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건축과 삶을 말과 글 속에 담은 지도 벌써 12년이 되었습니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A∥ 예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오전에는 책을 읽고 오후에는 글을 쓰고 지내고 있습니다. 그 동안 학교에 나가 공부를 하고 강의를 한 적도 있었지만, 저의 자리는 언제나 이곳, 책을 쓰는 이곳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12년의 시간들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난 것 같습니다..
Q ∥ 이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 개정증보판은 각별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이 책이 서윤영 작가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주로 어떤 부분을 새롭게 추가하는 데 주력하셨는지요? A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은 생애 처음으로 쓴 책이자 또한 제 인생에서 전환점이 된 것 같습니다. 이전까지 한 번도 제가 책을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우연치 않게 그 일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지난 시간 동안 꾸준히 하게 된 것은 운이 좋았습니다. 그 포문을 열었던 책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식물학에서 ‘꺾꽂이’라고 하는게 있지요.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내어 그 가지를 심으면, 만약에 그 토양이 비옥하다면 그 가지는 곧 한 그루의 나무로 자라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은 그 꺾꽂이의 모태가 된 나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 시간 동안 이러저러한 책들을 써왔는데 결국은 처음 책에 썼던 작은 이야기 꼭지 중 하나를 꺾어내어 좀 더 크게 키운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개정판을 쓸 때는 그동안 해왔던 작업들을 더 추가해 넣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을 썼고 그 후 『집우 집주』를 썼습니다. 참으로 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보낸 날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주목받지 못하는 집들, 흔히 빌라라 통칭되는 다세대 다가구 연립주택들, 요즘 등장하기 시작하는 타운하우스, 그리고 최근 오래되고 낙후된 동네들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하는 현상 등에 대해 추가했습니다. Q ∥ 자신의 살아온 궤적에 우리나라 주거 근대화의 과정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굵직굵직한 대목들을 짚어주실 수 있는지요? A ∥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라고 TV에 나오던 남진의 노래를 따라 부르던 것이 제가 가진 가장 흐릿한 기억입니다. 생각해보니 1970년대의 그림 같은 집은 문화주택 혹은 불란서 주택이었습니다. 일제시대에 수입되어 해방 후에도 주거근대화라는 이름으로 도시에 한창 지어지던 집이었지요.중학생이 되던 1981년은 이것저것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교복 자율화가 되어 중고등학교 시절 전혀 교복을 입지 않고 다녔는데, 돌이켜보니 이는 인디언 썸머처럼 짧고도 화려한 휴가같은 날들이었습니다. 한편으로 그때부터 서서히 강남러시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들이 압구정동 혹은 논현동으로 이름조차 생소한 동네로 전학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강남으로 이사간 친구네 집에 다녀온 아이들은 ‘그 집에는 화장실이 두 개더라, 아파트가 33평이라서 어디가 현관인지도 모르겠더라’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그때 저는 17평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아버지가 성북구 하월곡동의 카이스트 연구원이었던 제 친구는 카이스트 구내에 마련된 18평 아파트에서 4인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33평 아파트를 넋을 잃고 바라보기에 충분했지요. 공교롭게도 제 지도교수님의 사위가 지금 그곳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따님과 그의 남편 그리고 어린 딸 하나가 있는 3인 가족은 지금 18평 아파트가 너무 좁다고 합니다. 그 따님은 그 딸과 함께 교수님의 전원주택에서 지내면서 주말이 되면 남편이 처갓집으로 찾아오는 주말부부가 되었습니다. 30년 전 4인 가족이 오순도순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18평 아파트는 이제 독신자용 숙소가 되어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학생이 되고 나니 압구정동에 오렌지족이 출현하면서 본격적인 강남시대가 되었습니다. 제가 학교를 졸업하던 1997년에는 사상 초유의 IMF 사태가 있었고, 1999년은 제가 결혼을 하던 해이자 ‘97년의 IMF가 끝나면서 가장 집값이 많이 급등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전세값을 감당하기에 힘이 들어 간신히 집을 샀더니 그 이후에는 아파트 공급과잉으로 이제 집값 하락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2015년 지금까지 한국은 숨가쁜 근대화의 시기를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저를 한 번도 비껴간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쓴 것이 이 책입니다. 글 중간중간에 묻어 있는 개인적인 이야기는 저의 시시콜콜한 개인사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그러나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아마 공감하실 겁니다. Q ∥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직접 찍은 사진들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사진을 배우게 된 건지요?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본 우리들의 집은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A ∥ 건축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시각적 이미지를 중요시합니다. 우리는 받아들이는 정보의 70~80퍼센트를 시각정보에 의존하지요. 그래서 건축을 하자면 일단 스케치를 잘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저는 그림에 소질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을 대신할 만한 것으로 사진이라도 잘 찍어야 한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가수도 비주얼을 중요시하는 세상입니다. 현대문화의 특징은 융복합적이고 또한 시각중심이기 때문에 문자 만큼이나 중요한 매체가 되는 것이 사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집은 문자로 묘사하는 집과 조금 달라 보이기도 합니다. 학교 다닐 때 교수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건축을 사진으로 접하지 말고 직접 찾아가서 온몸으로 체험하라고요. 건축잡지에는 최신 건축물들이 소개되곤 합니다. 건축전문 사진작가들이 찍어내는 사진은 참으로 멋있고 화려합니다. 그런데 직접 그 건물을 찾아보면 어쩐지 사진과 달라 실망하곤 합니다. 사진빨이라고 하는 게 건축에도 적용됩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다보면 저 역시 그 건물을 실제보다 멋있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사진으로만 보아서 멋있었던 건물을 실제 보았을 때 달라 보일텐데, 과연 있는 그대로 찍어야 할지 아니면 사진미학을 위해 좀 더 잘 찍어야 할지 아직도 고민입니다. Q ∥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입니다.”라는 어느 공익광고의 카피가 떠오릅니다.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 집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은 크게 바뀌어 있을까요? 집을 구매하거나 임대하거나 하는 데, 점점 더 많은 부담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A ∥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단 집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생활이란 백년 전 아니 천년 전과 비교해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식주라고 했듯 사람은 하루도 집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집이란 인간이 사고 팔 수 있는 재화 중 가장 비싼 것이 속하다보니 소유에 대한 대안으로 임대(전세, 월세 등), 공유(콘도, 셰어 하우스 등), 전용(오피스텔, 고시원 등) 등 여러 변형된 소유형태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대도시의 집값이 비싼 것은 비단 서울의 문제뿐만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대안과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만, 전반적인 집값 안정과 그에 따른 부동산 대책은 우리 모두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Q ∥ 앞으로 건축의 어떤 소재들을 글로 엮어낼 계획인지 궁금합니다. A ∥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썼던 책들은 그 당시에는 최선이었다 할지라도 지금 다시 보면 조금씩 미흡한 점과 균열이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번의 개정판도 그 미흡한 점과 균열을 메꾸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쓴 책들은 크게 집에 관련된 내용과 그렇지 않은 내용을 나뉘게 됩니다. 이 중에서 주로 집에 대해 치중한 경향이 있지만 다시 건축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백화점, 극장, 역사, 공항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건물들의 유래와 의미를 되짚어 보고 싶습니다 Q ∥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A ∥ 집이란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입니다. 물론 집에 대해 다룬 책은 많지만 인테리어, 부동산, 내집마련, 전원주택 등에 치중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거문제는 또한 하나의 사회현상이자 문화현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지난 12년간 제가 꾸준히 해왔던 일들입니다. 의식주 라고 일컫는 것 중에서 옷과 음식은 단순히 패션과 레시피를 넘어 하나의 문화현상이자 사회현상으로 파악한 책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직 건축은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는 꾸준히 그 일을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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