회양목, 플라타너스, 호랑가시나무, 향나무



Q아버지가 쓴 글에는 ‘나무’를 소재로 한 소설, 시 등이 무궁무진하게 등장합니다. 나무를 소재로 한 작품이 이렇게 많았나 하며 놀랬습니다. 인간에게 나무는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시는지요?

A동화에는 나무가 자주 등장합니다. ‘토끼와 거북’에서 토끼는 거북이 한참 뒤에서 느릿느릿 기어오는 것을 보고 나무 밑에서 쉬다가 깜박 낮잠을 잡니다. 그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호랑이에게 쫓긴 오누이는 급한 나머지 우물가에 있는 나무 위로 도망갔습니다. 그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요? ‘금도끼 은도끼’에 나오는 나무꾼은 숲에서 나무를 베다가 도끼를 연못을 빠뜨렸습니다. 무슨 나무를 베다가 그랬을까요? 제페토 할아버지는 나무로 인형을 깎아 피노키오를 만듭니다. 피노키오는 무슨 나무로 만들어졌을까요?

아무리 동화를 많이 읽은 사람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질문은 아닙니다. 아무리 나무를 잘 아는 나무박사라도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도 아니고요. 질문을 하지 않았으니 답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원문을 꼼꼼히 살펴보면 토끼가 낮잠을 잔 나무는 떡갈나무고, 오누이가 올라간 나무는 버드나무며, 나무꾼이 베던 나무는 느릅나무고, 피노키오를 만든 나무는 소나무입니다.


무슨 나무였는지 아는 순간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겨납니다. 그 많은 나무 가운데 토끼는 왜 하필 떡갈나무 밑에서 낮잠을 잤을까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집 우물가에 왜 하필 버드나무가 있었을까요? 도끼를 든 나무꾼은 왜 하필 느릅나무를 베려고 했을까요? 제페토 할아버지는 왜 하필 소나무로 피노키오를 만들었을까요? 도대체 그 나무들이 어땠길래……

신화나 전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왜 하필 사과나무가 있었고, 아담과 이브는 왜 하필 무화과 이파리로 몸을 가렸을까요? 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푸스 산의 신들은 제각기 자신을 대표하는 나무를 하나씩 골랐습니다. 제우스는 참나무를, 아폴로는 월계수를, 아테네는 올리브를, 비너스는 은매화(도금양)를 각각 골랐습니다. 왜 하필 그 나무를 선택했을까요? 북유럽 신화에서 하늘을 떠받치는 나무는 왜 물푸레나무일까요? 단군 신화에서 환웅은 왜 신단수(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건설했을까요?


“왜 하필 그때 그 나무가 그 자리에 있었나” 하는 질문은 존재(存在)에 대한 의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달마대사의 제자인 조주선사에게 물어보자. 조주(趙州)는 한 제자가 “조사(달마)가 서쪽에서 온 이유가 무엇이냐”(如何是祖師西來意)고 묻자,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라고 대답했습니다. ‘씨가 뜰에 떨어져 잣나무로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지요. 사실, 그 뜰 앞의 나무는 잣나무가 아니라 측백나무입니다. 한자 ‘柏’을 잣나무로 잘못 해석한 거죠. 어쨌든….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뜰 앞의 측백나무가 그 자리에서 자라는 이유와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우연? 필연? 그러면 측백나무가 왜 하필 그 자리에 있을까요? 또 그 많은 나무 가운데 왜 하필 측백나무였을까요?

이런 고민을 시작하는 순간 나무의 존재(存在)에 대한 의문은 나의 실존(實存)에 대한 질문으로 옮아갑니다. 우리 아파트 앞에는 왜 하필 마가목이 서 있을까? 내가 출퇴근 하는 길목을 왜 하필 느티나무가 지키고 있을까? 아내와 산책하던 길을 왜 하필 마로니에가 내려다 보고 있었을까? 아들과 즐겨 오르던 산길에는 왜 하필 개암나무가 반갑게 손을 흔들까? 딸과 놀던 놀이터에 왜 하필 명자나무가 울타리를 둘렀을까? … 나를 에워싼 나무를 보면서 이런 질문을 하다 보면, 막다른 질문에 다다르게 됩니다. “나는 왜 하필 지금 여기에 있을까?”



Q각자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무엇인지요? 그 까닭은요?

A(아들) 각각의 나무마다 특징이 있고 좋은 점들도 많아 사실 고르기가 힘이 드네요. 만약 딱 한 나무를 뽑자면 ‘가죽나무’를 고르고 싶습니다. 이 나무는 줄기와 가지가 울퉁불퉁하고 막 휘어 있어 보기가 안쓰럽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목재로 쓰지도 않나봐요. 한편 생각해보면 그것이 그 나무의 생존방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또 다르게 보면 지금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지금 학생이다 보니 진로도 고민되고 성적도 많이 신경 쓰이지요. 그때 마침 가죽나무를 보며 ‘나도 어딘가에 도움이 되고 쓸모가 있을 것이며 이 세상에 한 줄기의 빛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죽나무 ⓒ신준환



(아버지) 어느 3월 쌀쌀한 일요일 아침, 어린 딸이 마실 우유가 떨어졌다고 아내가 이불을 걷어버리는 바람에 툴툴거리며 집을 나섰습니다. 집 앞의 가게가 아직 문을 열지 않아 먼 곳에 있는 가게를 찾아 우유를 사 들고 잔뜩 움츠린 채 투덜투덜 돌아오는 길이었지요.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앞길 가운데 화단의 나무 주변에 아지랑이처럼 뭔가 어른거리는 게 보였습니다. 저게 뭐지? 메마른 나무일 텐데…… 저기 어른거리는 게 뭘까?

지금도 왜 그랬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갑자기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멀리서 우연히 봤을 때처럼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지요. 마흔도 중반을 넘었는데 영문도 모르는 채 사춘기의 감정에 이끌려 그 나무로 다가갔을 때 메마른 가지에 핀 아리따운 꽃송이들을 보았습니다. 매화였습니다.

매화가 여기 있었구나! 이 추운 아침에 아무도 보지 않는데, 이렇게 아리따운 꽃을 피우다니…. 꽃망울에 코 끝을 갖다 대는 순간 그 상큼한 향기에 정신마저 아찔했습니다.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바로 코 앞에서 지나간 듯, 그 향기의 진동이 파동을 일으키며 무감각한 내 영혼을 건드린 듯 했지요.


매화 ⓒ신준환

나무 곁에서 서성이며 아리따운 꽃에 빠져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여보, 거기 어디예요? 우유는요?” 아뿔싸, 냉염(冷艶)한 향기를 뿜는 매화 곁에서 30분도 넘게 넋이 빠져 있었던 겁니다.

지금도 매화를 보면 아내 몰래 다른 여자에게 설레는 연정을 품는 것 같은 묘한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공자가 하늘을 뜻을 안다고 한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도 가슴 설레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는 뿌듯함과, 가끔은 겸연쩍거나 남우세스럽기도 한 민망함에,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한 느낌까지 뒤섞이는 정말 묘한 감정입니다.



Q앞으로 따님과는 ‘사랑하면 보이는 풀’을 소재로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작업을 해보고 싶어하는 부모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A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은 자서전에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립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산에 가길 좋아했다고 하네요. 특히 뉴욕 북부 캐츠빌에 있는 산은 여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산책을 즐기는 공원입니다.

아버지는 숲을 거닐면서 그곳에서 일어나는 재미나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아들과 토론하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길 앞에서 강종거리거나 머리 위에서 짹짹거리는 새를 가리키며 무엇을 먹고 살 것 같은지 물었습니다. 아들이 머뭇거리면 부리를 관찰하라고 일러주며 부리 모양을 보고 무엇을 먹고 살지 짐작하게 했어요. 부드러운 열매, 딱딱한 열매, 날벌레, 풀벌레, 나무벌레, 죽은 짐승……. 집에 돌아와서는 도감을 뒤져 그 새의 종류와 생태를 확인하고요.

파인만 부자의 즐거운 산책이 동네에 알려지면서, 파인만의 친구 아버지들이 궁지에 몰렸습니다. 친구 어머니들이 남편들을 닦달했기 때문이지요. 주말이면 소파에 늘어져 졸면서 미식 축구를 시청하는 남편族과 주말마다 골프로 존재감을 상실하는 남편族은 한결같이 아내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못해~”. 친구 어머니들은 할 수 없이 파인만의 아버지에게 부탁했습니다. 아들과 산책할 때 자기 아이도 같이 데려가 달라고, 산책에 필요한 돈도 지원하겠다고요. 파인만의 아버지는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제가 아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특별한 시간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로 인해 방해받고 싶지 않습니다”.

파인만의 자서전을 읽다가 저도 궁지에 몰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닦달하지 않았는데도……. 파인만의 아버지는 70년도 더 지난 시점에, 머나먼 한국 땅에 있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아이의 아버지에게도 충격을 준 셈이지요. 그때부터 아들과 산책할 주제가 필요했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아들과 이야기를 하지?” 이때 찾아낸 것이 바로 나무였습니다.


아들과 함께 나무를 관찰하면서 ‘같이 놀자’는 딸의 재롱과 엄살을 달래며 약속했습니다. 오빠와 같이 하는 집필작업이 끝나면 ‘사랑하면 보이는 풀’을 시작하기로…….

딸과 약속하고 나니, 나무와 풀 말고도 새, 벌레, 물고기, 별, 돌처럼 사랑하면 보일 만한 것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면 보이는 새’, ‘사랑하면 보이는 벌레’, ‘사랑하면 보이는 물고기’…….

자녀와 함께 이런 관찰을 해보고 싶은 부모라면, 먼저 소재부터 정하는 게 좋습니다. 부모의 일방적인 주장이나 자녀의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하지 말고, 부모와 자녀가 충분히 의견을 나눈 뒤 결정하시고요. 소재를 정하면 공동작업의 결과물을 어떤 식으로 만들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 형태가 글로 된 것인지, 그림으로 된 것인지, 사진이나 동영상 또는 그밖에 다른 창의적이거나 융합적인 형태인지…… 이 역시 충분한 토론이 필요하겠지요. 역할 분담이나 작업 방법 등에 대한 것은 소재와 결과물의 형태에 따라 달라질 거고요.

공동 작업하는 동안 자녀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어떻게 지켜줄 수 있는지,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개입할 건지 말 건지, 개입한다면 어떻게 할지, 도중에 포기하려는 자녀를 어떻게 격려할 것인지, 오히려 자녀보다 부모가 먼저 포기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책을 만들기 위해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하기 위해 책을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리하게 책을 만들려다가 오히려 다투고 탓하면서 ‘대화’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보이는 나무> 2월 출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