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밖에서 만난 작가│『설악산 일기』를 펴낸 김근희·이담 작가 인터뷰



Q. 독자 여러분에게 첫 인사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희는 함께 그림 그리는 화가 부부, 이담·김근희입니다. 순수 미술 작업으로 소박한 삶을 기록하는 비주얼 에세이(Visual Essay) 그림을 그려왔고, 창작 그림책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Q. 『설악산 일기』는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A. 미국에서 오래 생활하던 중, 2009년 가을 잠시 속초에 와서 머물게 되었고, 그다음 해 봄인 2010년 4월에 설악산으로 가벼운 걸음을 나갔던 일이 『설악산 일기』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일기로 기록하려는 목적은 아니었는데, 산에 다니면서 점차 산에 젖어들게 되었습니다. 우리끼리 하는 말로 산님이 불러주신 거지요.

Q. 김근희 선생님께서 그림에 더해, 글 쓰는 일도 맡으셨지요. 어떻게 ‘설악산’을 일기 형식으로 담아낼 생각을 하셨나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와 기록을 많이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 (김근희) 어린 시절부터 일기 쓰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마음속에 뭉클하는 감정이 일어날 때, 짤막하게라도 기록해놓으면 나중까지 그 감동을 좀 더 간직할 수 있더군요. 한편 힘든 감정이라도 나중에 그 배경을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객관성도 생기는 거 같아요.


산에서 만난 풀, 나무, 벌레들은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했습니다. 숲속 곳곳에서 나 좀 보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어요. 많고 많은 식물 중에 하필 눈을 마주친 풀, 나무들은 보통 인연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그 또한 거대한 산의 생명력 덕분에 일어날 수 있는 교감이라 생각되어, 그 감동을 꾸준히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Q. 『설악산 일기』를 보면, 처음에는 낮은 자리 풀꽃과 벌레 들에게 눈길이 갔던 설악산 걸음이 후반부로 갈수록 시야가 넓어집니다. 특히 이담 선생님께서 나무 수피에 주목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옮긴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림 작업할 때의 느낌도 궁금합니다.


A. 처음에는 식물과 동물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으니까, 그저 꽃으로 눈이 갔습니다. 가끔 알록달록한 벌레들도 만났죠. 차츰, 잎사귀나 열매 등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나무마다 수피가 다르다는 것을 새삼 보게 되었어요. 특히 나무껍질의 균열은 이담의 그림 재료인 왁스페인트와 잘 맞는 그림 소재가 되었습니다.


Q. 설악산에서 가장 그리운 장소는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다시 찾아가 보고 싶은 풀이나 나무가 있으신가요?


A. 설악산 그림들을 다시 들춰보면 언제 어디서 만났는지, 그날 걸었던 산길과 만난 장소가 영화같이 떠오릅니다. 어느 걸음이나 그립지 않은 곳이 없지만, 특히 그리운 곳을 꼽으라면 우리끼리 말하는 무릉도원이 있습니다.


설악산 걸음 10년 중 초반 2~3년 동안 식물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걷느라 높은 산 귀한 식물을 무심코 지나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점이 아쉬워서, 2018년에는 아쉬움이 남았던 긴 걸음을 다시 다녔습니다. 2018년 6월 1일, 두문폭포 지나서 안산 갈림길 쪽 능선을 향하여 올라가던 중, 높은 산에서 작은 개울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고산지대에 흐르는 물은 도대체 어디서 시작했을까? 눈 앞에 펼쳐지는 꿈같은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개울가에 군락을 이룬 하얀 꽃들이 보였어요. 무슨 꽃일까? 시선을 모아보니 ‘꽃황새냉이’더군요. 만나기 어려운 꽃황새냉이가 하얗게 꽃밭을 이루고, 돌돌 물이 흐르는 무릉도원! 그 물가에서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설악산 일기』 본문 중에서

Q. 처음 설악산 길에 나섰을 때는 이 작업이 10여 년이 될지 가늠하지 못하셨을 것 같습니다. 걸음이 길어진 이유와, 10년이 되어 마무리를 한 까닭이 있으시다면요?


A. 2010년 봄 가볍게 시작한 걸음 이후, 설악산 걸음은 더 멀리 더 높이 이어졌습니다. 처음부터 설악산 걸음이 10년을 이어갈 줄은 몰랐지요. 해를 거듭하며 자연에 대한 눈이 조금씩 떠질수록, 모르는 건 더 많아지고, 그림으로 기록하려니 시간은 한없이 부족하더군요. 자연을 관찰하는 일은 정말 끝이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설악산 걸음 7~8년 즈음에 “10년 걸음”까지 하자고 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니, 처음 설악산에 간 날로부터 10년 되는 날 같은 장소에 가보았습니다.


Q. 지금은 속초 설악산을 떠나 충남 당진으로 삶의 터를 옮기셨습니다.


A. 잠시 머물러 갔던 속초에서 뜻밖에 설악산을 만나 오래 머물렀습니다. 속초 생활 2~3년이 지난 후부터는 설악산 때문에 속초를 떠나지 못했고요. 산이 가까운 곳에 숙소가 있는 덕분에 설악산 걸음을 10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속초에서 머물던 아파트를 우리는 대피소라 불렀고, 나중에는 큰 그림 작업을 위하여 산 아래 농가 주택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산을 알면 알수록 ‘흙’이 품은 막강한 생명력에 눈이 뜨게 되었고, 흙이 키워내는 생명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어요. 흙이 있는 마을에서 공감하는 지인들과 교통할 수 있는 지역으로 옮겼습니다.


Q. 손으로 만드는 삶, ‘핸드 메이드 라이프’로 일상을 꾸리고 계신데요. 요리, 바느질, 재활용 목공 등이 작가님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A. 앞으로의 일상 역시 지금까지 살아온 ‘핸드 메이드 라이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매일 먹을 음식을 조리하고, 헌 옷을 고쳐서 간단한 옷을 만들어 입고, 필요한 가구는 재활용 목재로 만들어서 사용합니다. 효율성이나 생산성 등을 따지지 않고, 매일 맞이하는 새로운 하루를 텅 빈 새 화폭같이 여기며, 하루의 일상을 잔잔히 채워 갑니다. 삶과 그림이 별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텃밭에서 자급하는 음식 재료의 영역을 넓히기 위하여 흙님에 기대는 생활이 될 것입니다. 쑥쑥 올라오는 풀을 알아채고, 그들의 생육 환경을 알아야겠지요. 한편, 내 마당에서 자라는 풀과 어린 잎사귀 때부터 낯을 익히고, 어느 날 불쑥 마음이 일어날 때 그 앞에 앉아서 식물과 대화를 나누며 그림 그리는 모습도 상상해 봅니다. 사진 스케치를 해서 그리는 게 아니라, 실물이 사는 환경에서 그리고 싶었습니다.


Q. 두 작가님의 그림 재료가 두 분의 성격, 스타일만큼 아주 다릅니다. 그림 그리실 때 각자 사용하는 도구와 그동안 해온 그림 작업에 대해 이야기 들려주신다면요?


A. (김근희) 저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붓쟁이고, 붓이 저에게 가장 편한 재료입니다. 붓과 함께 수채 물감으로 작업할 때는 그림물감뿐 아니라 물님의 도움으로 그림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하지요. 그림 작업은 비록 저를 통해서 진행되지만, 그림의 대상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 대상이 그림으로 찾아온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담) 음악가에게 자신만의 악기가 있듯이, 화가에게도 자신에게 맞는 미술 재료가 있습니다. 저는 손끝과 화면 사이의 전달 수단으로서 부드러운 붓보다 연필이나 콘테 같은 단단한 재료가 편안했습니다. 판화 기법 중에서는 철필로 긁어서 그린 다음 찍어내는 드라이포인트나 엣칭 작업을 좋아했고요. 미국 유학 초기에 우연히 알게 된 왁스페인트는 단단한 덩어리를 녹여서 그림을 그리는 오래된 미술 재료였습니다. 열에 녹인 왁스페인트를 화면에 바른 다음, 철필로 긁고 인두로 문지르고 헤어드라이어로 펼쳐가며 이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돌이나 나무를 깎고 다듬으며 그 안에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듯이 흥미로웠습니다. 왁스페인트는 저한테 잘 맞는 그림 재료였고, 지난 30여 년간 다양한 시도를 해오고 있습니다.


Q. 『설악산 일기』는 어떤 분들이 보면 좋을까요? 독자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A. 『설악산 일기』는 느린 걸음으로 서서히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들을 알아가는 기록입니다.

지금 시대에 큰 화두가 되는 기후 위기는 오로지 인간만의 세상을 위해서 달려온 근현대사의 무서운 결과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혹독한 기후 변화를 견디려면, 이제라도 다른 생명과 함께 공존하는 삶으로 눈을 돌리고, 자연이 순환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공존과 순환!’ 산에서 배운 가르침입니다.


『설악산 일기』 본문 중에서

* 이 책은 5월 초에 독자 여러분을 찾아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